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과 인권 - 돌봄으로 새로 쓴 인권의 문법
김영옥.류은숙 지음 / 코난북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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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을 이렇게 생동감 있게 표현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은 인권 활동의 현장에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권을 활자에만 가두고 살아오다 얼마 전부터 인권교육을 받으며 깨닫는 단 하나는 인권은 태어남과 동시에 하늘에서 공짜로 뚝 떨어진 것이지만 끊임없이 노력하지 않으면 제대로 누리며 살기 어렵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여기에 더해 돌봄이 왜 돌봄이고 왜 인권을 떼려야 뗄 수 없는지 명확히 한다. 신입생 티를 아직 다 벗지도 못했던 대학 2학년 때 갑작스러운 사고로 전신마비가 됐다. 말 그대로 무한 돌봄 의존자였기에 돌봄에 인권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너무도 잘 안다. 그래서 이 책은 시작도 전에 얼마간의 지침이 있었다.


표지가 예사롭지 않았다. 20개의 숫자는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알 수 없는 선으로 서로 엮여 있지만, 어느 것은 선에서 벗어나 있기도 하고 어느 것은 떨어져 독립적이기도 하다. 마치 대한민국 돌봄 사각지대처럼.


이 책은 인권활동가인 두 저자가 돌봄을 인권 위에 올려놓고 철학부터 인식과 현장의 관념을 환기하고 전환한다. 나아가 돌봄을 권리로 인식할 수 있도록 만든다. 수동적 위치에 놓여 있던 돌봄을 주체적인 권리로 인식하게 해 그동안의 관념을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든다.


"돌봄은 애정, 헌신, 신뢰의 관계인데 이기성이 대결하는 구도를 끌어들이기 싫다는 것이다. 권리를 끌어들이면 돌봄이라는 숭고한 행위가 강제적인 의무나 책무 같은 것으로 격하된다는 감정도 있다."16쪽, 권리를 꺼리는 돌봄?


'출근'과 '출근 밖'을 구분하며 노동의 '가치'와 아울러 다양한 돌봄에서 '권리'를 이야기하는 데 그런 돌봄의 이면을 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돌봄이 개인에서 '나라를 돌본다'라는 말처럼 국가로 확장될 수 있음도 놀랐다. 사실 장애인 복지 현장에서 경험하는 인권 역시 열악하다.


장애의 경중을 가리지 않고 인간답게 산다는 조건에 '노동'을 필수조건으로 내세우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고, 반면, 저자가 지적한 것처럼 욕설에 얻어맞고 물리고 뜯기는 현장에서 “복지사의 인권은 누가 지키느냐"라는 외침이 끊이지 않는 상황의 대척은 비일비재 한 현실을 드러내면서 그로 인한 (서비스의) 질적 저하를 거론하며 돌봄 의존자와 제공자 사이의 권리에 대한 문제를 지적한다.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권리의 세계는 1인칭과 2인칭뿐 아니라 무수한 3인칭으로 구성되어 있다." 18쪽, 권리는 의무를 부과하는 정당한 힘


권리는 필요 또는 욕구와는 분명 다르고, “타자에게 의무를 부과할 수 있는 힘(21쪽)”이 권리라는 자격에 대한 설명은 쉽게 이해된다. 인권이 천부적으로 갖게 되는 것이라는 의미와는 다르게 “인권이 실현될 수 있는 구조와 질서에 따른 주체, 대상(의무자), 내용이라는 점에서 인권은 운동이자 정치(26쪽)”라는 저자의 지적은 눈여겨보게 된다. 어디에서 들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복지에 정치가 끼어들면 안 된다는 말에 깊숙한 공감이 있었는데, 돌이켜보면 과연 정치가 끼어들지 않으면 복지는 제대로 구현될 수 있을까라는 의심이 들었다.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에서 돌봄 제공자가 갖는 권력은 돌봄 의존자를 수혜자 혹은 지시 수행자의 위치로 전락시킨다. 특히 상시 프로그램 발달장애인 이용자에게 아무렇지 않게 “우리 애들”이라거나 “우리 친구들”이라 취급하는데 이런 태도를 의식하지도 못하는 돌봄 제공자가 많다. 이렇게 보호나 수혜를 전제로 한 서비스의 영역은 돌봄 의존자의 영역으로 내모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입장을 바꿔 누군가 돌봄 제공자를 그런 취급을 한다면 기함하지 않겠나.


TV 드라마에서 파킨슨으로 몸과 기억의 기능을 잃어가는 현실을 인간 존엄으로 연결 짓는 설명은 가슴이 묵직해진다. 그리고 늘 답답함이 있었던 질문을 마주한다. 의식도 없고 가족도 기억하지 못하는 순옥에게 '인간 존엄'의 선언적 내용이 무슨 의미냐고 묻는 질문은 중증 발달장애인에게 당신은 뭘 원하느냐고 묻는 현장의 딜레마와 유사한 접점이 있지 않을까. 그 역시 무엇으로도 위로도 답도 되지 않는다.




뒤이어 저자는 존엄에 대해 그렇게 '기억하는 능력', '조절하는 능력'을 잃어 가는 사람들이 다른 방식으로 감각하고 움직이는 상태를 보완하고 지원하는 타인의 응답 속에서 존재한다고 한다. 즉 돌봄 제공자의 태도에 따라 돌봄 의존자의 존엄이 지켜질 수 있다는 지적은 많은 사유를 동반하게 한다.


또 저자는 돌봄에서의 인정(re-cognition)에 대해 언급하는데, 인정은 언제나 상호 인정이라고 말한다. 덧붙여 "내가 그를 다시 알아본다는 건 그와 내가 서로 타자인 상태에서 만났고 자기에게 다가온 타자의 헐벗은 취약한 얼굴이 송신하는 책임의 메시지를 수신했음을 기억하는 행위다."라고 한다. 다시 말해 "'너를 인정하거나 인정하지 않을 수 있는 권력이 내게 있다'가 아니다.(69쪽)"라는 의미를 담는다고 한다. 이 말이 굉장히 따뜻하게 다가왔다.


이처럼 돌봄에서의 호혜성이 포장된 인정은 상호(inter)의 구조를 지닌다고 저자는 못 박는다. 한데 읽으면서 드는 의심은 과연 이런 상호 의존이 주는 인정의 범위가 왜 대부분 가족에 한정되는 가다. 치매(인지기억장애)나 정신을 포함한 신체장애 같은 일시적이 아니라 평생 안고 가야 할 돌봄의 부분에서 드러나는 취약성을 '나'와 '너'가 아니라 '가족'이 짊어지는 현실에서 타자가 포함된 ‘우리’라는 주장은 공염불이 아닐까 싶다. 돌봄을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주장은 과연 상호 의존성을 갖는가.


책장을 넘길 때마다 가슴이 뜨끔거리기 바빴다. 여태 인권적인 삶을 살아본 적이 없던 탓에 부끄럽기도 하고 이제라도 어떻게든 노력할 부분을 찾아보려 사유하게 만든다. 특히 강도영의 사례에서 자력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살아 있는’ 의미의 유무를 판단하는 부분에 저자가 던지는, ‘그런’ 상태라면 살아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순간 대답을 망설였다. 그리고 멍해졌다.


나 역시 자력으로 숨을 쉴 수 없어 에크모에 의지해 3개월 넘게 숨을 쉬어야 했었다. 만약 그때 엄마가 나를 두고 ‘살아 있는’ 것에 의미를 따졌다면 나는 살아 있을 수 있었을까. 엄마는 아들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식물인간'이 됐고 여기서 오는 돌봄의 경제적, 정신적, 체력적 문제를 몰라서 포기하지 않았을까. 돌봄이 인권의 영역에서 살아있어야 하는 이유를 나는 경험했음에도 잊고 있었다. 저자 덕분에 살아 있는 것의 의미가 완전히 새로워졌다.


또 민폐를 돌봄의 입장해서 생각해 보는 대목 역시 가슴이 먹먹해진다. “폐 끼치지 않으려면 타자와 관계 맺고 어울리는 삶에서 물러 나야만 하는 삶"이라는 지적은 이제는 공공장소에서도 타인에 대한 불편한 말을 서슴없이, 그것도 다 들리도록 큰 소리로 말하는, 치매가 한창 진행 중인 아버지를 떠올리게 한다. 발달장애인은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그래서 보통의 돌봄 제공자는 부끄럽거나 혹은 지쳐서 자신은 돌봄 의존자가 된다는 것에서 의식적으로 예외로 두려 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나는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나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같은 다짐은 의식적으로 조절이 불가능하다는 걸 이미 알고 있는데도 말이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누구나 노년의 시기를 겪는다. 의존은 그리고 돌봄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서 민폐가 아니다.


197쪽, 시민권과 인권으로서 돌봄권


책을 읽으면 알겠지만 온통 밑줄을 그어야 할 만큼 한자 한자 토씨 하나 허투루 넘길 수 없다. 돌봄이 개인을 넘어 사회 시민으로 확장되어야 한다는 담론은 무조건 옳다. 돌봄이 삶의 어느 한 부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생애 전반에 거쳐 꾸준하고 지속적으로 유지되어야 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이 있다. 그 이야기에 연대해야 한다는 마음이 꿈틀댄다. 꼭 읽어 보시라.


솔직히 머리 아픈 어려운 개념들로 가득 차서 더디게 읽혔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돌봄과 인권을 고민하고 사유하게 만드는 책이다. 가능하다면 아예 통째로 외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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