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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이케아 사장을 납치한 하롤드 영감
프로데 그뤼텐 지음, 손화수 옮김 / 잔(도서출판) / 2017년 4월
평점 :
판매중지
사실 이 책을 다 읽고나니 조금 당황스럽다. 북유럽쪽 소설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라는 것이 『감옥에 가기로 한 메르타 할머니』라든가, 『창문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과 같은 유쾌한 작품. 혹은 내가 너무 좋아하는 프레드릭 배크만의 작품들과 같은 대부분의 스웨덴 소설이었는데.. 노르웨이 작가가 썼다는 이 책의 제목만 보고 내가 이 책에 대한 분위기를 지레짐작 해버렸던 것이 가장 큰 오산이었던 것 같다. 지금까지 읽어왔던 여느 스웨덴 소설과 같이 유쾌한 풍자와 위트가 넘쳐나는 책일 줄 알았다. 그래서 이 책을 읽기 직전에 『이케아, 불편을 팔다』라는 책을 함께 읽기 시작했었다. 왠지 이케아에 대해서 어느정도 정보가 있으면, 소설 속에서 유쾌하게 풍자하는 상황들을 좀 더 즐길 수 있을 것만 같아서였다. 근데 왠걸.. 책의 내용은 전혀! 그러한 내용이 아니었다.
어느정도 유쾌함을 기대하고 읽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실망이 찾아온다. 이 소설은 절대 유쾌하게 읽을 소설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책을 다 읽고 난 후의 느낌은, 뭔가 공허하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다. 처음엔 대체 이 영감님이 왜 이렇게 이케아 사장을 납치하려고 혈안이 되어있나..하며 그 사연을 알고싶어 읽게 되는데, 어느 순간이 지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롤드 영감의 삶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 지역에서 성실하게 평범한 생활을 해 오던 사람의 어찌보면 일대기와 같은 삶의 모습이 회상을 통해서 조금씩 드러난다. 그러면서 사랑하는 아내와의 사연과 평생을 함께 해온 가구점에서의 사연들과 기억나는 에피소드들을 통해, 주인공인 하롤드 영감이 어떠한 사람인지를 엿볼 수 있고, 또 이 영감님의 모습이 비단 주인공 한사람만의 모습은 아닐거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지금 이 세상에도 수많은 하롤드 영감님이 존재할 것이고, 또 각기 다른 다양한 모습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낼 것이다. 어찌보면 이케아는 지금의 세대, 지금의 트렌드를 대표하는 상징일 수 있고, 한 중소도시의 터줏대감인 하롤드 영감의 삶과 이케아의 트렌드가 만나는 세상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들을 엮었다. 트렌드는 스타벅스가 될 수도 있고, 롯데마트나 홈플러스, 혹은 유니클로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곳에는 작은 구멍가게나 카페 혹은 다방, 그리고 동네 작은 옷가게나 속옷가게가 있을 수도 있다. 참 신기한 것이, 처음엔 대체 이 할아버지 뭐야?.. 라며 읽었던 내가, 어느새 이 할아버지와 같이 분노하고, 허탈해하고, 멍해지는 그런 감정들을 겪게된다.
문체가 참 특이한데, 우선은 대화체에서도 따옴표가 없고, 대화 역시도 간결하게 진행이 된다. 목차나 소제목도 없다. 챕터번호 역시 없다. 정말 통으로 주욱 이어지는 텍스트의 연속이다. 내용을 구분한 것은, 한번씩 쉬어갈 수 있도록 한 줄을 띄워서 단락이 나누어 지는 것을 알려주는 것 뿐이다. 이야기 전개도 현재와 과거 회상에 대한 이야기가 정말 두서없이, 때로는 단락을 구분하지 않은 채로도 왔다갔다 한다. 근데, 정신이 없다기 보다 굉장히 담담하다. 주인공에게 감정이 이입되어서 상실감이 생기고 화가나기도 하는데도, 담담한 서술 때문인지 감정이 최대한 배제되는 느낌이다. 책을 덮는 마지막 순간까지 "이 책 대체 뭐지?"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작품이었던 것 같다. 혹시나 작가가 쓴 언어 그대로 원서로 읽을 수 있다면 대체 어떤 느낌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작품이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