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한국현대사 - 1959-2014, 55년의 기록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아버지는 나에게 '국민교육헌장'을 낭송해 주시곤 했다. 아버지가 이렇게 암기력이 좋다, 공부도 잘했다 하는 자랑이었다. 지희 너도 학교에 가면 외워야 할 거라고 하셨지만 나는 학교에 가서도 국민교육헌장을 외우지 않았다. 대신 국기에 대한 맹세를 외웠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다 함께 소리 내어 읽어가며 외웠는데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몸과 마음을 바쳐? 진짜 바쳐?

 

공부도 잘했고 국민교육헌장도 통째로 외우고 계신 우리 아버지께 물었다. 아빠, 몸과 마음을 바쳐야 된대. 진짜 바쳐야 돼? 아버지는 말씀하셔다. 아니, 안 바쳐도 돼.

 

아버지와 (지금의)나는 정치적 입장이 아주 다르다. 아버지는 산업역군이었다. 1970~80년대 중동 건설 붐을 따라 돈을 벌러 사우디아라비아로 갔다. 그 탓에 아버지는 언니의 출생을 보지 못했다. 그래도 아버지가 번 돈이 할아버지의 살림에 보탬이 되었다. 아버지는 전두환 시절이 좋았다고 했다. 깡패가 길거리에서 싹 없어졌다고. 언니가 대학에 진학하기 전 아버지는 언니를 불러놓고 타이르셨다. 데모하지 마라. 아마 나의 대학 진학을 보셨다면 나에게도 당부를 하셨겠지.

 

아버지 둘째 딸은 커서 '모난 돌'이 되었다. 남들이 찬성하는 일에 눈치 없이 반대를 했다. 입장을 결정해야 할 때는 주위를 둘러보지 않는다. 나서고 모이고 떠들고. 그것도 모자라 글로도 떠든다.

 

그래도 가만 생각해 보면 아버지와 내가 영 다르지는 않다. 아버지는 윗분 말씀하시는 데에 반대 의견을 냈다가 장기 근속했던 직장에서 해고되었다. 내 신분이 지금만큼 보장되지 않았다면 내가 갔을지 모를 길이다.

 

나는 아버지를 이해하고 싶다. 아버지의 흐름과 아버지의 끝을 납득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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