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장의 교실 - 20세기 일문학의 발견 12
야마다 에이미 지음, 박유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1994년 12월
평점 :
절판


재판해주세요-_-;;

아. 드디어 읽었습니다. 야마다 에이미의 당당한 날카로움을 좋아하지만, 이 책에 실린 단편소설 세 편은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그녀의 초기작품이라서인지 힘이 실려 있군요.
어른의 처세술을 조금은 알고 있는 똑똑한 소녀 안은 어느 시골 학교에 전학을 가게 됩니다. 처음엔 예쁜 얼굴과 옷, 말씨로 선망을 받게 되지만 그녀가 여자애들이 좋아하는 요시자와 선생의 관심을 한몸에 받게 되자 그것은 질투와 괴롭힘으로 바뀝니다. 반 아이들 전체가 그녀를 괴롭히게 되는 상황에서 성장해가는 내용이라고 할까요. 이 소설은 왕따이야기라고만 치부하기도, 성장소설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습니다. 야마다 에이미. 이 작가는 언제나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에 촛점을 맞추어 글을 쓰고 있고, 이 단편을 읽으면서도 뚜렷하게 와닿습니다.
아이들의 괴롭힘이 극에 달하자 안은 죽음을 결심하지만 우연히 어머니와 언니의 얘기를 들으며 마음을 접게 됩니다. 그리고 다음날 학교에서 한 선생님의 모기에 관한 얘기를 들으며 생각의 전환을 갖게 됩니다. 그녀를 괴롭히는 아이들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녀가 하나씩 그들을 마음에서 죽여나가는 그 것. 풍장의 교실.

나는 지금 자신 속에 새로운 감정이 태어났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건 책임이라는 말에 이어, 내 마음 밑바닥에 항상 자리하게 되겠지요. 내가 탄생시킨 살인법은, 경멸이라는 두 글자였던 것입니다. 인간을 죽인다고 말하는 건 적절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남자아이의 신발에 욕망을 느끼는 내가 인간이라면, 나는 그녀들을 나와 같은 위치에 두고 싶지는 않습니다. 우선 나는, 자신들을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어리석은 자들을 동물로까지 끌어내립니다. 그리고 나서 조금씩 조금씩 죽여 가는 것입니다.

에미코는 요즘, 침울해 있기 일쑤입니다. 나를 괴롭히면 괴롭힐수록 요시자와 선생님의 사랑이 나한테로 옮아간다는 걸 안 거겠지요. 어리석은 아이. 모든 건 그 애가 만든 일입니다. 나는 그 애한테 동정까지 느낄 정도입니다. 하지만 나는, 나를 죽음 일보 직전까지 가게 만든 사람을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에미코가 죽어 가는 모습을, 웃으면서 보고 있습니다.
내 마음에는 묘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시체에 흙을 덮어 줄 정도로 친절하진 않습니다. 죽은 사람을 들에 내버려 두는 것을 풍장(風葬)이라 한다고 합니다. 그건 잔혹한 풍습인 걸까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는 지금도 들판을 걷는 걸 좋아합니다. 지면을 힘차게 밟고 서서, 풀이나 나무의 냄새를 맡는 걸 좋아합니다. 나는 인생에 아득하게 펼쳐진 죽음의 침상(寢牀)의 존재를 느낍니다. 그건 아주 기분 좋은 일입니다. 내 마음은 여전히 그에 이끌립니다. 하지만 풀이나 나무는, 나를 죽이기에는 너무나도 어린, 그냥 풀과 나무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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