혼자 못 사는 것도 재주 - 리스크 사회에서 약자들이 함께 살아남는 법
우치다 타츠루 지음, 김경원 옮김 / 북뱅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대구에 사시는 시어머니께서 종종 반찬을 챙겨 주신다. 무말랭이, 콩잎, 마늘짱아찌.. 대체로 내가 좋아하지 않는 맵고 달고 짠 음식들이다. 아무래도 내가 상을 차리다 보니까 시어머니의 반찬들은 냉장고 바깥 공기를 잘 쐬지 못한다. 반찬이 줄지는 않고 점점 쌓이다 보니까 냉장고 안은 왁자지껄 북새통이 됐다. 한 번은 어머니께서 보내준 고추장은 잘 먹었냐고 물으셨다. 순간 나는 언제 고추장을 주셨는지도 기억하지 못해 바보 같은 얼굴을 했다.
이번 설에는 대구에서 총각무를 받아왔다. 간이 짜지 않고 시원해서 입에 잘 맞았다. 며칠 사이에 다 먹어버렸다. 우리가 총각무를 잘 먹었다는 이야기를 어머니께서 들으시고 무척 기뻐하셨다고 한다.
충격이다. 우리가 잘 먹으면 어머니께서 기뻐하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왜 음식을 싸주시는지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냉장고 안이 좁아지는 게 싫었고 내 냉장고인데 내 마음대로 채울 수 없다는 게 싫었다. 무슨 생각으로 음식을 주시는지 어떤 마음인지 생각도 안했다. 나는 그만큼 무신경하고 이기적인 인간이다.
우치다 타츠루 선생은 요즘 유행하는 자기결정, 자기책임의 인생관을 염려한다. 인생에 고난이 닥쳐올 때 고립된 개인으로 대처하는 것은 리스크가 너무 크다. 도움을 주고 받는 공동체에 소속되어야 위기를 잘 대처할 수 있다. 기꺼이 여분을 남에게 주고 내가 약자가 되었을 때 여분을 증여 받는다. 그것이 우치다 타츠루 선생이 말하는 인간의 본질이다. 개인이 있고 사회가 생긴 것이 아니다. 사회, 공동체를 이룰 때 비로소 '인간'이 된다. 자본주의는 파편화된 개인이 될 것을 요구하지만 이것은 수요를 증가하려는 방편일 뿐이다. 공동체 구성원들은 서로의 안녕과 행복을 빌어주고 이것은 실제 안녕과 행복으로 이어진다. 공동체에 소속된 사람이 더 풍요롭고 행복하다.
첫 직장에서 동료가 모욕적인 일을 당했다. 울고 있는 그를 대신해 부조리에 항의할 사람은 없었다. 다들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거기까지였다. 그 일을 계기로 노동조합에 가입했다. 누군가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한 명만 앞장서면 따라 나서리라 결심했다. 첫 사람이 될 용기는 없어도 두 번째, 세 번째 정도는 해야지. 생각과는 다르게 여전히 비겁한 인간으로 살았지만 뭐랄까. 든든했다. 서로를 지켜줄 거라고 생각했다.
직장을 옮기고 마음 고생을 많이 했다. 인간으로서 존엄이 지켜지지 않았고 나는 너무 많이 훼손되었다. 웃고 싶지 않을 때 웃어야했다. 나는 한 번도 주체가 되지 못했다. 이 년 반동안 나는 착취의 대상이고 객체였다. 상대는 끝까지 무례했다. 고통에 처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고통을 나누지 않았다. 고통스러운 기억이다.
공동체가 필요하다. 나의 것을 내어주고 기꺼이 선물 받을 수 있는 건강한 공동체. 여전히 귀찮고, 간섭이 싫지만. 이 책을 읽으며 어린 아이를 벗어나 주변을 살피는 어른이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곁에 두고 계속 읽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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