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끈한 구들목을 지키는 이불 속 이야기. 솜이불과 아랫목 사이의 비밀스런 공간에 곰엉덩이 달걀과 얼음할머니 식혜를 파는 찜질방이 있다? 생각만으로도 여유롭고 재미가 가득하다. 아이들은 물론이고, 마법에 꽂힌 어른들도 여기로 다 모여야 할 것 같다. 유난히 추위를 많이 타는 나로서는 더욱 각별한 초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겨울 그림책으로 최고다. 표지 읽기만으로도 어린 시절 추억들이 마구 소환되었다. 겨울이면 우리 방에는 늘 솜이불이 깔려 있었다. 아랫목이 식으면 안되니까 꼭 이불을 펴 두어야 했는데 나는 이게 참 좋았다. 꽁꽁 얼어붙은 맨발을 따뜻한 이불 밑으로 쑤욱 밀어넣고 옹기종기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던 식구들. 바깥에서는 칼바람이 윙윙거려도 이불 속의 포근한 온기로 버텨내던 시간들. 안녕달 작가님 덕분에 불쑥불쑥 들락거리는 달콤 쌉싸름한 유년의 기억들. 모든 것이 다 그립고 아름답기만 하다. 그림책이 품고 있을 사랑과 기억을 축복하며 가볍게 책장을 넘기다가 난데없이 덜컥 브레이크가 걸리는 장면이 있었다. 사락사락 눈 내리는 밤, 시골집 마당으로 트럭 한 대가 들어온다. 밤 늦은 이 시각에 누굴까? -"저 왔어요." "애는 잔다. 저녁은?"- 저녁도 못 먹고 허겁지겁 달려온 아이의 아빠다. 연로하신 부모님께서 손주를 돌보느라 힘드실 것을 잘 알기에... 부모님 또한 그런 아들이 안쓰럽다. 따뜻한 밥상을 내어오고, 생선 가시를 발라 밥 위에 얹어 주며 다정하게 안부를 묻는다. 그런데 아이 엄마가 보이지 않아서였을까? 괜시리 마음 한 쪽이 시려왔다. 이 또한 내가 가진 편견일 것이다. 작가는 오늘날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가족 형태를 있는 그대로 품으며 가족 간의 사랑을 진한 감동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림책의 첫 장면이 어찌나 예쁘던지 바라보는 동안 내 두 눈에는 행복이 가득 차오르는 듯 하였다. 여기서 한참을 머물렀다. 동글동글하고 따스한 색연필의 질감이 마음까지 평온하게 한다. 이것이 바로 안녕달 그림책의 힘이 아닐까 싶다. 단조로운 일상을 가열찬 판타지의 세계로 이끌며 한바탕 질펀하게 놀아볼 것을 권유한다. 시종일관 하하호호 즐거운 찜질방 장면에서는 전작인 《수박 수영장》이 오버랩 되었다. 곰엉덩이 달걀은 과연 어떤 맛일까? 얼음 구덩이에서 퍼 올린 식혜는 얼마나 차가울까? 찜질방에서 달걀과 식혜를 먹어본 사람들이라면 그때 그 순간이 새록새록 떠오를 것이다. 찜질방을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아이들과 읽을 때는 그림을 꼼꼼하게 살펴보도록 보자. 찜질방에 입장하면 수건을 준다. 두 장씩만 가져가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그리고 음료수와 간식을 파는 매대가 반드시 있다. 메뉴판 읽는 재미도 있다. 뜨근뜨끈한 바닥에 드러누워 자거나, 간식을 먹거나 '놀멍쉬멍고르멍드르멍'...찜질방은 그러한 공간이라는 것을 페이지마다 가득히 펼쳐 놓았다. 한편, 안녕달 작가의 그림편지를 통하여 할머니 방의 온돌 이야기도 선물처럼 만날 수 있다. "뜨끈한 온돌 방바닥에 두꺼운 솜이불을 덮고 차가운 식혜를 마시는 기분으로 이 책을 봐 주세요."- 뿐만 아니라 판타지 속의 판타지라는 특이한 구조로 더욱 풍성한 화제거리를 담아낸 솜씨가 돋보였다. 달걀 계곡과 식혜 얼음판에서는 또 어떤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아이들과 함께 읽어도, 어른들과 함께 읽어도 나눌 이야기가 많다. 세대를 아우르는 마음 따뜻한 그림책 한 권으로 겨울 준비 끝~ *놀멍쉬멍고르멍드르멍 : '놀며, 쉬며, 이야기하며, 들으며'의 뜻을 가진 제주 방언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보고 자유롭게 쓴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