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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한번 해보았습니다, 남기자의 체헐리즘
남형도 지음 / 김영사 / 2020년 6월
평점 :
이웃님들 기사 많이 읽으시나요? 저는 사실 최근에 스마트폰 첫 화면에 있던 뉴스 사이트를 지워버렸어요.
깜짝 놀랄만한 제목에 헉! 하고 들어가서 보면 내용은 헐... 제목이랑 완전 다른 내용...
낚는 기자는 입금이 되는지 모르겠지만 낚이는 독자는 정말 기분 드럽져. 어디 소속인가 괜히 찾아보게 되고.
내가 왜 폰 열 때마다 이런 쓰레기 같은 글을 정제해가며 정독해야 하나 싶어서 과감히 삭제!
이래서 기레기 기레기 하는구나 싶었는데 최근에 어떤 한 책을 읽고 굳었던 마음이 조금은 풀렸습니다.

이미 유명한 '체헐리즘' 때문에 남형도 기자를 아시는 분도 많을 것 같아요.
체헐리즘은 체험+저널리즘의 합성어인데... 남기자님이 직접 만든 단어랍니다.
소외된 곳들을 찾아 직접 체험하고 알리겠다는 포부를 담아 실제로 체험한 내용들을 기사로 쓰고 계시는데요,
저는 몇 년 전 여자 속옷을 실제로 입어보았다는 글과 진짜 흰 셔츠 안에 그... 그... 입은 인증샷(!)을 보고
충격적으로 체헐리즘을 알게 되었어요. 그 기사들이 모아져 이번에 책으로 나오게 되었답니다.
기사 사진에 덮여있던 모자이크 처리도 없고 빽빽한 광고도 없고 한 번에 쉽게 읽을 수 있어서 좋네요.

서평 쓸 때 프롤로그 잘 안 찍는 편인데
어떤 마음으로 기사를 쓰는지 왜 이 책을 냈는지 잘 전해져서 담아봤어요.
저도 늘 좋은 사람이 되어야지, 좋은 엄마가 되어야지 하는데 맨날 흔들리고 맨날 반성합니다.
좋은 저 마음이 오래도록 유지되는 기자가 되면 좋겠네요. 응원합니다!

1장 우리는 위로받을 이유가 있다 / 2장 시선 끝에 그들이 있었다 / 3장 나답게 살고 있습니까
총 3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제목부터 솔깃한 글들이 몇 개 보이세요?
저는 무연고 사망자에 관한 글,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해봤다는 글이 눈에 쏙 들어오네요.
제가 인상깊게 읽은 몇 가지만 소개해드릴게요.

오우... 이거예요. 제가 체헐리즘 처음 보고 깜짝 놀란 사진 ㄷㄷㄷ
여자의 골격이 아닌 등뼈와 흰 셔츠 뒤로 비치는 속옷의 괴리감을 보고 이 이게 뭐야!! 했는데
사실 여자들도 이미 완전히 학습이 되어서 가슴이 나오면 당연히 브라를 입어야지 의심하지 않던 걸
남자가 이게 불편한가? 그러면 노브라는? 의문을 던지고 진짜로 입고 출근, 회사 생활하고, 퇴근까지 하셨더라고요.
너무 충격적으로, 한편으로는 재미있게 읽었는데 남성을 체형을 가진 남자가 아닌, 여성의 체형을 가진 여자가 이렇게
노브라로 출퇴근 해봤다! 하고 컨텐츠가 올라왔다면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네요...

생각해 보니 이 기사도 읽었던 것 같아요. 실제 노인 분장을 하고
노인 생애체험센터에서 무거운 체험 장비를 빌려 체험했던 글도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뭐 원래 건강이 썩 좋지도 않았지만 출산 후 눈은 침침하고 어깨와 목은 늘 뭉쳐있고 골반은 살짝 뒤틀리고 발은 족저근막염...
노인의 몸이 너무 빨리 온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진짜로 노인으로 분장하여 홍대에 간 여정이라니...
기자님과 동갑내기라 그런지 더욱 남의 미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몸 늙는 것은 어쩔 수 없겠죠. 하지만 마음이 낡지 않도록 먼지도 털어주고 깨끗이 닦아줘야겠어요.

고독사에 대한 뉴스를 본 이후 무연고 사망자에 대한 기사도 진지하게 읽었답니다.
제 지인 중 한 분은 자식들이 본인 장례를 제대로 안 치뤄줄 것 같다며 비싼 상조에 가입하셨고
어떤 분은 어차피 죽으면 땡인데 나 죽은뒤에 향을 피우든지 말든지 라는 입장이세요.
그러나, 저는 제가 죽을 때 누군가가 기억하고 그리워해줬으면 좋겠어요. 이런 연유로 남편에게도
너보다 내가 먼저 죽을거니까 그렇게 알아둬라 일방적으로 통보한 상황인데
무연고분들을 위한 공영 장례라는 제도가 있어서 마지막 가는 길을 봐드릴 수 있다니 그나마 다행이네요.

애 엄마가 아무것도 안 함. 이 가능한 시간은 오직 애 없는 시간이죠. 어쩌다 시댁이나 친정에서 아이를 봐 주시고
얘 넌 좀 쉬어라 하면 저는 잽싸게 그 곳을 탈출하여 저만의 시간을 갖습니다(육아 초반에는 몇 번 사양했음, 왜 그랬지 대체).
그리고 보통은 침대에 가장 편한 자세로 자리를 잡은 뒤, 애 있을 때 못 한 인터넷 서핑을 시작합니다.
이 시간이 끝나기 전에 하나라도 더 봐야 한다는 일념으로 뻘개진 눈에 힘을 줘 가며 아득바득 서핑했던 것 같은데
이 글을 읽고 곰곰히 생각해 보니 이건 쉬는 게 아니네요. 쉬는 척 하면서 계속 뭔가를 했네요.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하고 싶다. 라고 하면서 계속 뭔가를 하는 나.
조만간 정말 아.무.것.도. 안해보는 경험을 하고 싶습니다.
기자님이 직접 체험한 글이라 실감도 나고 워낙 필력이 좋으셔서 한번에 쭉쭉 읽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최근 읽은 책 중에 가장 재미있게 읽은 책이라, 이웃님들께도 권해드리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