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작전 - The Scam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영화 보고 와서 정말 맘에 들어가지구 사람들 붙잡고 이 영화 재밌다고 소문 내고 다니고 평점 9점으로 등록하고 이러고 있음. 장 지져도 좋으니까 흥행했음 좋겠다. 이 정도 연출의, 이 정도 각본의, 이 정도 연기의 신인 감독 작품 정말 보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신인 감독상, 각본상, 남우조연상은 충분히 가져갈 만한 작품이다.
무엇보다 빠르고, 재밌다. 공허하게 재밌는 게 아니라 탄탄하게 재밌다.
주식 잘못 손댔다가 신용 불량자가 된 고만고만한 대학 출신의 '개미' 박용하가 독학으로 주식을 공부해서 작전주를 추적, 높은 소득을 올리는데 그게 표적이 되어 한탕을 노리던 조폭 출신의 투자자에게 스카웃(?) 된다. 그는 좋은 학벌 출신의 잘 나가는 증권맨들과 대한민국 1퍼센트의 부자를 위한 자산관리사 사이에서 유일하게 찌질한 배경을 자랑하는 서민 대표다. 과연 그는 작전을 성공시키고 대박을 칠 수 있을까??
이 영화가 마음에 들었던 건 우선 탄탄한 스토리에 캐릭터들의 개성이 함께 잘 맞물려 돌아가기 때문이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다윗의 승리로 끝날 때 그게 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관객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박용하는 일반 관객들이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평범한 인물로 그가 힘있는 전직 조폭 투자자와 능력 있는 증권맨들 사이에서도 자존감을 지키려고 할 때마다 그의 승리를 간절하게 기원하게 된다. <오션스 일레븐>이나 <타짜>의 주식 버전 느낌도 든다. 이야기의 속도감을 지속시키기 위해 감독은 꽤 많은 시도를 한다. 과감한 화면 분할, 편집 등으로 스타일도 이야기에 맞게 잘 연출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인물이(엄밀히 말하자면 김민정의 캐릭터를 제외하고) 개성이 있으며 그 인물들의 성격에 맞는 사건이 전개된다. 설명을 해야 하는 부분에서는 유머를 넣었고 유머가 없으면 감정을 넣었다. 예를 들어 박용하와 나머지 두 명의 증권맨이 술집에서 술을 마시면서 주식에 대해 설명하는 장면은 서서히 박용하의 감정을 고조시켜서 관객으로 하여금 그의 편을 들게 만든다. 서민 VS 재벌의 대결 구조는 <꽃보다 남자>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라 이 작품에서도 유효하다.
주식을 하나도 몰라도 재미있을 수 있었던 것은 이야기 구조의 매력이 소재의 매력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주식은 단순히 소재일 뿐 이 작품은 자본주의에 대한 발랄한 풍자라고 해도 괜찮다. VIP 고객들만을 상대로 하는 은밀한 술집, 이니셜이 박힌 수제화, 맞춤 슈트, 골프, 그리고 구멍이 하나있는 가죽 벨트... 이런 소품들은 일관된 이미지를 가지고 이야기 전체에 기여하고 있다. 바로 주식 투자 열풍 뒤에 있는 인간의 욕망이다. <타짜> 역시 도박 뒤에 있는 인간의 욕망을 말하고 있는 작품인 것처럼 <작전>도 그렇다. 박용하의 나레이션에 등장하듯 사다리 끝까지 올라가서는 사다리를 치워 버리는 더러운 자본주의의 속성. 그 커다란 줄기 안에 이야기를 오밀조밀하게 배치하고 마지막에 가서는 시원하게 터뜨리는(좀 더 강했으면 싶었지만ㅎㅎ) 재주는 정말 탁월하다. 이런 상업 영화가 좋다. 캐릭터와 사건이 잘 맞아 떨어지고 논리적으로 전개되면서 일관성있는 주제를 말하는 웰 메이드 상업 영화가 정말 좋다.
허름한 아파트 하나가 유일한 성공이었던 부모 세대와는 달리 박용하는 물질의 중요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우리 세대를 대변하는 캐릭터다. 전형적이긴 하지만 현실성있다. 그에 반해 전직 조폭이었다가 주가 조작으로 한 몫 하려는 박희순의 캐릭터는 좀 비현실적이다. 결국 깡패 캐릭터인 셈인데 조폭이 끼어 들어서 이야기가 드라마틱해지긴 하지만 중간중간 조폭 코메디스럽기도 한 면이 있어서 다소 아쉬웠다. 워낙 박희순의 연기력이 뛰어나고 그의 배역이 주는 재미가 상당했으므로 지나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여피족같은 느낌의 두 증권맨 브라이언 초이(ㅋㅋ)와 증권맨으로 나온 최무열의 캐릭터도 개성이 넘쳤다. 다만 김민정의 캐릭터는 진짜... 충무로 남성 감독들의 작품들은 왜 여자만 나오면 재미없게 되는지 모르겠다. <비트>에서도 고소영 나오는 장면만 빼고 보고 싶었는데. (베드씬 제외하고ㅋ) 이 작품도 김민정 캐릭터가 좀 더 독특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다 괜찮다가 마지막 부분에서는 급 교훈적으로 가는 느낌이 있었고 엔딩 크레딧 흐를 때 '미래를 보고 소신 투자해라' 같은 얘기 비슷한 장면이 사족으로 나오던데 그건 좀 아니지 않나 싶음. 교훈적인 얘기 하지 않고 여백을 줘도 괜찮을텐데 굳이 그렇게 하더라구. 소신 투자하라는 얘기는 왜 넣었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영화 보면서 주식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딱 10분 했고 나머지는 저런 것도 모르면서 투자하면 진짜 안되겠다는 생각은 1시간 50분을 했으니까 그런 식으로 잔소리 하지 않아도 알아먹을텐데 말이다.
상당히 발랄하고 재치 넘치는 작품이나 실상 이 영화가 제기하고 있는 문제는 꽤 우울한 것이다. 결국 개미와 슈퍼 재벌과의 싸움은 슈퍼 재벌의 승리로 끝난다는 거니까. 가끔 성공하는 개미가 있기는 해도 그게 당신이라는 법은 없는 거지. 자신이 진정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주식 투자도 하는 투잡족의 미래를 보여주는 후반부는 가장 영화스럽고 비현실적인 설정으로 보였다. 영화니까 그럴 수 있는 거지 말입니다. 어쨌거나 요근래 봤던 영화 중 제일 재미있었고 맘에 들었다. 흥행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