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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서기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희정 옮김 / 지혜정원 / 201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결혼 7년차인 나는 결혼하면서 남편에게 딱 한가지만 얘기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 생기면 모든 걸 버리고 빈 몸으로 나가라'
가정이라는 건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절대 무너지지 않는 성벽은 아니다. 부부싸움을 하면 정말 헤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고 차라리 혼자가 편한데 내가 왜 이런 미친 짓을 했나 싶기도 하다.
서로가 소중히 지켜오던 가정이 한쪽의 일방적인 통보로 깨져버린다는 것은 양쪽에서 팽팽히 당기던 끈을 한쪽에서 놓아버리는 것과 같다. 상대방이 받는 타격은 얼마나 강하게 당기고 있었느냐와 비례할 것이다.
결혼 15년차에 아이가 둘인 올가는 평범한 주부다. 남편의 반대로 하던 일도 그만두고 아이들과 남편을 위해 헌신하며 살았다. 그런 그녀에게 어느 날 남편이 이별을 이야기하고 나가버린다. 전에도 종종 있던 일이라 별일 아닐거라 스스로 위로하지만 사태는 점점 심각해지고 자신이 왜 버림 받아야 했는가로 인해 올가는 절망하게 된다. 그리고 남편과 세상에 대한 분노와 증오로 인해 삶은 더 피폐해지고 그녀 곁엔 아무도 남지 않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이웃집 남자와 의미 없는 하룻밤을 보내게 되고, 다음날 눈을 뜨니 아이는 아프고, 키우던 개는 죽어가고, 집의 현관문은 고장이나 집안에 갇힌 신세가 되어버린다.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올가는 눈물겨운 사투를 벌이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며 더글라스 케네디의 <위험한 관계>가 생각났다. 위험한 관계가 빼앗긴 아들을 찾아오기 위한 투쟁이었다면 이 책은 절망에 빠졌던 여자가 그 수렁속에서 벗어나는데 초점을 맞춘 이야기이다. 내가 버림 받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인가하는 자책부터 세상의 모든 이들이 나를 비웃고 남편과 그의 새로운 애인의 편을 들 것이라는 피해의식과 원망, 그리고 그들을 향한 분노에서 현실을 인식하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이 너무나 처절하게 그려진다. 그리고 가슴 아팠다.
사람이 한 사람을 평생 사랑하면서 살아간다는 건 참 힘든일일 것이다. 사랑이 없는 결혼 생활을 유지한다는 것도 고통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어느 한 순간 상대방이 나를 두고 다른 사람에게 간다면 그걸 과연 쿨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마도 내가 직접 겪어보지 않은 일이기에 나는 올가에게 100% 동화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런 책을 읽으면 드는 가장 확고한 생각은 내 자신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것. 어떤 순간에도 내가 가장 소중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언제든 홀로설 수 있기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