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많은 장소들이 그렇듯이 언젠가는 이 동네도흔적 없이 사라지고 세련된 건물들, 생존을 위한 요구와 필요만이 가장 편리한 방식으로 해결되는 공간들로 대체되는 날이 올까? 아마 올 것이다, 불행하게도 바람이 있다면,
그런 날이 여름의 중앙을 통과하는 민달팽이처럼 천천히다가오기를. 미래 쪽으로만 흐르는 시간은 어떤 기억들을희미하게 만들어버리기도 하지만, 장소는 어김없이 우리의 기억을 붙들고 느닷없이 곁을 떠난 사랑하는 것들을 우리 앞에 번번이 데려다놓는다. - P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