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롱고롱 하우스 - 제2회 사계절그림책상 수상작 사계절 그림책
조신애 지음 / 사계절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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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로서 그림책의 미덕은 누구나 볼 수 있고 누구나 봐도 좋다는 것이다. 어린이가 보아도 어른이 보아도, 남자가 보아도, 여자가 보아도 그림책은 좋다. 이 그림책 고롱고롱 하우스는 이런 그림책의 미덕을 충실히 담고 있는 멋진 그림책이다. 누구나 봐도 좋기 때문에 아무도 보지 못한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는 책이 바로 이 고롱고롱 하우스다.

우리는 흔히 부모됨의 어려움을 안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부모에게 효도해야 한다고 은혜를 갚아야 한다고 느낀다. 그러면서도 정작 어린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어떤 수고를 하는지는 상상하지 못한다. 실제로 부모가 되어 아이를 돌보기 전까지는 알지 못하는, 알고 나서는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부모의 세계는 존재한다. 갓 태어난 어린 아이를 돌 무렵까지 키우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과 노동이 필요한가. 그 수고로움과 고달픔은 쉽게 부모의 은혜라는 말도 치환되고 그래서 갚아야 할 부채로 남는다. 이 책에서도 고롱고롱씨가 바다를 돌보는 하루가 오롯이 나타나 있다. 언제나 아이보다 먼저 일어나려고 하지만 아이의 울음 소리에 무거운 눈꺼풀을 힘들게 밀어 올리고 잠들 때까지 먹이고 씻기고 놀아주는 하루의 일과가 반복된다. 단순하지만 고단한 일상, 한없이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야만하는 일상이 고롱고롱 하우스 곳곳에 담겨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롱고롱 하우스에는 구체적인 사랑이 가득하다. 사랑으로 가득한 산만한 그림책이다. 어느 공간에서든 해야 할 일이 있고 하고 있는 일이 있다. 일이 없으면 아이가 있다. 그러나 또 그렇기 때문에 그 작고 소박한 집이 따스하고 복닥복닥하는 하루가 보람차다. 어느새 아이는 자라고 있고 또 고롱고롱씨는 부모가 되어간다. 이것이 사랑이 아니라면 무엇이 사랑이겠는가. 바다를 위해 식사를 준비하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고, 외출을 하는 이 일상이 아이를 자라게 하는 사랑인 것이다. 이것이 누구나 이 책을 보았으면 하는 이유다. 바로 오늘, 지금 당신이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한 때 누군가 당신을 이렇게 수고롭게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눈을 떼지 못하고 당신의 일거수 일투족을 바라봐 주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사람들이 이 책을 보면서 부모의 은혜를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누구나 틀림없이, 과거에 사랑을 받은 적이 있다는 사실을 많이 느꼈으면 한다. 비록 기억이 나지 않을 시기이지만 그 사랑의 증거가 바로 지금의 당신이므로. 그리고 이렇게 수고로운 사랑을 꼭 아이가 아니더라도 다른 누군가에게 그대로 베풀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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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공부 사전 슬기사전 4
김원아 지음, 간장 그림 / 사계절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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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그 누구보다 잘 하고 싶어하는 어린이가 읽으면 좋을 책

어린이들은 망했다는 말을 자주 한다. 도화지에 그린 밑그림이 조금만 마음에 안들어도 망하고 받아쓰기에서 실수로 한 개를 틀려도 망한다. 어린이들이 고작 아홉 살의 나이에 하루에도 몇 번씩 망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일이 자신의 생각대로 풀리지 않는데서 오는 답답함을 마땅히 표현할 줄 모르는 어휘의 빈곤함도 그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고, 자라면서 조금의 실수도 허용되지 않았던 경험이 무의식적으로 망했다는 표현으로 드러날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주변의 어른들이 습관처럼 하는 망했다는 말을 역시나 습관처럼 하는 것일 수도 있을테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아이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망하고 또 망한다. 처음 슬기로운 공부 사전을 받아 들고 목차를 보았을 때 처음 떠올렸던 건 바로 아이들의 그 목소리

망했다였다.

이 책은 그 망했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아이들에게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다음부터는 망하지 말고 잘 좀 해보라는 의미에서가 아니다. 망하고 싶지 않은 너에게 사실 너는 망하지 않았으며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고 열심히 하는 과정이 다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조금 더 오래 산 사람으로서 말해주고 싶어서다.

사실 이런식의 자기 계발서는, 더구나 아직 자라고 있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자기계발서는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모든 성공의 요소에는 행운이라는 큰 우연이 작용하는데 어떤 분야에서 성공을 했거나 이미 어린 시절을 지나 어른이 된 사람들은 마치 개구리가 올챙이 때를 잊듯 이 행운을 잊고 자신의 과거를 왜곡하고 미화한다. 마치 노력과 의지만으로 성공을 일구었으며 따라서 자신이 누리는 성공의 열매는 당연하다는 식으로 말이다. 노력을 하다보면 달콤한 열매를 얻을 수 있고 성공을 하지 못한 것은 개인의 책임이며 아직 노력이 부족해서라고 독자에게 속삭인다. 그러나 어디 공부가 그러한가?

공부 역시 재능과 운의 요소가 크게 작용하는 영역이다. 그러나 책에서는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노력이 없으면 안된다고 말한다. 어린이들이 언뜻 생각하기에 공부 천재이거나 공부에 재능이 있는 친구들은 공부가 괴롭지 않고 즐거울 것이라고만 생각하는데 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재능이 없더라도 포기하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것, 열심히 노력하는 과정에서 그래도 얻을 것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 점이 이 책의 미덕이 아닐까 싶다. 어른들은 말하지 않지만 아이들은 이미 느끼고 있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하고(열심히 노력해도 결과가 늘 좋을 수만은 없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부를 하다보면 배울 것이, 얻는 것이 있다는 것, 세상에는 열심히 하기 전까지 알 수 없는 것들이 많다는 점 말이다.

과정으로서의 노력의 소중함. 그 가치를 보여주면서도 이 책은 어린이의 마음을 살피는 것이 느껴진다. 백 점을 맞아도 불안한 마음, 백 점을 맞으면 겸손해야 한다고 배워 마음껏 기뻐하지도 못하는 어린이들의 애달픈 마음을 작가는 마음껏 기뻐해도 된다고 응원해준다. 누구보다도 백 점을 받고 싶은 어린이들에게, 백 점을 받으면 슬그머니 입꼬리가 올라가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주체할 수 없는 어린이들에게 보내는 응원의 메시지는 무엇보다 반갑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책의 전반에 걸쳐 노력과 의지를 강조하고 있는 점이다. 물론 사람이 자신의 의지로 목표를 세우고 목표에 도달하려고 노력을 하는 것은 매우 값진 일이나 노력 역시 재능의 한 조각이라는 것도 사실이다. 노력할 수 있는 의지와 용기가 바로 재능인 것이다. 때문에 어린이 독자들은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그냥 한 번 해보는 것, 어제보다는 조금 더 나은 내가 되는 것, 남과 비교하지 않고 즐겁게 지내는 것 이 정도로 말이다.

자라는 과정에서 그 누구보다도 많이 배우기를 꿈꾸고 노력하기를 원하는 존재가 바로 어린이들이다. 어른들의 눈에 어린이는 마냥 놀기 좋아하고 게임이나 하고 싶어하는 철부지로 보일지 모르지만 마음 속에는 진지한 고민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 함께 따라다닌다. 그런 어린이들의 마음에 공감하고 어린이들을 염려하는 마음으로 책을 함께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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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초옥 실종 사건 사계절 아동문고 106
전여울 지음, 가지 그림 / 사계절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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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어른이 된 사람으로 어린이의 책을 읽다 보면 무엇보다 책이 어린이가 읽기에 흥미로운가, 재미가 있는가를 눈여겨보게 된다. 활자나 그림보다는 영상이 더 익숙한 어린이 세대에게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재미가 없다면 아예 선택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윤초옥 실종 사건은 책의 마무리까지 긴장감을 놓지 않고 다음 이야기를 궁금해 할 만한 흡입력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책을 좋아하게 되고 잘 읽게 되는 과정에서 거치는 몇 가지 장르적 단계로 볼 때 추리, 미스터리, 탐정물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분야다. 윤초옥 실종 사건 역시 제목부터 윤초옥이 실종될 것이고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에서 윤초옥이 왜 실종되었는지, 실종된 윤초옥을 다시 찾을 수 있을지에 대한 단서가 나올 것임을 기대하게 만든다. 책의 앞머리에서 윤초옥이 실종된 경위를 간략하게 알려주고 하필 그날따라 초옥의 어머니가 패물을 많이 소지하고 있었다는 점이나 힘이 좋기로 소문난 운산댁이 유독 초옥이 실종된 그 상황에서는 힘을 못쓰고 산적떼에게 당하고 말았다는 이야기를 슬쩍 흘림으로써 이 실종 사건이 단순히 도적떼의 소행이 아니라는 점을 독자에게 알려준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2장 사라진 그넷줄에서 시작한다. 윤초옥 실종 사건에는 세 명의 어린 인물이 등장하는데 남자 아이 이해, 여자 아이 초옥, 홍단이다. 남자 아이면서도 꾸밈을 좋아하는 이해, 양반가의 여식으로 태어났으나 줄타기를 동경하는 초옥,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기녀가 되었지만 거문고 예인이 되기를 꿈꾸는 홍단이 그들이다. 이 아이들은 저마다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지만 꿈을 이루는 것은커녕 꿈을 말하는 것조차도 쉽지가 않다. 타고난 신분과 성별이라는 제약 때문에 이들이 가진 꿈은 언제나 말하기도 부끄러운 금기가 된다. 사당패의 꼭두쇠 아들로 태어난 이해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줄타기를 하도록 길러졌지만 어쩐지 줄타기에는 재능과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 작은 손거울을 들고 얼굴에 곱게 분을 칠할 때 비로소 이해는 다른 사람이 되는 것 같은 자유와 해방감을 느낀다. 여자 아이도 아닌 사내 아이가 화장을 좋아하다니 이해 아버지는 그런 이해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고 그저 아기였을 때 이해를 키워준 주모만이 이해를 안타깝게 바라볼 뿐이다. 초옥 역시 줄타기를 하고 싶지만 양반가의 여식이 천한 사당패의 줄타기 놀음을 배우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초옥은 차마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외면할 수 없어 동네 입구의 그넷줄을 끊어 혼자 연습을 하고 또 할 뿐이었다. 이해에게는 짐스러운 의무일 뿐인 줄타기가 초옥에게는 희망이자 꿈이 되고 초옥에게는 그저 양반의 딸로서 시집을 가서 수행해야 할 여성성으로서의 화장이 이해에게는 동경이 된다. 그리하여 우연히 만난 두 아이는 서로의 꿈을 이루는 것을 돕기로 한다. 이해는 초옥에게 줄놀이를 가르쳐주고 초옥은 이해에게 값비싼 화장품을 준다.

이렇게 두 아이가 서로 가진 것을 나누며 몰래 몰래 꿈을 키워갔더라면 이 이야기는 초옥의 실종에까지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초옥의 실종을 향하여 이야기는 흘러가야만 하는데 그 과정에서 필요한 인물이 바로 홍단이다. 홍단은 가난 때문에 기녀가 되었지만 거문고를 배우며 예인의 꿈을 키우는 아이인데 아해가 초옥에게 줄타기를 가르쳐준다는 사실을 알게되자 초옥에게 진정한 예인이 되고 싶다면 사람들 앞에서 줄놀이를 해보이라고 요구한다. 초옥의 실종을 위해 꼭 필요한 설정이기는 하지만 이 이야기에서 다소 아쉬운 것은 꿈을 가진 사람에게 꿈의 진정성을 증명하라고 요구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처음에 초옥은 줄을 타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 사람들 앞에서까지 기예를 선보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아마도 양반의 자제로서 그것까지는 상상 밖의 일이었을 것이다. 혼자 조용히 줄을 타다가 홍단의 도발로 인해 꿈을 증명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고 물러설 수 없어 받아들인 제안에서 초옥은 자신에게 박수를 쳐주는 사람들을 보고 비로소 세상 사람들을 다 가진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이제는 양반이라는 신분의 굴레를 벗고 사당패로 들어가야 할 이유, 즉 실종이 되어야만하는 필연적인 이유가 생긴 것이다.

초옥이 줄 위에서 훨훨 자유를 찾을 때 이해는 묘한 질투를 느낀다. 초옥은 비록 불완전하지만 꿈을 이루었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 아무리 험할지라도 줄을 타고 내려오는 초옥의 얼굴은 예인의 얼굴이자 아버지의 얼굴이었다. 이해는 아무리 노력해도 가질 수 없는 그 얼굴 때문에 이해는 초옥을 마음껏 축하해 줄 수가 없다. 대신 이해는 자신이 가진 재주, 화장하는 재주로 사당패에 남기로 결심한다. 초옥이 자신의 꿈을 위해 용기를 냈던 것처럼 자신 역시 꿈을 위해 용기를 내어 아버지 앞에 마주선다.

새로운 신분으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초옥은 양반가 자식으로서의 삶을 버리고 사당패 줄타기꾼으로 다시 태어난다. 산적떼의 습격을 가장한 실종 사건으로 초옥은 사당패의 일원이 되어 떠난다. 두 아이가 손을 마주잡을 때 서로의 손이 꿈을 이뤄주는 동아줄이 될 것이다. 물론 초옥은 사당패의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양반가로 돌아올 수도 있고 이해는 화장 대신 줄타기를 다시 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성장이란 그런 것이다. 그냥 열심히 마음을 다 해 해보는 것, 용기를 갖는 일 말이다.

다시 어린이 독자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이 책을 덮으며 문득 오늘날을 살아가는 아이들은 타고난 제약이 많아 고통스러운 이해, 초옥, 홍단조차도 부러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이 아이들은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이 하고 싶은지 분명히 알고 있기라도 했으니 말이다.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물어보면 모른다고 하거나 없다고 하는 아이들도 적지 않은 지금, 그러나 그런 아이들을 다그치기보다는 무엇이든 괜찮으니 용기를 가져보라고, 실패해도 괜찮으니 한번 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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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보떼봉떼 플라워 캘린더
정주희 지음 / 싸이프레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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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실물보다 사진이 훨씬 나은 달력입니다. 종이도 모조지도 아니고 너무 빤닥빤닥하고 실망이에요. 선물하려고 구매했는데 망설여집니다. 고급스러운 느낌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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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
천운영 지음 / 창비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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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소설의 조건중 하나가 독자를 어딘가 모르게 불편하게 하는 것이라면 천운영의 '바늘'은 독자를 불편하게 하는 것만큼은 충분히 충족시키고 있는 것 같다. 소설 바늘은 어딘가 모르게 기괴하고 낯설다. 현실에서 드물지 않게 마주치면서도 왠지 입에 올리기 꺼려지는 대상들을 소재로 천운영은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

입에 올리기 꺼려지는 소재란 무엇인가. 그것은 못생긴 여자, 문신, 간질, 고기에 대한 선호, 자살, 타인에 대한 공격성 등등이다. 남의 몸에 문신을 하는 것으로 먹고 사는 주인공은 지독히도 못생긴 여자이다. 그녀에게서 문신 시술은 받는 남자들은 그녀의 문신에는 만족하지만 막상 그녀와는 자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을 정도로 그녀는 추한 외모를 가졌다. 그런 그녀가 욕망할 수 있는 대상은 오로지 문신을 할 수 있는 남자들과 고기뿐이다. 문신을 하려고 하는 남자들과 고기는 전체가 아니라 오로지 부위만을 대한다는 점에서 묘하게 닮아있다. 그것들은 비록 남자들은 생물학적으로는 살아있지만 그녀에게 있어서는 다만 욕구를 충족시켜줄 뿐 욕망을 실현시키는 대상은 아니라는 점에서 도구적이고 불완전하며 이미 죽은 존재들이다. 그녀의 비틀린 욕망은 간질을 치료하기 위해 찾았던 미륵암의 주지 스님에게로 이어진다. 자신을 버린 어머니가 선택한 주지에게 그녀는 미움과 원망을 가지고 있다. 미움과 원망은 전쟁 박물관에 전시된 무기들로 스님을 공격하는 상상을 통해 드러난다. 여자의 공격성은 아주 섬세하고도 시각적으로 묘사된다.

여자의 식성 역시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놓고 자랑할만한 것은 못된다. 핏물이 도는 고기를 그저 밥에 얹어 먹는 여자. 따로 상추와 같은 채소를 곁들이지도 않는다. 그녀는 다만 고기를 원한다. 이런 여자를 섣불리 사랑할 수 있는 남자가 있을까.

어쩌면 이 소설은 세상에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이 막힌 여자의 비틀어질 수 밖에 없는 마음을 다룬 소설인지도 모르겠다. 예쁘지도 않고, 못생긴데다가 말도 더듬는 여자. 어머니에게서까지 버림받은 여자는 단순히 생계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미움을 보살피기 위해서 바늘을 들고, 고기를 씹는 것인지도 모른다. 만약 이러한 상황에서 남자라면 어땠을까. 주인공이 남자였다고 해도 이렇게 숨죽이듯 말을 더듬으며 살아야만 했을까. 전쟁 박물관의 무기들은 타인을 살상할 수 있는 온갖 무기들의 역사가 진열되어 있다. 그것은 공격 본능을 타고 난 듯한 남자들의 역사이기도 하다. 물리적으로든 화학적으로든 그것들은 사람을 해친다. 그런 허다한 무기들 속에서 여자의 바늘은? 적어도 여자의 공격성은 유년 시절 고양이를 화장실에 던진 이후로 살아있는 생명체를 대상으로 하지는 않는다. 여자는 바늘로 사람을 찌르지만 여자의 바늘은 사람의 몸에 그림을 그리는 도구로써 기능할 뿐이다. 여자의 어머니가 주지의 머리카락을 넣어서 자신의 바늘을 벼렸고 여자는 그 바늘로 남자들의 몸에 문신을 새겨 넣는다. 바늘과 명주실, 그리고 여러 종류의 염료들을 가지고서. 어머니와 딸의 인생은 그렇게 대물림 되는 것 같다. 어머니와 딸의 공격성은 기껏해야 자기 자신을 해치거나 문신을 그리는 것 정도이다. 그러니 이 소설의 기괴함은 그 공격성 자체라기보다는 여성이 공격성을 가진다는 것이, 그러한 공격성이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묘사한 그 장면 장면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자들은 정말 가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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