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점의 시작
치카노 아이 지음, 박재영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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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파격적 소재, 신선한 감각‘이란 표현으로 이 책을 다 담을 수는 절대 없겠다.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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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를 찾다 - 제75회 요미우리 문학상 수필·기행상 수상작
니시 가나코 지음, 김현화 옮김 / 티라미수 더북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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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시 가나코, 이란 테헤란에서 태어나 이집트 카이로와 일본 오사카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2004년 <아오이>로 등단, 2005년 <사쿠라>로 베스트셀러 작가로 등극했다. 이후 <사라바> 등 여러 작품으로 제152히 나오키상 등 일본 내 알만한 상은 모조리 휩쓸었다. 국내 번역 본으로는 <사라바>, <물방울>, <우주를 뿌리는 소녀> 등 다수의 작품이 있다.


일본 유명 소설가의 첫 에세이라는 점이 끌렸다. 모든 처음이 다 그렇듯 소설 집필과는 다른 그의 감정이 담겼으리라 생각하면서 책장을 열었다.


대상포진으로 오진되었던 거미 물린 흔적으로 시작한 이야기가 홍법대사라면 사족을 못쓰는 외할머니가 그와 그의 엄마의 꿈에 나오고 결국 그의 유방암을 확진 받는 것으로 연결되는 동안 얼마간 조마조마했던 나와는 달리 그는 일기 속에서만 두려워 하는 느낌이 들었다. ‘암’은 그에겐 집 안 곳곳에 존재하는 ‘거미‘정도 였을까? 어떻게 이렇게 담담하게 일상이 이어질 수 있는지 의아할 정도다.


캐나다의 더디고 불친절하고 신속하지 않은 의료 시스템을 돌려 까는 듯한 그의 항암 치료 과정을 보자니 한국의 건강보험이나 의료 시스템이 달리 보이기도 한다. 한국은 돈만 많으면 천국이라는 말이 맞을지도. 중요한 건 내가 돈이 없다는 거, 그래서 나로서는 천국과는 아주 먼 곳일 뿐이다. 더군다나 백수가 됐으니 이제 곧 지옥이 펼쳐지겠군.


그는 암 치료 과정에서 겪는 격동적인 감정을 독자에게 전달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가족과 지인들과의 마음을 나누며 얻게 되는 치유의 시간을 보여준다. 아프다고 징징대며 독자를 피로하게 하지 않아서 더 많이 공감된달까.


암 환자라고 해서 즐거움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는 간호사 크리스티의 말을 듣는 그의 기분이 어땠을까? 짐작이 되지 않았는데도 울컥해져 버렸다. 분명 일상이 한순간에 변하는 것이란 상상할 수 없는 무력감이 동반된다. 할 수 있는 것들이 할 수 없는 것이 되는 경험은 두렵기도 하고. 30여 년 전 목이 부러졌던 그때의 나도 그랬다. 그래서 그의 감정과는 별개로 크리스티의 말에 온 몸의 세포 하나 하나가 흔들리는 기분이었다.


“그저 그들의 존재 자체가 우리와 양립 하지 못 할 뿐이다. 둘 중 하나가 살아남으려고 할 때 한쪽이 상처를 입게 된다.” 66쪽


암 자체의 생명력을, 생존에 사활을 걸기 때문에 암은 전이해야 하고 인간의 몸 역시 살아 남으려고 의학의 힘을 빌린다는 그의 표현이 왠지 서글프게 느껴졌지만 공감되고 말았다.


펄떡이는 생명력을 느낄 수는 없지만 밴쿠버의 삶은 분명 활력이 넘쳤다. 암에 걸리고 나서야 죽음을 생각하고 거미로 분한 외할머니를 기억해 내고 가족들의 죽음을 기억한다. 기억 속에 존재하는 그들의 생동감이 전해지도록 말이다.


이게 무슨 캐나다 의료 시스템에 대한 르포는 아니지만 읽으면 읽을 수록 입이 떡 벌어진다. 아이가 아파서 열이 나면 장시간 대기를 대비해 커피 포트에 커피를 담고 주먹밥을 싼다니…. 한국보다 더 느리고 불친절한 의료 시스템도 있구나 싶어(어디나 의대 수업은 불친절을 가르치나 했었다) 웃음이 터졌다.


사실 더 읽다 보면 자신만의 일에 대한 책임이나 태도는 꽤나 합리적이라는 걸 이해하게 되지만, 어쨌든 의료 시스템의 현실은 몸은 고칠지언정 마음은 엄청 다쳐서 나오는 곳이 병원이라는 생각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91쪽


소설가라 그런지 새어 나오는 감탄을 숨길 수 없는 문장을 만나곤 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게 된다. 마치 시공간이 멈춘 듯 몰입하게 만든다.


“그녀는 누구에게나 마음이 열려 있고 호기심이 왕성에서 마치 태양을 향해 자라나는, 꽃송이가 큼직한 꽃 같았다.” 111쪽


오도독, 오도독, 오도독. 에키가, 그와 함께 살고 있는 고양이가 삶의 의지를 보이자 울음을 터트렸다는 그의 말에 덩달아 울음이 터진다. 에키가 보여준 삶의 의지가 어쩌면 지금 자신에게 꼭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 건 아닐까, 마음이 아렸다. 그는 그래서 에키와 함께 더 오래 건강하게 살고 싶었으리라.


가슴이 꽤나 먹먹해서 한참 생각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게 만드는 글이 있다. 항암 치료의 막바지에 코로나 확진에서 그가 느꼈을 좌절감의 무게를 공감하고 말았다.


‘설마 내가’라는 감정에서 ‘어째서 내가’라는 감정에 휩싸이게 된 순간 동반된 자기 혐오를 그는 감당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런 그의 모습에서 느닷없는 장애인이 되고 ‘왜 내가’, ‘하필 내가’라며 분노에 휩싸여 있던 그때가 몸서리치게 떠올랐다. 나는 자기혐오의 감정이었을까? 나는 여전히 ‘어쩌다’쯤이다.


142쪽


그리고 깜깜한 공간에서 갑자기 쏟아지는 빛에 순간 시야가 하얗게 사라질 때처럼 머리를 띵하게 한 문장이 있다.


“가끔 내가 ‘나는 암 환자’라는 카드를 너무 방패막이로 삼고 있지 않나 생각할 때도 있어.” 157쪽


동병상련을 겪고 있는 코니와의 대화에서 문득 나는 내가 갖게 된 ‘장애’라는 카드를 그렇게 사용하고 있지는 않았었나 싶은 자기 검열이 돼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간혹 복지관에서 겪는 일중에 ‘장애’를 방패막이로 혹은 무기로 삼는 사람들을 종종 마주하는 일도, 역시 씁쓸해진다.


자꾸 그의 문장을 옮겨 오는 것 같지만, 참을 수 없다. 너무 멋지고 아름답고 편견을 깨고 인식을 바꾸게 된다. 그래서 기록하고 싶은 욕망을 멈출 수 없다.


“우리는 어떤 상태이든지 자신의 몸으로 살아간다. 무언가를 절제하거나 무언가를 더 한다고 해도 그 몸은 틀림 없이 진짜 자신의 것이다. 나의 진짜 몸을 누군가의 판단에 맡겨서는 안 된다. 앞으로도 나만의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나는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 이 기로 했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이제 유방도 유두도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었다.” 166쪽


두 가슴을 절제해야 하는 선택지 앞에서 '유두'를 살릴 것인가란 여성으로서의 가슴 재건에 대한 질문은 꽤나 의미심장하다. 유두는 남녀에게 모두 있는 것이고 그것이 여성과 남성의 구분적 의미가 아닌 기능적 차이라면 그 기능을 다한 이상 유지할 필요는 사실상 없는 것이 아닌가,라는 그의 말에 일말의 통쾌함이 느껴질 정도로 공감됐다.


한편, 이란에서 태어나 일본으로, 다시 캐나다로 이주한 그는 삶의 여정에서 자신이 ‘일본인’이라는 자각을 하지 못했음을 깨달았다고 회고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주류에서 벗어난, 아니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이방인으로서의 소수자였음을 잊고 살았다는 것의 의미이기도 했다.


그리고 2021년 3월, 일본 나고야에서 데이트 폭력에 시달리다 사망한 스리랑카 유학생 위시마 산다말리의 이야기를 전하며 ‘불법 체류’라는 제도에 묻혀버린 일본이 외국인 소수자의 인권에 대한 태도를 고발한다. 더하면 더했지 한국이라고 다를까. 우리는 왜 소수자의 인권에는 그토록 가혹한가.


이런 이민자 혹은 이방인으로서 그가 겪었던 그런 정체성의 혼란은 나 역시 겪었던 것과 궤를 같이 한다. 중도 장애인이란 소수자의 삶은 주류에 속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 받는 일이라서 그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이된다. 그렇다. ‘내’가 ‘나’로 살아 가는 데는 ‘잘못’되었다는 개념은 없으니까. 그리고 그가 덧붙인 ‘보이는 것’과 관계 없이 나는 나다. 어쩐지 바닥에 눌어붙어 버티던 자존감이 임계점을 넘어 서는 기분이 들었다.


291쪽


그 자신과 그물망처럼 연결된 환자들, 암을 이겨냈거나 이겨내는 중인 사람들을 이야기를 통해 삶의 태도와 죽음을 대하는 자세를 나누는 이 책은 다양한 삶의 모습에서 저마다가 갖는 고유한 인간적인 감정과 감각들을 공감하게 되는 아주 따뜻한 이야기다. 타인을 통해 ‘나’라는 감각을 선명하게 느껴보고 싶다면 강추한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하고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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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를 찾다 - 제75회 요미우리 문학상 수필·기행상 수상작
니시 가나코 지음, 김현화 옮김 / 티라미수 더북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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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통해�‘나’라는�감각을�선명하게�느껴보고�싶다면�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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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코난 도일, 선상 미스터리 단편 컬렉션 - 모든 파도는 비밀을 품고 있다 Short Story Collection 1
남궁진 엮음, 아서 코난 도일 원작 / 센텐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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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의 아버지이자 미스터리 소설의 대부인 아서 코난 도일은 의대를 졸업하고 안과 의사로 '셜록 홈즈'를 집필했다,는 건 몰랐지만 이후 전업 작가로 변신, 셜록 홈즈 시리즈로 미스터리 부흥을 이끌었다고 한다.


아서 코난 도일은 몰라도, 아마 셜록 홈즈나 명탐정 코난 정도는 다 알지 않을까? 그 인물들을 탄생시킨 작가의 단편집이라니 이 무더운 여름과 딱 어울리는 책이 어디 이만한 게 있을까 싶다. 이 단편 컬렉션은 선상을 주제로 한 6개의 미스터리와 악명 높은 해적 선장의 4개의 이야기를 담았다.


범인을 쫓으며 사건을 해결해 나갈 생각에 벌써부터 짜릿한데, 더 특이할 만한 것은 1922년 출간된 이후 이 책이 국내 최초 공식 번역본이라는 점이다.


첫번 째, <조셉 하바쿡 제프슨의 성명서>는 보스턴을 출발해 리스본으로 가는 항해에 버려진 '마리 셀레스트호'에 대한 미스터리다. 어쩐지 탑승자 중 고랑이라는 인물에 집중하게 만드는 것이 장치처럼 느껴진다. 조셉의 항해 일지를 유심히 관찰하며 장면을 머릿속에 그려 놓는다. 배는 출항한지 고작 2일이 지났음에도 나는 이미 사건 중심에 있고, 범인을 추적 중이다. 한데 같이 동승하기로 한 경험 많은 두 명의 선원은 갑자기 어떻게 된 것일까? 그냥 사라진 것일까? 아니면 누군가 살해? 매우 흥미롭다.


두번 째, <작은 정사각형 상자>는 보스턴을 출발, 잉글랜드 쪽으로 향하는 스파르탄호에 대한 미스터리. 접신이라도 한 듯 갑판 위에서 이제 막 출항하는 배가 재앙에 휩싸일 것이라는 느낌적인 느낌을 발현하는 함몬드의 심리가 흥미롭다. 이미 출항하는 배를 향해 돌진하는 두 남자가 이 미스터리의 키일까? 역시 보스턴과 2명의 남자가 등장한다. 그리고 내 추리는 항로를 잃고 새됐다.


세번 째, <육지의 해적>은 롤스로이스를 탄 판사, 헨리의 이야기지만 미스터리라고 하기엔 좀 그렇고 어설픈 리벤지 정도가 좋겠다. 그래도 단숨에 읽어 버릴 만큼 재밌다.


네번 째, <폴스타호의 선장>은 선장인 니콜라스 크레기를 주목한다. 탐욕적이고 폭력적인 데다 엽기적인 눈빛을 가진 선장과의 동행. 거기에 폭풍우 치는 밤, 어둠을 밝힐 더 이상의 양초가 없다는 암시는 짜릿하다. 한데 결국 북풍이 불까?


123쪽


다섯번 째, <협력의 끝>은 배, 그러니까 요트처럼 보이는 긴 경주용 배인 게임콕의 선장 멜드럼을 주목한다. 레피도프테리스트 나비를 잡기 위해 세네갈에서 흘러 내려왔다던. 그리고 도착한 섬에 대한 ‘단조로운 삶일 것 같다는’ 인상에 대해 종종 화끈한 일들이 벌어진다며 미소 짓는 세베랄 박사의 의미심장한 복선이 기대하게 만든다. 한데 생각보다 김빠지는 결론과 번역이 집중력을 흐리게 한다.


“나는 박사가 말한 곳을 바라보았다. 짙은 녹색의 수풀 사이로 하얀 증기가 긴 촉수처럼 꿈틀거리며 우리를 향해 기어 오르는 것이 보였다. 동시에 공기가 갑자기 축축하고 차가워졌다.” 141쪽


여섯번 째, <줄무늬 상자>는 바히아를 출발해 런던을 향하다 돌풍에 휩싸인 함선 노사 센호라 다 빅토리아호에 주목한다. 게다가 그 배에는 절대 열지 말 것을 경고하는 알 수 없는 값어치를 가진 보물 상자가 가득했다. 그리고 그 보물 상자 앞에 머리통이 박살 난 채 죽어있던 선원과 이를 발견한 또 다른 탐욕 가득한 선원 암스트롱이 등장한다. 역시 미스터리는 인간의 탐욕이 재앙의 시작인가? 아니면 저주?


그리고 악명 높은 <샤키 선장>에 대한 4편의 연작은 우리들의 영원한 해적왕 루피와는 확연히 다르지만 어쨌든 해적선 '해피 딜리버리호'의 악명 높은 샤키 선장에 대항하는 '모닝 스타호'의 선장 존 스카로우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근데 어째 영화 <캐러비안의 해적> 존 스패로우 느낌이 나지?


어쨌거나 샤키 선장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기도 전에 갑자기 자신의 모닝 스타호에 총독과 남작이 승선하게 될 것을 통보받는 존 스카로우로 여정은 흥미롭다. 이어 샤키 선장만큼이나 악명 높은 스티븐 크래독, 코플리 뱅크스 선장과 아름다운 여인 이네즈 라미네즈와 샤키 선장의 이야기가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226쪽


이 책의 원작은 어쩌면 작가가 장편을 위한 뼈대를 만든 것일지도 모르겠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숨 막히는 반전이나 서늘함을 동반한 긴박감은 많지 않다. 살짝 번역도 매끄럽지 않은 부분도 눈에 띠기도 하고. 아무튼  짧은 이야기 구조 속에서 펼쳐지는 10개의 미스터리는 이 여름을 잠시 식혀주기엔 충분했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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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코난 도일, 선상 미스터리 단편 컬렉션 - 모든 파도는 비밀을 품고 있다 Short Story Collection 1
남궁진 엮음, 아서 코난 도일 원작 / 센텐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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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이야기�구조�속에서�펼쳐지는�10개의 미스터리는�이�여름을�잠시�식혀주기엔�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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