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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책
클라이브 바커 지음, 정탄 옮김 / 끌림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클라이브 바커라면 그 유명한 <헬레이져>의 원작자이자 감독 아닌가. <헬레이져>의 핀헤드는 어렸을 때 포스터의 포스 만으로도 악몽에 시달리게 했던 공포물 캐릭터의 넘버 원. 결국 영화를 보다가 말고 손 못대고 있다가 이번에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 개봉에 맞춰 이 책이 발간됐기에 원작 소설이나 함 읽어보자는 마음에 구입을 했다.
스티븐 킹이 호러의 미래라고 했다지만 호러 판타지류의 소설보다는 스릴 넘치는 추리소설을 더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책이 그렇게 매력적으로 다가오지는 않을 것 같다. <피의 책>이 총 6권까지 출간된 소설집이지만 우리나라에는 엑기스만 뽑아서 들여온 한 권이 전부인데 그래서 그런건지 알 수는 없어도 이 책의 상당 수의 단편들이 나에게는 별 매력이 없었다.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의 원작이 짧은 단편이고 살을 붙여서 장편 영화로 만들어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책을 읽으니 정말 영화를 잘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사진작가라는 설정이라든가 여자친구의 존재, 또 마호가니라는 인물이 실제로 도축장에서 일한다는 것 등은 다 영화화를 위해 만들어낸 것이었다. 정말 짧디 짧은 단편 소설을 가지고 1시간 30분의 호러영화를 만들어냈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다. 영화 속 사진들도 꽤 매혹적이었고. 물론 원작자 클라이브 바커가 영화와 꽤 관계가 깊은 사람이므로 이 작품의 영화화에 많은 공을 들였으리라 생각된다. 뛰어난 각색이었다.
클라이브 바커가 재현해 내는 호러 판타지의 세계는 영상으로 보여졌을 때 더 매혹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스티븐 킹과 다른 부분이다. 스티븐 킹은 소설로만 봐도 읽는 맛이 있지만 클라이브 바커의 이 작품집은 몇몇 작품을 제외하고는 좀 낡고 옛스러운 느낌을 준다. 그러나 그것이 영상으로 나타났을 때 더 파괴적인 대목들이 많았다. 별로 재미없게 봤던 <언덕에, 두 도시>같은 작품도 사람들끼리 엉키고 설켜서 큰 덩어리의 도시로 싸움을 하는 장면을 어떤 식으로든 영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하면 그냥 소설로 읽는 것보다 더 충격적일 것이다. 클라이브 바커가 표현해 내는 세계는 이토록 '눈으로 확인하면 더 멋질 법한' 그런 세계다.
<피그 블러드 블루스> 정도의 작품도 영화화했을 때 더 막강할 법한 단편. 내가 클라이브 바커의 심오한 작품세계나 호러 판타지의 깊은 뜻을 잘 몰라서 그런건지도 모르겠지만 <피의 책>은 <헬레이져>의 포스터 속에서 나를 째려보고 있었던 핀헤드 만큼의 포스를 주지는 못했다. 몇몇 부분들은 충분히 매력적이었지만 우리가 책을 읽는 것은 그 몇몇 부분 때문은 아닌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