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벤져스 엔드게임(스포일러)

타노스 대 토니의 대결은 공리주의자 간의 대결이다. 둘 모두 희생을 통한 문제 해결을 승인하기 때문이다. 자원난을 해결하기 위해 인구의 절반을 희생시켜야 한다는 타노스는 멜서스의 인구론을 계승한 공리주의자다. 토니 역시 지구를 지키기 위해서 인권이나 자유는 일부 희생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어벤져스-에이지 오브 울트론, 캡틴 아메리카-시빌워).

어쩌면 토니가 핑거스냅을 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엔드게임과 전작 인피니티 워는 반복과 변주가 두드러지는 영화이다. 소울스톤을 얻기 위해 희생되는 가모라-나타샤, 타노스의 가슴에 도끼을 박아 넣는 토르-토르의 가슴에 도끼를 박아 넣는 타노스, 타노스가 손을 사용하지 못하게 막는 캡틴 아메리카-캡틴 마블 등 주요 장면이 반복, 변주된다. 두 영화 모두의 결정적 순간인 핑거스냅 역시 반복, 변주되어야 하는데 이를 할 수 있는 인물은 토니뿐이다. 토니와 타노스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기 때문이다.

히어로 측의 또 다른 리더인 캡틴 아메리카는 핑거스냅을 할 수 없다. 그는 의무론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생명을 거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비전의 이마에서 스톤을 제거하는 방법을 거부했으며 울트론을 만드려는 토니에게 함께 싸우고 져도 함께 진다고 선언한다. 캡틴은 함께 싸우다 죽으면 죽었지 핑거스냅을 선택할 수 있는 캐릭터가 아니다.(물론 그것이 희생을 두려워 해서가 아니다. 방법이 자신의 철학과 맞지 않아서이다)

토니는 군산복합체의 상징과도 같다. 그는 대를 이어 생명을 거래하는 일에 종사했으며 시리즈 내내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할 수 있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토니의 이런 면모는 울트론으로 극단화되어 드러난다.

토니의 ‘아들’ 울트론은 애초에 평화 유지를 목적으로 기획되었으나 인간의 타락상을 목격하고 인류 절멸과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추진한다. 이는 토니의 또 다른 ‘아들’ 비전’이 저지하는데 이는 결국 토니의 사고 방식이 극단화된 두 사례의 충돌로 볼 수 있다.

엔드게임의 타노스의 계획은 울트론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구에서 우주로 규모가 확대되었을 뿐이다. 이렇게 본다면 울트론과 비전처럼 타노스와 토니 또한 공리주의의 극단화된 두 사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관계로 볼 수 있다. 비전이 울트론을 저지한 것처럼 토니가 타노스를 저지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토니의 핑거스냅은 타노스의 핑거스냅의 반복-변주인 것이다.

토니는 타노스보다 더 착한 공리주의자일까. 인피니티워에서 그려진 가모라의 죽음과 엔드게임에서 그려진 나타샤의 죽음에 답이 있다. 소울스톤과 맞바꿔지게 된 가모라는 우주 최강의 여전사라는 타노스의 평가가 무색하게 발버둥치며 타노스의 손에 어린애처럼 질질 끌려 가고 결국 절벽 아래로 던져 진다. 반면 소울스톤을 얻기 위해 둘 중 한 명은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호크 아이와 나타샤는 서로 죽기 위해 대결을 벌인다. 세상을 구할 거니까 네가 좀 죽어야겠다와 세상을 구할 거니까 내가 죽겠다의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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