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과 육아의 사회학 - 스스로 ‘정상, 평균, 보통’이라 여기는 대한민국 부모에게 던지는 불편한 메시지
오찬호 지음 / 휴머니스트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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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책이다. 내 속이 다 까발려져 버린 것 같고, 한편으로는 그래서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싶다.

내가 가진 '자신감'의 총량을 100이라고 한다면 그 중 90 이상은 입시와 취업의 경험이 만들어줬다. 나는 집안도 별볼일 없고 인물도 없고 친구도 별로 없다. 더불어 어린 시절 지속적인 가정 폭력에 노출되었고, 부모로부터 특별히 삶의 교훈을 얻지 못했고 교우 관계도 원만하지 않았다. 심지어 운동도 못한다. 내가 잘한 건 두 가진데 하나는 주제 파악이고 다른 하나는 순위고사이다. 대단치는 않지만 입시와 취업에서 내가 가진 사회적 환경에서 기대되는 바에 비해서는 나름의 성취를 이뤘고 이 성취는 내가 가진 자신감의 근원이 됐다. '나는 열심히 살았다. 나도 남들만큼은 할 수 있다' 나는 순위 경쟁 제도의 수혜자인 셈이다.

책의 저자는 평범한 사람들이 존엄한 삶을 살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 명제에 이의를 제기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자꾸만 이런 생각이 든다. 사회의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정치를 통해 공정하다고 믿는 방식으로 분배를 해야 한다. 그럼 사회적으로 더 기여를 하는, 혹은 할 것이라고 여겨지는, 혹은 그렇다고 뭇사람들이 믿는 이들에게 더 많은 자원을 분배하는 것이 공정하다.

저자의 말대로 모두의 처지가 개선되어야 하고, 열악한 처지에 놓인 나머지 목숨마저 잃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러나 훗날 지금보다 사회구성원 모두의 처지가 전반적으로 개선된다 하더라도 여전히 차등은 존재할 것이다. 이때에도 사람들은 자신보다 나은 처지의 사람을 동경하고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지금 사회랑 달라진 게 뭐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게 너무 불편한 이유는 '내가 순위 경쟁에서 상대적으로 성과를 거둔 사람이라서 이렇게 편협한 생각을 갖게 된 게 아닐까'하는 검열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사회학 책을 읽고 저자의 의견에 반대를 표하기는 나로서는 무척 불편하다. 왠지 내가 '개념 없는 인간'이 된 기분이 들기도 하고 남들이 그렇게 흉볼까봐 두렵기도 하다.

정말 솔직하게 말하자면 저자의 전작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를 읽고 나서는 '요즘 대학생들 참 쯧쯧쯧' 하는 마음이었다. 그 마음은 사실 이미 나는 그 절박한 경쟁 상태를 벗어났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 책은 결혼과 육아, 교육 문제를 다루기 때문에 몹시 불편하다. 게다가 나는 요즘 내 경험에 기초해서 학생들을 경쟁의 승리자가 되라고 내몰고 있는 중이다. 또 나중에 육아를 시작하면 반드시 강남키즈로 키우겠노라 다짐도 했다. 내가 받지 못한 가정에서의 지원을 팍팍 해줘서 꼭 서울대에 보내겠다는 뭐 그런 생각. 뭐, 일종의 한풀이다.

아아 심란하다. 심란하다. 남의 일에 혀를 차는 건 너무 쉬운데 책에서 막상 내 이야기를 하니 그저 심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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