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아이는 괜찮습니다
사카이 준코 지음, 민경욱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1월
평점 :
절판


종종 육아 전도사를 맞닥뜨린다. 오랜만에 나간 전 직장 동료 모임이었다. 유모차에 아이를 대동하고 나타난 그분은 자기 아이의 영재성과 자기가 얼마나 고민하는 엄마인지 한참을 말했다. 그렇구나, 대단하다 맞장구를 쳤지만 지루하고 지쳐갔다. 그분의 이야기는 육아는 이렇게 황홀한 경험을 제공한다, 그러니 너도 얼른 낳아라로 이어졌다. 나는 그분에게 아이 없는 즐거움을 자랑하지도, 당신도 아이가 없는 편이 낫지 않냐고 묻거나 전도하지 않았다.
이럴 때 나는 ‘우는 소리 전략‘을 활용한다. 내가 아이가 없어서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절절하게 호소하며 아이에 관해 한 마디라도 더 듣는 순간 똑! 하고 부러져버릴 듯한 인상을 새기기 위해 노력한다. 공원에서 아이를 데리고 나온 부부를 본 날은 집에서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울었다던지, 하는 식이다.
한 번은 친척의 결혼식에 엄마와 참석했다. 피로연장에서 뵌 친척 어른들은 ‘너도 이제 낳아야지. 어리지 않잖아.‘하고 ‘인사(?)‘를 건넸다. 아아, 우는 소리 전략이 필요한가 생각하는 순간, 엄마가 등판하셨다. ‘일부러 안 갖는 게 아니에요. 그 문제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어요.‘ 그러자 친척 어른들도 ‘그래,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 되지.‘하고 물러났다. 역시 엄마는 경험치 만렙이다.
나는 아이를 갖기 위해 특별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 아이를 갖지 않기 위해서도 마찬 가지이다. 시어머니께서 지어주신 ‘아이가 잘 들어서게 돕는 한약‘을 마실 때도 ‘되면 되고, 아님 말고‘ 하는 식이었다. 지금도 그렇다.
오히려 아이가 생기는 것이 두렵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의 안정된 생활은 온데 간데 없고 아이 중심의 삶으로 바뀌는 것은 두렵다. 누군가는 이기적이라고 비난하겠지만 이타적이기 위해 아이를 가질 수는 없다. 아이가 생기면 아이를 사랑할 수도 있겠지만, 아직 생기지 않은 아이가 막 사랑스럽거나 하지도 않다.
작가는 아이가 없어서 홀가분하다고 말한다. 세상에! 어쩜 이렇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정확하게 하다니! 그렇다. 나는 홀가분하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남아 있지만 아무튼 지금은 그렇다. 사람들이 비난할까봐 말하지 못했다.
말도 배워야 할 수 있다. 2015까지 함께 일했던 부장은 나에게 ‘아이를 낳고 길러야 진짜 어른이 된다.‘는 말을 자주했다. 심지어 세월호 참사가 때는 나에게 ‘자기는 부모의 마음을 모른다. 얼마나 가슴 아픈지.‘하고 나에게 대못을 쳤다. 앞으로 이렇게 대꾸해야지. ‘전 지금도 어른이에요.‘, ‘아이가 없어도 마음이 아파요.‘ 연습을 해야 한다. 영어 회화처럼 계속 중얼중얼 연습했다가 필요한 순간에 딱 말해줘야지. 전 지금도 어른이에요. 나는 지금도 행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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