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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술 - Daytime Drinking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천만원 가지고 찍은 작품이라는데 절반은 술값과 여관비로 쓰였을 듯. 젊은 남자, 술, 여자, 모텔... 홍상수 느낌 나지 않나?ㅋㅋ 로드 무비라는 형식도 그렇고 여자한테 사족을 못쓰는 20대 남성의 아이러니한 상황 묘사도 그렇고 젊고 귀엽고 상큼한 홍상수 느낌이랄까. 우선 재미있었다. 친구랑 나랑 입을 모아서 <마린 보이>보다 더 재밌다고 그랬으니까. 이거 칭찬일까?ㅋㅋ
여자친구랑 헤어진 남주인공. 그를 위로하고자 술판에서 친구들은 강원도로 여행을 가자고 하는데... 막상 그 날 터미널에 나와 보니 아무도 안 나오고 남자 한 명만 출석을 했다. 술 먹고 헛소리한 친구들 말을 그대로 믿은 거지. 다른 친구들은 그 약속은 생각도 안 하고 역시나 술 먹고 늦게까지 뻗어 있었던 거고. 어쩔 수 없이 혼자 강원도로 떠나는데 그 여행길에서 만나게 되는 각양각색의 사람들과의 일화가 이 영화의 주된 내용이다.
이런 류의 영화에서는 등장 인물들이 얼마나 현실과 닿아 있느냐가 관건인데 정말 어디선가 봤을 법한 사람들이 나와서 정말정말 웃겼다. 남주인공은 술과 여자라면 사족을 못쓰고 헤어진 여자친구를 못 잊겠다 어쩐다 해놓고서 예쁜 여자가 술 한 잔 하자고 하면 어쩔 줄 몰라하며 쪼르르 달려가서 술을 사온다. 결국 그의 약점은 타인에게 이용당하고 만다. 이걸 누구한테 얘기할 것인가. 얘기해봤자 술자리의 안주감으로 전락할 암울한 실수담인데 말이다.
울 나라 사람들은 특히나 술 취한 사람들의 난동(?)에는 관대한 편이다. 내 주변의 20-30대 남성들을 생각해 보건데, 또 나의 20대를 생각해 보건데 술자리에서 있었던 일은 웬만하면 다 '술취해서 한 일이니 봐줘'같은 말로 패스됐다. 술에 취하면 그 사람의 본성이 나온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술을 마시지 않고는 깊은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렸을 땐 선배들이 그렇게 말하면 그런가보다, 해서 쳐마셨지만 나이 들면서부터는 술 취해서는 진담같은 건 없고 농담만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웬만하면 다 헛소리라는 거지. 술 취해야 진담이 나온다는 사람은 결국 평생 진담은 못해보고 죽는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술의 힘을 빌어야만 대화를 시작할 수 있고 술의 힘을 빌어야만 여자를 꼬실 수 있는 한국 남성들의 모습을 코믹하게 보여준다. 그들에게 술은 여성들의 스타 벅스 커피와 동급이다. 남주인공 성격이 다소 띨띨한, 소심한 것도 술을 마셨을 때의 대범한 그의 모습이 평소와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한 때 소심한 남성들의 주제가가 <취중진담>이었던 걸 보면 말이다. 지인에게 나는 그저 취미가 같은, 영화를 좋아하고 음악을 좋아하고 책도 좀 읽는 남자랑 만나는 게 소망이었는데 해가 갈수록 남자들은 아무 것도 안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 분이 말씀하시길 '그런 희망을 버려. 걔네들은 TV 보고 술 마시는 거 외엔 암 것도 안해'라고 하셨다. 정말 그랬다. 남주인공은 모텔에서 TV를 보고 술을 마시는 것 외엔 정말 암 것도 안한다ㅋㅋ 한국 남성들에게는 모든 놀이가 술로 집결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딱하기도 하다.
지속적인 우연이 남발되기는 하지만 그것도 심하게 황당하지는 않는 정도다. 버스 좌석 옆자리에 앉아서 계속 들이대는 여자가 시도 때도 없이 '미친놈'을 남발하는 것도 재미있었고(이런 과대망상증 환자는 어딜 가나 있구나) 마지막의 반전도 귀여웠다. 중간 중간 많이 웃었다. 지금 딱 기억나는 건 남주인공이 여자한테 잘 보이려고 노래방에서 <안되나요>같은 발라드 부르는데 다른 남자가 늘어진다면서 템포 빠르게~를 눌러버릴 때ㅋㅋ 정말 흔히 있는 그런 상황들이다. 홍상수 영화에는 되게 기분 나쁘게 나오지만 이 영화는 귀엽게 나온다. ㅎㅎ
그런 생각도 했다. 내가 연애를 못하는 이유는 술을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ㅋ 술 잘 마시면 역사가 이루어지긴 하더라구. 결국 술 마시고 엮은 연애들이 좀 정신없기는 하지만. 보면 술 땡기는, 그런 작품이다. 술 많이 마시는 남성들 같은 경우에는 금주를 결심케 할 만한 작품이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