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아, 춘아, 옥단춘아, 네 아버지 어디 갔니?
이윤기 외 대담 / 민음사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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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오래 된 책이고 이제는 절판까지 된 책을 찾아서 읽은 건 순전히 이윤기 선생의 부고를 들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딸이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는, 너무나 부럽고 멋진 장면들. 그들의 대화라는 것이 어제 뭐 먹었냐, 성적이 왜 이러냐, 결혼은 언제 하냐 같은 일차원적인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삶을 관통하는 '신화'의 의미를 딸이 묻고 그 의미가 딸에게 이어지길 바라는 아버지의 대답을 듣는 것이라니... 이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아버지를 둔 그녀가 너무도 부러웠고, 이제는 그런 아버지를 먼 신화의 세계로 보낸 그녀가 너무도 안쓰러웠다.  

'네가 느닷없이 아프리카 가수에게 뿅 가서 학교 때려치고 스와힐리 어를 배우겠다고 나서도 나는 안 말려. 말리다니. 박수치겠다, 박수.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고 해도, 예술은 그런 정열을 바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예술은, 이런 가늘디 가늘면서도 한없이 절실한 떨림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요즘 한다.' 

'신화 공부는 사람 공부다. 나의 번역 작업과 신화 공부는 하나이지 둘이 아니다.' 

'너라는 사람이 우리 집안의 역사의 축적이듯이. 나는 그냥 내가 아니다. 내 안에는 우리 집안의 역사, 우리 민족의 역사, 그리고 멀게는 인류사까지 응축되어 있다.' 

'나는 내 딸이 색맹이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지는 대담들은 어쩌면 덤. 김화영 선생이 날을 숨기고 에둘러서 풀어풀어 하는 말씀을 기어이 어깃장 놓는 이문열의 모습은 안 보면 더 좋았을 것을...  

'알베르 카뮈는 소설 네 권 썼어요. 질이 문제죠. 이 분야는 요행이란 없어요. 피를 말려야 돼요. 그런데 그걸 요구하기가 인간으로서는 좀 과하지. 어떻게 사람한테 그런 걸 요구합니까. 그런데 문학은 그래요. 문학이 만약 예술이라면. 예술이 아니라면 할 말 없고.'  

'당신이 생각하는 좋은 작가란 어떤 사람이냐? 묻자...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작가라더군요. 보통 게으른 독자가 좋아하는 작가는 안도감을 주는 작가죠. 내가 아는 걸 다시 멋있게 말해 주는 사람.... 게으른 독자가 좋아하는 건 그 조미료 같은 첨가물이죠.' 

'문학 작품은 70점이면 안되죠. 반드시 90점이 넘어야 돼요. 그런데 거기에서 뭔가 하나가 빠지면 그만 저 아래로 떨어져 버려요, 아무리 성실히 해도.' 

그리고 역시 압권은 김우창 선생. '딩~'하고 머리를 울리는 망치 같은 말씀을 날린다.

'소설 읽는 사람은 인생에 플롯이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되고 자기 인생도 플롯을 만들어서 살려고 하고, 그러면서 계획을 세워 열심히 살아보려고 노력하면 의미있는 모양이 생기는 것 아니냐, 이런 착각을 하게 됩니다. 근래 들어와서 느끼는 것은... 글을 쓰고 책을 보고 있다고 해서 인생의 플롯이 잡혔던 같지도 않다는 겁니다.'  

'문학과 전체로서의 삶 사이의 일치 관계가 비평 작업의 최대 과제...' 

'반성이야말로 생각하고 글쓰는 사람들의 의무...' 

 이런 아버지들과의 대화라면 언제든 다리에 쥐가 나도록 앉아 있을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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