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고 있어요, 농담이에요
내성적인작가(한신) 지음 / 베가북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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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살고 있다'라는 게 농담이라는 말이 뭉근히 가슴을 눌렀다. 쉰이 넘어 절반을 지나는데도 여전히 잘 사는 게 뭔지 잘 몰라서 더 그럴지도 모르겠다. 디자인과 음악 관련 일을 하고 있고 인별에서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는 공감 글로 위로를 전하고 있다는 작가가 거리감이 느껴지다가 된장찌개와 숭늉을 좋아한다는 그의 입맛에 부쩍 가깝게 느껴지는 이상한 공감도 받는다.


라면처럼 익숙한 입맛으로 아무 감각 없이 후루룩 흡입하고 말기에는 너무 아까운 문장들이 넘쳐난다. 곱씹고 필사하면서 마음에 꾹꾹 담아야 하는 문장들이 방지턱 마냥 읽는 속도를 줄이고 있다.


읽다 보면 풍요롭지 않은 내 삶을 단박에 꿰뚫는 듯한 그의 통찰에 흠칫 놀란다. 나는 원치 않은 일을 매초 단위로 해야 하고 보기 싫은 사람 앞에서 웃어야 살 수 있는데… 내 삶의 빈곤이 마치 우주가 펼쳐진 것처럼 순간 가늠이 되질 않아서 먹먹하다.


82쪽, 삶의 풍요


"결혼의 성공은 좋은 상대를 찾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좋은 상대가 되는 데 있다."

93쪽, 잘 살고 있어요, 사랑은 두렵지만


프랑스 작가 앙드레 모루아의 말에 덧붙여, 모든 인간관계에 적용되는 말인 것 같다는 그의 말에 덩달아 공감하면서 빈약한 내 인간관계가 오롯이 드러나버려 또 한 번 먹먹해진다. 한편 서로에게서 영원을 본다는 감각이 어떤 것일까 궁금해한다. 입에서 굴리기만 해도 이 신비롭고 황홀한 감각들이 살아 오르는데 여태 모르고 살았다니, 새삼스럽게 입에 올리고 굴리고 굴려 보며 혼자 웃는다. ​


97쪽, 인연


삶은 종종 눈물을 머금게 만드는데, 그럴 때 고개를 떨구지 못해 들어야 하는 일이 많은데, 그때마다 하늘은 햇살을 뿌려댔다는 걸 깨닫는다. 그러다 문득 와씨 어떻게 이런 글을 써 낼 수 있지? 이렇게 감정을 흔들 수가 있지? 하면서 또 눈물을 머금게 만든다.


눈물을 머금으려

고개를 들어 본 하늘은

까불지 말라며

햇살을 뿌려댔다


155쪽, 눈물을 머금으려


백 번을 읽고 또 읊조리다 목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따끔거리는 문장을 만난다. "살기 위해 살지 말"라는 그의 말이 마치 그러고 있는 나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아 참지 못하고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꿈에서 멀어지는 몇 가지 이유를 듣다가 아마 분명 결국 내 꿈은 흰색 물감처럼 굳어 버렸거나 아니면 애초에 없었다는 걸 깨닫게 됐다.


255쪽


내성적인 작가가 쓴 글을 내성적인 데다가 갱년기까지 관통하고 있는 내가 읽으니 소용돌이치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다. 이 책으로 그의 감성이 짙게 베인 디자인과 음악들이 궁금해졌다. 추운 이 계절, 난로가 되어 줄 듯하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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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살고 있어요, 농담이에요
내성적인작가(한신) 지음 / 베가북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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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이 계절, 난로가 되어 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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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옳을 순 없어도 항상 이길 수는 있습니다 - 쇼펜하우어 대화의 기술 (책속 부록 :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연보)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지음, 권기대 옮김 / 베가북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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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과 논쟁은 분명 다르다. 물론 대화 역시 그러하고. 자기주장을 전달하는 정도의 토론을 좋아하는 데 종종 마음과는 달리 토론이 죽자 사자 싸우자고 덤비는 논쟁이 되기도 하는지라 제목이 주는 임팩트가 작지 않았다. 그런 논쟁에서는 감정이 쉬 상하고 숨이 목젖까지 차올라 말까지 버벅대다 결국 분해서 눈물까지 글썽이면서 고개를 떨구는 경우가 허다해서.


그렇다고 이기기 위한 목적으로 논쟁을 하는 것도 그다지 옳은 것 같지는 않지만 싸우자고 덤비는 인간들이 천지삐까리인 세상에서 비법을 알아 두면 요긴할 것 같다. 쇼펜하우어 논쟁법이 핫하지 않은가.




이 책, 논쟁적 토론법(Eristische Dialektik)은 헤겔의 사상을 거침없이 비판하고, 칸트의 철학적 한계를 극복했다는 쇼펜하우어의 삶에 대한 철학을 엿볼 수 있는 38가지 대화의 기술을 담았다. 160년 전부터 벌써 그는 삶을 왜 고통의 측면에서 이해 했을까 궁금하다. 헤겔에게 밀려서?


"논쟁의 근원적 목표는 어느 편의 주장이 진실이냐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주장하는 논거가 옳은 것으로 받아들여지도록 모든 대화의 전략을 동원해서 이기는 것" 8쪽. 옮긴이의 글


그는 현실을 낙관적인 측면으로 바라보는 헤겔을 비판하면서 비관적인 측면에서 현실을 자각하고 그 안에서 희망을 찾아가는 것이라 주장한다. 하지만 아무리 논쟁의 전제가 저렇다 하더라도 정의나 도덕이나 윤리를 눈 감는 순간이 과연 올바른 논쟁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버릴 수 없다. 그래서 그런지 논쟁의 본질을 짚고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내 논점의 전제가 아무리 옳고 상대가 그것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해서 거짓 전제를 만들어 내고, 필요하면 권위를  왜곡이나 날조까지 해서라도 인정을 받는 게 중요할까? 그는 그러라고 하는데 당최 공감하기 쉽지 않은 방법들의 연속이다.


64쪽, 불리하면 삼천포로 빠져라


논쟁에서 공격뿐만 아니라 불리한 상황을 타개할 방어도 알려는데 사례로 든 인물이 다음 아닌  타고난 입심만을 자랑하는 트럼프다! 불리하면 화제를 바꾸던가 자기 자랑으로 덮어버리는 그를 보면서 혀를 내둘렀던 기억이 났다. 뭐 우리에게도 그런 인물이 있긴 하지만.


한편 공격이든 방어든 일방적인 방식에 대한 논쟁법을 다루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19번째 법칙처럼 논쟁에서 상대방을 얕잡을 때 사용하는 "내 수준으로는 너무 어려워서 이해하기 어렵다"라며 상대의 논점을 무마하는 방식을 설명하면서, 아무나 써먹으면 안 되고 지적 수준이 상대방보다 자신이 뛰어날 경우에 사용해야 함을 코칭 하기도 한다.


111쪽, '나무'를 반박함으로써 '숲' 자체를 물리쳐라


"'논쟁적 토론술'이란 논쟁을 벌일 때 사용하는 기술이요, 정당한 수단을 쓰든 정당하지 못한 수단을 쓰든 '내 주장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논쟁을 벌일 때 사용하는 기술이다." 130쪽, 논쟁적 토론술


그는 논쟁적 토론술에 대해 이렇게 주장하며, 이런 논쟁의 근원에 대해 인간이 원래 사악하고 허영심 많고 수다스러워서 객관적 진실과는 관계없이 자기 주장을 옳은 것으로 밀어 붙이려는 천성을 타고 났다고 주장하면서 인간 내면의 허점을 지적한다.


이를 바탕으로 생각해 보면, 토론이나 대화에서 사용하기보단 싸우자고 덤비는 누군가를 물리쳐야 한다면 쇼펜하우어의 38가지 논쟁의 기술은 분명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짧은 단문과 쉬운 해설, 거기에 적당한 사례와 일러스트는 이해를 돕는다.


목소리 큰 놈들이 먹고 들어가는 세상에서 작은 목소리로도 승리의 기쁨을 맛볼 수 있는 대화의 테크닉이 아닐까 싶다. 한편 세상이 고통스러운 게 사실이긴 하더라도 사사건건 불평불만을 앞세우는 염세주의자가 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다. 그런 면에서 어쩌면 이 책은 그렇게 되지 않도록 안내서가 되줄 매력적인 책이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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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옳을 순 없어도 항상 이길 수는 있습니다 - 쇼펜하우어 대화의 기술 (책속 부록 :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연보)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지음, 권기대 옮김 / 베가북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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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가 큰 놈들의 세상에서 작은 목소리로도 승리의 기쁨을 맛볼 수 있는 대화의 테크닉서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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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 문장의 기억 (양장본) -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하여
박예진 엮음, 버지니아 울프 원작 / 센텐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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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저 방울소리만 울리며 떠난 목마, 그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를 기다리는 박인환의 시에서 살아 숨 쉬던 그 버지니아 울프가 정신 질환에 시달렸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됐다. 그의 많은 작품 중에 <자기만의 방>을 읽었을 뿐이다. 그것도 고백하자면 내 깜냥으로는 어려워서 이해 수준이 아니라 훑은 수준이었다. 그런 그의 작품 세계에서 뽑아낸 212개의 문장이라니 기대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북 큐레이터이자 고전문학 번역가이기도 한 역자는 고전 문학의 원문 속에서 문체의 미학과 풍부한 표현이 넘실대는 문장들을 수집해 자신만의 편역으로 독자와 함께 나누고 있다. 역자는 버지니아 울프의 13작품들에서 영감을 받는 문장을 뽑는다. 프롤로그를 보면 작가로 페미니스트로서 그에 대한 무한 애정도 느낄 수 있다.


전에 읽었던 <버지니아 울프의 방>이라는 제목의 번역본과는 다르게 편역된 이 책의 <자기만의 방>은 좀 새롭다. 여성으로 제한된 삶에 갇혀 있어야 했던 현실을 조근하면서도 힘 있는 목소리로 적어낸 글에 편역자의 생각이 덧입혀져 경제적 '능력'에 휘둘리는 보통의 여성들과 다른 그 자신에 대한 자조가 느껴진다.




이 책은 작품 속 문장들을 원문과 함께 번역을 해준다. 여기에 편역을 추가해 읽는데 어렵지 않게 의식의 흐름을 따라갈 수 있게 한다. 어렵고 난해한 문장은 편역자의 해설로 의미를 좀 더 깊이 알 수 있기도 하다. 이 책의 장점이 아닐까 싶다. 또 하나의 재미랄 것은 버지니아 울프의 문장을 읽고 자신만의 번역을 통해 의미를 나눠보는 공간을 마련해 놓았다.


Though we see the same world, we see it through different eyes.

우리는 같은 세상을 보지만 다른 눈으로 봅니다.

41쪽,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목소리, Three Guineas_3기니



54쪽, 내면의 목소리를 찾기 위한 여행

82쪽, 결혼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버지니아 울프의 첫 소설이었다는 3기니에 대한 편역자의 평가도 그렇지만 읽다 보면 그는 여성 권익과 극심한 차별을 부르짖는 데 있어 좀 전투적인 활동가가 아니었을까 싶을 만큼 가부장적이고 남성우월적인 사회를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171쪽, 영혼의 움직임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이 책은 버지니아 울프의 손꼽히는 문장을 소개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의 철학과 여성에 대한 사회정의, 페미니즘의 확실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면서 남성이든 여성이든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으로 삶을 영위하는 것의 중요하다 이야기 하는 그를 좀 더 깊이를 알 수 있게 만든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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