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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넘브라의 24시 서점
로빈 슬로언 지음, 오정아 옮김 / 노블마인 / 2013년 10월
평점 :
절판
24시간 운영하는 서점이 있다면 거길 찾는 사람들은 분명히 책을 좋아하고
밤에 잠을 잘 안 자는 사람들일 것이다. 나로 말하자면, 책에 어마어마하게
빠지는 경험이 예전처럼 자주 찾아오지는 않지만 그래도 책을 좋아하고,
밤에 뭘 하는 게 훨씬 신나는 야행성이므로, 이 서점의 고객이 될 자격이 있었다.
분명 어느 날인가는 휴가를 내서 하루 종일 그 안에서 책도 읽고 차도 마시고
데이트도 하고 꾸벅꾸벅 졸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책을 읽었다.
이 서점을 찾는 사람들은 기묘한 분위기의 고집스러운 노인들이다. 평생을 종이와
씨름하면서 살아온 것 같고, '아이폰'이 뭔지도 모를 것 같은 사람들. 재미있는 건
이 서점에서 일하는 직원인 주인공 클레이는 정작 평생 <용의 노래 연대기>라는 판타지 소설
단 한 권만 읽었을 뿐, 별로 독서를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클레이의 눈으로 바라본
서점 단골들은 그저 신기하기만 했는데, 어느 순간 그들이 밤낮으로 읽고 있는 책이
세상에서 단 한 권뿐인 책이고, 그 속에는 글자가 아닌 암호들이 뒤덮여 있다는 사실을
알고야 만다.
아, 나는 이런 스토리를 좋아한다. 우연히 들어가게 된 골목에 밤새 영업하는
수상한 서점이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책장을 펼치는 순간 이전과는 다른 세계를
알아버리게 되는 거다. 이렇게 된 이상 그 세계 속으로 마음껏 빠져줄 수밖에.
특히 평생 책만 읽어온 노인들과, 종이와는 영 거리가 먼 서점 직원을 포함한
디지털 세대들이 시종일관 서로를 신기해하는데, 그 묘한 긴장감이 재밌게 읽힌다.
노인들이 몇십 년을 바쳐온 암호 풀기를, 주인공은 컴퓨터 명령키 몇 개로 풀어버려서
그들이 놀라 까무러친다든지 하는 장면들은 엄청 유쾌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대립이 아니라, 그들의 기분 좋은 만남?!
표지 창문이 형광으로 되어 있다. 형광등에 오래 비췄다가 불을 끄면
반짝반짝하게 보이는데, 24시간 서점에 잘 어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