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나'는 지하배수로에 살고 있는 개다. 할아버지와 부모님, 큰형과 작은형 그리고 누나와 함께 사는 나는 늘 굶주려 있다. 편찮으신 할아버지는 죽음을 눈 앞에 두곤 '창구'를 보고 싶다고 하신다. 그 후 나는 창구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지만 아무도 창구에 관해선 입을 열려 하지 않는다. 우연히 만난 연분홍 지렁이를 통해 창구와 창구 너머 인간 세계에 관해 알게 된 나는 인간 세상에 관심을 갖게 되고 작은 형이 이빨을 버리고 사라진 것처럼 이빨을 버리고 인간 세상으로 떠나게 된다. 인간으로 변신한 나는 모든 것이 새롭고 당황스러운 상황의 연속이다. 너무나 좋아하는 돼지갈비를 먹으러 들어간 식당에서는 음식값을 달라고 하고 돈이 없는 나를 경찰서에 넘긴다. 경찰들은 이름이나 주소를 알아내기 위해 애쓰지만 그는 아무것도 모르기에 대답해 줄 수가 없다. 결국 나는 부모없는 아이들이 사는 집으로 들어가게 되고 그 곳에서 새로운 아이들과 형제가 된다. 하지만 어린 그들 역시 이기심으로 똘똘 뭉쳐있고 서로를 시기하며 미워한다. 어느 날 우연히 연분홍 지렁이를 생각나게 하는 한 여자아이를 만나게 되고 그 아이와 함께 있고 싶어 학교를 들어가기로 한다. 처음 그를 무시하던 교장선생님은 그가 시험을 잘 치르자 그를 천재라고 치켜세우며 대우를 잘 해주고, 엄마 역시 맛있는 반찬을 해주고 숙제를 하지 않아도 용서해 주는 등 특별 대우를 받게 된다. 책에는 참 우스운 어른들이 많이 등장한다. 돈만 밝히는 음식점 주인이나, 무능력한 경찰들, 성적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선생님, 규칙만 내세우는 엄마 등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어른들이지만 어린 아이의 눈엔 한심하고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일 뿐이다. 나도 어느새 어른이 되어버린 것인지 인간으로 변한 개의 행동이 조금은 낯설게 느껴진다. 요즘은 5살 아이들도 그렇게 천진난만하진 않으니 말이다. 좋아하는 것을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어른들이 정한 틀 안에서 살아야 하는 우리의 아이들이 조금은 가엾게 여겨졌다. 하지만 개가 인간으로 변해 적응하며 살아가듯 아이들도 어른이 되며 사회에 적응해 나가는 것이겠지. 지금의 나처럼 말이다. 표지의 재미난 그림과 함께 순수한 마음을 떠올려 볼 수 있는 흥미로운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