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젤로와 곤돌라의 기나긴 여행 - 2023년 1차 문학나눔 도서 선정 향긋한 책장 3
최은영 지음, 오승민 그림 / 시금치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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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가면 기념품 하나씩은 꼭 사가지고 온다. 
나의 경우에는 진짜 딱 한 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대부분 수납장 속에 깊숙하게 들어가 있어 잊혀지기 마련이다.
물론 가끔씩 들여다보고 여행의 추억을 되새기는 시간을 가지기도 하겠지만 결국 언젠가는 쓰레기가 되어버리고 만다.
그림책은 우리가 외면하는 바로 그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한때 필요에 의해서 또는 단순한 욕심에서 내가 가졌던 수많은 것들을 다시금 떠올려보게 되었다.
아이들은 물론이고, 주변의 더 많은 이들과 함께 반드시 읽어 보아야 할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바다를 건너온 머그컵과 냉장고 자석이 주인공이다.
이탈리아 여행지에서 부부는 여행 기념품을 하나씩 사서 집으로 돌아온다. 
천사가 새겨진 머그컵은 '안젤로'. 냉장고 자석은 '곤돌라'로 불리며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하지만 행복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안젤로, 오늘도 지루한 하루였지? 사람들이 이제 우리를 잊은 걸까?"-

-"다른 곳으로 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바다를 건너 고향에 가고 싶어. 함께 떠나지 않을래?"-

진짜 궁금하지 않은가?
머그컵과 냉장고 자석이 어떻게 떠날 수 있는지 말이다. 동식물이 아닌 사물은 공간 이동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 흥미로웠다.

-"그런데...바다까지는 어떻게 가야 할까?"-

-"바람이 불 때마다 뒹굴뒹굴 굴러가지."-

바로 이 문장을 읽는데 가슴이 턱 막히는 것이다.
마음이 아팠다.
이렇게나 무모한 도전 말고는 다른 길이 없는 이들의 처지가 가여워서 그랬을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둘은 결국 바다에 도착하게 된다.
고향에 온 것만 같았다.
여행을 떠난 뒤 처음으로 걱정도 없이 깊은 잠에 들었다.
그런데 둘의 운명은 여기서 갈려버린다.
손잡이는 깨어지고, 여기 저기 구르다보니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안젤로는 머그컵으로서 살아가야 할 의미를 잃고 돌이 되기로 결심한다. 반면에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곤돌라는 그런 안젤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돌이 되지 말라며 울부짖는다.

-"곤돌라, 곁에 있어 줘서 고마워. 난 이제 편안해. 네가 옆에 있고, 바람은 향긋하고, 파도 소리가 들려. 꼭 고향에 온 것 같아."-

안젤로의 작별 인사가 내 마음에도 간절하게 와 닿았다.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을까!
나의 마지막 순간도 이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억지 부리지 않고, 매달리지 않으며 평화롭게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 안젤로처럼...
믿고 의지했던 안젤로의 죽음은 더할 수 없이 슬펐지만 곤돌라는 혼자서라도 바다를 건너야만 했다.
이탈리아에 꼭 가고 싶어했던 안젤로의 소원을 대신 이뤄 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한 번 더 가슴을 울리는 장면이었다.

오승민 작가가 그려내는 바다 풍경은 차갑고 거칠다. 친구의 죽음을 애도하는 곤돌라의 마음처럼 외롭고 처절하다. 게다가 쓰레기 천지, 플라스틱 바다라니...
그러고보니 각종 쓰레기가 밀려다니던 바닷가의 모습이 불현듯 떠올랐다.
몹시 불쾌했던 기억이 있다.
플라스틱이 사라지는데 걸리는 시간은 500년 이상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수거되지 않고 떠도는 저것들을 대체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그림책 속 플라스틱 바다는 결코 과장되지 않은 현실 상황인 것이다.
이곳에 먼저 와 있던 플라스틱 숟가락과 곤돌라의 대화도 의미심장하였다.

-"우린 그런 운명이야. 잠들 수도 없고, 다른 생명의 몸 속으로 들어가면 그 생명을 죽이지."-

무분별하게 플라스틱을 소비하는 우리 사회에 대한 경고 메시지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충격에 휩싸인 곤돌라의 절규가 내 귓가에서 아우성치는 듯 하였다.

-'새를 죽이지 않고도 바다를 건널 방법을 내가 꼭 찾을게. 너의 꿈을 내가 대신 이뤄 줄게."-

플라스틱 문제를 다룬 환경 그림책이라고 분류할 수도 있겠지만 그림책이 담고 있는 가치는 인본에 중심을 두고 있다.
물건 하나를 사도 신중해야 하며, 내 물건에 대한 애착심을 돈독히 하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다.
함부로 다루어서 파손되거나 부주의로 분실하고는 또 새 물건을 사들이는 것에 대하여 경각심을 갖게 한다.
사랑과 우정에 대한 남다른 시각 또한 새롭고 신선해서 좋았다.

그림책은 다행히 해피엔딩이다.
뒤면지까지 이야기가 이어지면서 경직된 독자의 마음에 따스한 온기를 입힌다.
감각적인 색채의 그림도 좋고, 무엇보다 서사적 매력이 특별하다.
오래도록 곁에 두고 맘껏 자랑하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보고 자유롭게 쓴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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