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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이 쫓아오는 밤 (양장) - 제3회 창비×카카오페이지 영어덜트 소설상 수상작 ㅣ 소설Y
최정원 지음 / 창비 / 2022년 10월
평점 :
소설에 등장하는 17살의 신이서와 남수하. 두 아이는 다른 듯 어쩌면 같은 아픔을 공유하고 있다.
엄마의 재혼으로 11살 아래 여동생이 생긴 이서는 '우리, 더 행복해지자' 엄마가 마법의 주문처럼 내뱉는 말에 소외감도 상실감도 숨긴 채 그저 '우리 기특한 첫째딸'로서의 역할을 연기한다. 엄마에 대한 분노와 원망을 막을 새도 없이 봇물 터지듯 쏟아낸 그 날, 둘이 함께 타던 차는 음주운전자 차량과의 충돌로 엄마가 즉사해버린다.
남은 이서는 엄마를 죽게한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
키만 멀대같이 큰 수하는 촉망받는 교내 축구선수이지만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가정폭력으로 엄마와 도망쳐나와 살고 있다. 안 좋은 경기 성적을 받을 때마다 사람들의 지적과 질책이 무서워서 축구를 그만 뒀다고 하지만 실은 자신 안에는 들끓고 있는 불, 아버지의 것과 꼭닮은 폭력과 분노를 직면하기가 두렵다.
각자의 이유와 사정으로 둘은 스산한 기운이 가득한 '하늘뫼 수련원'에서 만나게 된다. 몰래 모임에서 빠져 나온 수하는 수련원 공터에서 죽을 것 같은 모습으로 달리던 이서와 마주친다. 싸늘한 눈빛으로 스쳐 지나가는 이서의 걷어 올린 팔에서 '그 날이 남긴 화상 자국'을 보게 되고 정신 없이 이야기는 쫓고 쫓기는 긴박함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그 날 밤,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쏟아지더니 통신망이 갑자기 끊어져 이서의 새아빠는 관리동과 연락을 취하기 위해 나간다. 그 후 갑자기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의 습격에 옆 펜션에 묵던 사람들은 모두 갈가리 찢겨 잔인하게 죽임을 당하고, 이서는 자신이 유일하게 지켜할 사람 동생 이지를 위해 이를 악물고 빗 속을 달린다.
곰과 개를 교잡시킨 듯한, 네 다리의 길이가 기이하게 다른 어마어마한 크기의 포식종. 사람을 죽일 때마다 희번덕거리는 쭉 찢어진 눈동자. 시뻘겋게 드러난 얼굴의 반쪽은 이서의 팔에 남긴 화상의 상흔과 닮았다. 숨통을 조여오는 극한 공포에서 느끼는 사람의 공포심과 두려움을 즐기며 사냥하는 그 놈은 악마였다.
대본집을 읽어 내려가며 사람들이 왜 악독한 괴물들과의 싸움이나 세상이 녹아 내리거나 아니면 불타 오르는 이야기에 그렇게 매료되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주인공들이 소중한 사람들을 잃어 버리는 그 괴로움 속에서, 사람들의 목숨을 짓밟아 죽이는 저급하고 더러운 세상의 이야기 안에서 우리는 너무 당연하기에 쉽게 잊어버리기 쉬운 일상을 더 선명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폭풍이 쫓아오는 밤'은 청소년 성장소설의 전형적인 클리쉐를 따라간다. 억눌러 왔던 그동안의 고통, 죄의식, 흔들리는 자아정체성, 자책감 그 자신을 마주하는 것이다. 지킬 것 하나 없는 공허함에 눌려 어떤 이는 죽음을 생각한다. 하지만 절망의 심연 앞에서도 단 한 사람, 자신을
기다리는 한 사람만 있다면 사람은 다시 뛸 수 있는 소망을 갖는다.
인생에서 어떤 시간은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인생의 아이러니는 그 흔적을 통해서 사람은 성장을 거듭하게 된다는 것이다. 아기가 엄마의 태를 터트리고 나와 세상에 내뱉는 첫 울음소리에 부모는 웃음 짓고, 겨울눈을 찢고 나오는 새 잎이 따스한 봄을 알리는 깃발인 것처럼 말이다. 이수와 수하가 다시 만나는 세상도 그렇듯 고통스럽지만 해 볼만 하다는 것, 너의 잘못이 아니었다는 말, 그리고 네 얼어 붙은 손을 내가 계속해서 꼭 잡고 있을 것이라는 따스한 기대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