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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
천운영 지음 / 창비 / 2001년 11월
평점 :
좋은 소설의 조건중 하나가 독자를 어딘가 모르게 불편하게 하는 것이라면 천운영의 '바늘'은 독자를 불편하게 하는 것만큼은 충분히 충족시키고 있는 것 같다. 소설 바늘은 어딘가 모르게 기괴하고 낯설다. 현실에서 드물지 않게 마주치면서도 왠지 입에 올리기 꺼려지는 대상들을 소재로 천운영은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
입에 올리기 꺼려지는 소재란 무엇인가. 그것은 못생긴 여자, 문신, 간질, 고기에 대한 선호, 자살, 타인에 대한 공격성 등등이다. 남의 몸에 문신을 하는 것으로 먹고 사는 주인공은 지독히도 못생긴 여자이다. 그녀에게서 문신 시술은 받는 남자들은 그녀의 문신에는 만족하지만 막상 그녀와는 자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을 정도로 그녀는 추한 외모를 가졌다. 그런 그녀가 욕망할 수 있는 대상은 오로지 문신을 할 수 있는 남자들과 고기뿐이다. 문신을 하려고 하는 남자들과 고기는 전체가 아니라 오로지 부위만을 대한다는 점에서 묘하게 닮아있다. 그것들은 비록 남자들은 생물학적으로는 살아있지만 그녀에게 있어서는 다만 욕구를 충족시켜줄 뿐 욕망을 실현시키는 대상은 아니라는 점에서 도구적이고 불완전하며 이미 죽은 존재들이다. 그녀의 비틀린 욕망은 간질을 치료하기 위해 찾았던 미륵암의 주지 스님에게로 이어진다. 자신을 버린 어머니가 선택한 주지에게 그녀는 미움과 원망을 가지고 있다. 미움과 원망은 전쟁 박물관에 전시된 무기들로 스님을 공격하는 상상을 통해 드러난다. 여자의 공격성은 아주 섬세하고도 시각적으로 묘사된다.
여자의 식성 역시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놓고 자랑할만한 것은 못된다. 핏물이 도는 고기를 그저 밥에 얹어 먹는 여자. 따로 상추와 같은 채소를 곁들이지도 않는다. 그녀는 다만 고기를 원한다. 이런 여자를 섣불리 사랑할 수 있는 남자가 있을까.
어쩌면 이 소설은 세상에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이 막힌 여자의 비틀어질 수 밖에 없는 마음을 다룬 소설인지도 모르겠다. 예쁘지도 않고, 못생긴데다가 말도 더듬는 여자. 어머니에게서까지 버림받은 여자는 단순히 생계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미움을 보살피기 위해서 바늘을 들고, 고기를 씹는 것인지도 모른다. 만약 이러한 상황에서 남자라면 어땠을까. 주인공이 남자였다고 해도 이렇게 숨죽이듯 말을 더듬으며 살아야만 했을까. 전쟁 박물관의 무기들은 타인을 살상할 수 있는 온갖 무기들의 역사가 진열되어 있다. 그것은 공격 본능을 타고 난 듯한 남자들의 역사이기도 하다. 물리적으로든 화학적으로든 그것들은 사람을 해친다. 그런 허다한 무기들 속에서 여자의 바늘은? 적어도 여자의 공격성은 유년 시절 고양이를 화장실에 던진 이후로 살아있는 생명체를 대상으로 하지는 않는다. 여자는 바늘로 사람을 찌르지만 여자의 바늘은 사람의 몸에 그림을 그리는 도구로써 기능할 뿐이다. 여자의 어머니가 주지의 머리카락을 넣어서 자신의 바늘을 벼렸고 여자는 그 바늘로 남자들의 몸에 문신을 새겨 넣는다. 바늘과 명주실, 그리고 여러 종류의 염료들을 가지고서. 어머니와 딸의 인생은 그렇게 대물림 되는 것 같다. 어머니와 딸의 공격성은 기껏해야 자기 자신을 해치거나 문신을 그리는 것 정도이다. 그러니 이 소설의 기괴함은 그 공격성 자체라기보다는 여성이 공격성을 가진다는 것이, 그러한 공격성이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묘사한 그 장면 장면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자들은 정말 가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