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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적당한 말이 없어
정선임 외 지음 / 해냄 / 2025년 3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네 명의 여성 작가가 들려주는 '나와 이방'이라는 주제를 가진 단편 소설 모음집
싱그러운 네 명의 작가가 펼쳐놓는 이국의 풍경들이 가득 담긴 단편 소설집 우리에게는 적당한 말이 없어.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인도 뱅갈루루, 태국 방콕에서 사이판까지. 낯설기도 하고 익숙하기도 한 네 곳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에 푹 빠져들게 됩니다.
✅정선임 작가의 단편소설 해저로월.
포르투갈 리스본을 배경으로 주인공인 수정이 하늘나라로 떠난 고모의 유해를 한국으로 모셔오라는 부탁을 받고 리스본으로 가서 겪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그곳에서는 '마이라'라고 불렸던 고모.
"마이라는 아줄레주가 되고 싶어 했어요."
한국으로 유해를 데려가려는 가족과 그곳에서 가족처럼 지내며 마이라가 평소 좋아하던 곳에 계속 있기를 바라는 사람. 그 사이에서 수정이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요?

"마이라는 무엇을 믿었나요?"
"삶을 믿었지. 자신의 의지와 선택이 빚어낸 결과를, 간혹 주어지는 행운과 우연과 운명이 얽혀 일으키는 기적 같은 일을. 불행이 계속되어도 때때로 웃을 수 있는 순간이 찾아오는,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불가해한 삶을."
✅김봄 작가의 단편소설 우리에게는 적당한 말이 없어
인도 벵갈루루에서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가한 소설가 유소영이 다양한 국적의 작가들과의 소통과 갈등을 경험하는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도대체 작가가 뭔데?"
"뭐긴 뭐야. 낭독을 위해서 겨우 존재하는 인간이지. 작가가 없으면 낭독할 글이 없잖아. "

한때는 언어가 모든 것을 정리해 줄 수 있다고 믿은 적이 있었다.
말을 믿었고, 들은 것을 확신했다.
읽은 것들로 이해의 폭이 넓어졌고, 쓰면서 감정을 다잡았다.
말이 만들어주는 상호작용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내가 체험할 수 있는 경계는 그렇게 견고해졌고 그것은 꽤 오랫동안 내 세계를 지탱해줬다.
아니, 지탱해 준다고 상상했다.
이제 나는 그 확신에서 한 걸음 벗어나 있다.
✅김의경 작가의 단편소설 망고스틴 호스텔
태국 방콕의 망고스틴 호스텔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코로나 이후 남편과 함께 방콕으로 떠난 다영. 망고스틴 호스텔에 머물며 지유와 예나라는 대학생들을 만나게 됩니다. 타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대학생들을 보며 자신의 이전 모습을 보게 되는 다영.
송끄란 축제에서의 사고로 두 대학생을 찾기 시작한 다영이의 생계와 생존에 대한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최정나 작가의 단편소설 낙영.
부모에게 버림받은 두 인물의 관계와 실종 사건을 다루면서 기억과 망각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되는 이야기들이 사이판을 배경으로 펼쳐집니다.
"낙영이? 그게 누군데?"
"엄마가 죽인 애."
"그 아이가 죽었으니까요. 그 아이가 죽어서 그 아이 아빠를 만나는 게 더는 즐겁지 않았으니까요. 그 때문에 나는 떠난 지 석 달 만에 되돌아와야 했어요. 그 아이가 죽었다는 사실도 나중에 알았고요. 엄마 때문에, 그리고 걔 아빠 때문에 애가 죽었는데 어떻게 그 기억을 지워버릴 수 있죠?"
"걔는 너를 사랑해서 죽었다.
우리한테 너를 좋아해도 되느냐고 물었어. 걔는 복수하려고 그런 거야. 우리의 관계를 끊어놓으려고. 네가 상처받을까 봐 지금까지 말하지 못한 거야."

각각의 색깔이 다른 네 편의 소설을 읽으며 각 나라의 다양한 문화와 환경 속에서 사람들끼리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지를 느껴보는 시간을 만들어주는 우리에게는 적당한 말이 없어.
꽃잎이 날리는 봄날 새로운 느낌의 소설책을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