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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전 - 범이 꾸짖다/요술 구경 ㅣ 샘깊은 오늘고전 5
박지원 원작, 박상률 지음, 김태헌 그림 / 알마 / 2007년 8월
평점 :
고급스럽고, 손에 쏙 들어오는 앙증맞은 책크기하며,
고전분위기에 어울리는 수묵화? 담채화? 암튼 그 그림들도 익살맞고 독특한 것이
이 책을 보는 순간 맘에 들어 읽고 싶은 생각이 저절로 난다 ㅎㅎ
<열하일기>, <양반전> 등으로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연암 박지원의 단편 중
양반전, 범이 꾸짖다, 요술구경 세 편의 이야기가 실린 책이다.
<양반전>은 우리가 많이 들어본 이야기이지만,
다시 읽어도 구절구절 양반을 풍자하는 박지원의 은근한 독설이 맛나다.
‘술을 마실 때 수염에 술이 묻더라도 빨지 말 것이며 담배를 피울 때는 양 볼을 씰룩거리지 말 일이다. .......(중략) ......
살림이 바닥나 시골에서 가난한 선비로 살더라도 목에 힘을 주고 살 수 있으니 이웃의 소를 끌어다가 내 밭을 먼저 갈게 하고 마을 일꾼을 데려다가 김을 매게 할 수 있다. 그런다고 어느 누가 거역할까...... (중략) ......
“그만, 그만 하시오! 듣고 보니 어이없는 짓이구먼요. 나를 이제 도둑놈으로 만들 작정이요?”’
정조임금으로부터 격식 없는 문장을 쓴다고 꾸지람을 받았으면서도, 굽히지 않고
그 시대 주류인 양반을 질타하는 양반전과 같은
자유롭고 날카로운 글을 쓴 박지원의 배짱에 놀랄 뿐이다.
학교 때 <호질(虎叱)>로 배웠던, <범이 꾸짖다>는
연암의 풍자와 해학이 더욱 빛을 발하는 이야기이다.
사람들로부터 어질고 덕망있다 칭송받는 선비 북곽선생이 과부방을 드나들다 들켜
도망치다 똥구덩이에 빠지고 범을 만난다.
살아남기 위해 범에게 아첨을 떠는 북곽선생에게 범이 일갈한다.
‘아예 내 앞으로 오지도 마라. 내 듣기에 선비를 뜻하는 글자 '유儒'는 아첨 떠는 짓을 뜻하는 글자 '유諛'와 통한더더니 과연 그렇구나.'
길게 이어지는 범의 꾸짖음은 어찌나 논리정연하게 인간의 특히 선비의 의롭지 못함을
논하는지 읽고 있는 내가 다 동물보다 못한 인간의 모습이 부끄러워질 지경이다.
특히 범이 떠난 뒤에도 땅바닥에 엎드려 절을 해대고
농부에게 둘러대는 북곽선생의 모습은 유약하고 겉치레뿐인 양반과 선비를
바닥까지 까발려 조롱하는 풍자와 비판이 속시원하다.
<요술구경>은 [열하일기]에 실려있는 글이다.
박지원이 열하의 길거리에서 펼쳐지는 요술을 보고,
기록문의 형식으로 눈에 보이듯 기록한 글이다.
때로는 신기하고 때로는 너무 놀라워 섬뜩한 요술 구경 스무마당을 구경한 뒤
박지원이 조광련과 나눈 이야기 속에
마음에 새겨둘만한 말들이 있다.
'눈으로 뻔히 보면서도 옳고 그름을 가리지 못하고, 참과 거짓을 살피지 못한다면
눈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 아닐까요.
늘 요술쟁이에게 속고 마는 까닭은 눈으로 보지 않아서가 아니라 도리어 눈 부릅뜨고 보는 것이 탈이 되기 때문은 아닐까요.'
눈을 뜨고도 볼 것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위선이 판치는 이 세상에도 연암의 날카로운 한마디가 필요하지 않을까.
작지만, 결코 작지 않은 책을 읽은 탓에
생각의 무게도 적지 않게 느껴지는 듯 하다.
많은 이들이 함께 하면 좋겠다 싶은 나누고픈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