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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공부 사전 ㅣ 슬기사전 4
김원아 지음, 간장 그림 / 사계절 / 2023년 2월
평점 :
사실은 그 누구보다 잘 하고 싶어하는 어린이가 읽으면 좋을 책
어린이들은 ‘망했다’는 말을 자주 한다. 도화지에 그린 밑그림이 조금만 마음에 안들어도 망하고 받아쓰기에서 실수로 한 개를 틀려도 망한다. 어린이들이 고작 아홉 살의 나이에 하루에도 몇 번씩 망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일이 자신의 생각대로 풀리지 않는데서 오는 답답함을 마땅히 표현할 줄 모르는 어휘의 빈곤함도 그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고, 자라면서 조금의 실수도 허용되지 않았던 경험이 무의식적으로 망했다는 표현으로 드러날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주변의 어른들이 습관처럼 하는 망했다는 말을 역시나 습관처럼 하는 것일 수도 있을테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아이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망하고 또 망한다. 처음 슬기로운 공부 사전을 받아 들고 목차를 보았을 때 처음 떠올렸던 건 바로 아이들의 그 목소리
“망했다”였다.
이 책은 그 망했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아이들에게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다음부터는 망하지 말고 잘 좀 해보라는 의미에서가 아니다. 망하고 싶지 않은 너에게 사실 너는 망하지 않았으며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고 열심히 하는 과정이 다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조금 더 오래 산 사람으로서 말해주고 싶어서다.
사실 이런식의 자기 계발서는, 더구나 아직 자라고 있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자기계발서는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모든 성공의 요소에는 행운이라는 큰 우연이 작용하는데 어떤 분야에서 성공을 했거나 이미 어린 시절을 지나 어른이 된 사람들은 마치 개구리가 올챙이 때를 잊듯 이 행운을 잊고 자신의 과거를 왜곡하고 미화한다. 마치 노력과 의지만으로 성공을 일구었으며 따라서 자신이 누리는 성공의 열매는 당연하다는 식으로 말이다. 노력을 하다보면 달콤한 열매를 얻을 수 있고 성공을 하지 못한 것은 개인의 책임이며 아직 노력이 부족해서라고 독자에게 속삭인다. 그러나 어디 공부가 그러한가?
공부 역시 재능과 운의 요소가 크게 작용하는 영역이다. 그러나 책에서는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노력이 없으면 안된다고 말한다. 어린이들이 언뜻 생각하기에 공부 천재이거나 공부에 재능이 있는 친구들은 공부가 괴롭지 않고 즐거울 것이라고만 생각하는데 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재능이 없더라도 포기하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것, 열심히 노력하는 과정에서 그래도 얻을 것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 점이 이 책의 미덕이 아닐까 싶다. 어른들은 말하지 않지만 아이들은 이미 느끼고 있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하고(열심히 노력해도 결과가 늘 좋을 수만은 없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부를 하다보면 배울 것이, 얻는 것이 있다는 것, 세상에는 열심히 하기 전까지 알 수 없는 것들이 많다는 점 말이다.
과정으로서의 노력의 소중함. 그 가치를 보여주면서도 이 책은 어린이의 마음을 살피는 것이 느껴진다. 백 점을 맞아도 불안한 마음, 백 점을 맞으면 겸손해야 한다고 배워 마음껏 기뻐하지도 못하는 어린이들의 애달픈 마음을 작가는 마음껏 기뻐해도 된다고 응원해준다. 누구보다도 백 점을 받고 싶은 어린이들에게, 백 점을 받으면 슬그머니 입꼬리가 올라가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주체할 수 없는 어린이들에게 보내는 응원의 메시지는 무엇보다 반갑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책의 전반에 걸쳐 노력과 의지를 강조하고 있는 점이다. 물론 사람이 자신의 의지로 목표를 세우고 목표에 도달하려고 노력을 하는 것은 매우 값진 일이나 노력 역시 재능의 한 조각이라는 것도 사실이다. 노력할 수 있는 의지와 용기가 바로 재능인 것이다. 때문에 어린이 독자들은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그냥 한 번 해보는 것, 어제보다는 조금 더 나은 내가 되는 것, 남과 비교하지 않고 즐겁게 지내는 것 이 정도로 말이다.
자라는 과정에서 그 누구보다도 많이 배우기를 꿈꾸고 노력하기를 원하는 존재가 바로 어린이들이다. 어른들의 눈에 어린이는 마냥 놀기 좋아하고 게임이나 하고 싶어하는 철부지로 보일지 모르지만 마음 속에는 진지한 고민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 함께 따라다닌다. 그런 어린이들의 마음에 공감하고 어린이들을 염려하는 마음으로 책을 함께 읽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