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목욕탕
김지현 지음 / 민음사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한 부부가 안개 낀 서해대교를 건너다 교통사고가 나고 여자는 3개월 후에 깨어난다. 그리고 곧이어 시어머니가 전하는 말은 남편이 세상을 떠났으니 이제 너 혼자 살아가라는 얘기. 사고 당시 보았던 남편의 모습을 잊을 수 없는 아내는 아직 남편의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도 되지 않은 채 만신창이의 몸을 이끌고 시어머니가 마련해주신 지하방으로 친정엄마와 함께 들어간다. 부부가 살고 있던 집을 처분하고 남편의 사망보험금까지 챙긴 시어머니가 그녀에게 남겨준 것은 고작 지하방 하나와 때밀이 쿠폰 석 장.

 

여기까지 읽고 난 정말 돌아버리는 줄 알았다. 늘 모든 상황에 나를 대입하여 상상하는 나쁜 버릇이 있는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또 나를 주인공과 동일시 해버렸다. 내가 남편과 여행을 가다 사고가 나서 3개월 후에 깨어났더니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를 팔고 신랑의 사망보험금까지 챙긴 시어머니가 그래도 니 살길은 마련해놨다 하시며 지하방에 우리의 짐을 옮겨 놓는다면...그리고 '애도 없으니 이제 인연 끊고 살자'하신다면...남편 명의로 된 집이니 엄마인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 아니냐 하신다면...난 과연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남편의 죽음도 받아들이기 힘든데 그와 살던 모든 흔적까지 사라져버린다면...신랑한테 얘기했더니 넌 뭐 그런 이상한 책을 보냐고 화를 낸다.

 

화를 참으며 책을 읽다보니 책 속의 모두가 다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을 잃은 미령도 불쌍하고, 그녀의 엄마인 호순도 불쌍했지만, 특히 미령의 시어머니인 복남이 가장 불쌍했다.

사랑으로 결혼을 했고 아들을 낳았지만, 남편이 바람을 피워 이혼을 하고 절망 속에 자살을 하려다 그 모습을 아들에게 들키고 그 후 아들의 냉대속에 살아야 했던 복남. 때밀이를 직업으로 악착같이 살아남으려 애썼지만 철이 들자마자 아들은 집을 나가 독립을 했고 그 후 더 외로이 살아야 했던 사람. 아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어 더 궁상을 떨며 돈을 모으고 강한척 살아왔던 엄마라는 자리. 땀을 많이 흘리는 때밀이라는 직업때문에 짜디 짠 짱아찌만 먹어대는 사람. 아들의 집을 판 돈과 사망보험금으로 마련하고자 했던 아파트에서 그녀는 유골함 속의 아들과 같이 살고 싶어했다. 그렇게라도 아들을 곁에 두고 싶어했다. 그녀의 마음을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인생이 너무 짠해 가슴이 아팠다.

커다란 엉덩이 때문에 늘 놀림을 받아야했던 호순. 그녀는 뻥쟁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이야기를 잘 지어내지만 사기치기 위함이 아니라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죽을 때까지 그녀를 사랑했던 남편과의 사랑속에서 부족하지만 행복한 삶을 살았던 그녀는 미령과 복남의 고부 갈등을 어느 정도 해소해 주는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여자다. 딸에게 독하게 대하는 복남을 미워하면서도 아들을 잃은 그녀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엉덩이가 큰 우리 호순씨. 난 정말 그녀가 좋다.

하지만 역시 내가 며느리인 입장인지라 나의 감정은 미령에게 가장 많이 이입되는 것 같다. 남편이 죽고 난 후 후회하는 그녀. 서로의 이기심으로 바쁘다는 이유로 상대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고 자신의 말만 내세우고, 조금의 양보나 배려도 하지 않으려 했던 그들. 그녀가 아이를 유산하고 병원에서 건 전화를 받지 않던 남편이 미령에게 보낸 꽃게탕 끓여달라는 문자메세지를 보고 난 기절하는 줄 알았다. 내가 늘 신랑에게 하는 말이 '아무리 바빠도 내 전화는 꼭 받아라'이다. 내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가장 먼저 알아야 할 사람은 남편이니까. 그런데 집에서는 전화를 안받는다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수십통의 전화를 무시하던 남편이 아내에게 꽃게탕을 끓여달라는 문자메세지를 보내다니...그리고 아이를 잃은 상실감과 아픈 몸으로 침대에 누워있는 아내에게 기분전환을 하러 쇼핑을 가자니...이게 뭔 시츄에이션인가. 그러니 아내가 남편에게 마음의 문을 닫을 수밖에. 여자들은 참 사소한 것에 감동하고 사소한 것에 상처받고 하는데 말이다.

내가 가장 안타까웠던 부분은 둘이 서로 사랑하고 있었음에도 그 마음을 내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동해안을 좋아하는 미령과 민박을 좋아하는 남편. 미령은 동해안의 민박집으로 여행을 가려하지만 이미 남편이 서해안의 팬션을 예약해 놓은 상태였고, 남편과 여행지에서 뭘 할것인가 인터넷 웹서핑을 하느라 밤을 새워 피곤해하는 미령에게 남편은 그렇게 여행이 가기 싫은거냐고 딴지를 건다. 왜 그녀는 그 때 솔직하게 말하지 않은 것일까. 동해안의 민박집으로 여행을 가자거나 당신과 함께 하기 위해 인터넷으로 조사를 했다는 말을 했더라면 남편은 그녀의 마음을 좀 더 알 수 있지 않았을까. 어릴 적 아빠에게 버림받고 엄마도 자살하려 했기에 버림받았다고 생각하고 살아오던 그녀의 남편은 아마도 그녀에게 많은 사랑을 기대했을텐데 말이다. 나처럼 속에 있는 말을 참지 못하는 사람은 이 둘의 상황이 너무나 답답하다. 좋으면 좋다, 불만이 있으면 이런게 불만이다 말하고 살았더라면 이 둘처럼 아픈 이별은 하지 않아도 되었을텐데 말이다.

 

결국 남편을 잃은 미령과 사위를 잃은 호순, 아들을 잃은 복남은 서로를 보다듬으며 서로의 상처를 치유해준다. 그리고 그들이 하나되는 공간이 바로 목욕탕이다. 반항심이랄까 알 수없는 감정으로 때밀이 쿠폰을 이용하며 시어머니에게 때를 밀어달라는 미령, 자신의 알몸을 내보이는 그녀가 난 참 대단하다고 생각되었다. 사실 난 한동네 사는 시어머니와 목욕탕을 한 번도 같이 간 적이 없다. 한 번은 목욕탕에 들어갔는데 시어머니가 계신 걸 보고 놀라서 나와버린 적도 있다. 그런데 그녀는 때를 밀어달라고 한다. 용감하게. 시어머니도 어이가 없지만 때를 밀어준다. 참 대단한 고부관계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호순과 함께 살게 된 복남은 호순과 함께 목욕을 하고 그녀에게 일자리를 찾아주기도 한다. 그리고 남의 때만 밀어줘 봤지 자신의 때를 밀어본 적은 없다는 복남을 위해 호순은 복남의 때를 밀어준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사실 목욕탕은 참 알수없는 공간이다.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알몸을 보이지만, 그 곳에 아는 사람이 있다면 참 어색해지는 곳이 목욕탕이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친한 친구가 아니면 함께 가기 어려운 곳이 목욕탕 아닐까. 자신의 모든 것, 숨은 속살까지 다 보여줘야 하는 곳. 그래서 오히려 훨씬 더 친해질 수 있는 곳. 그래서 제목이 춤추는 목욕탕인가보다. 내 모든 것을 보여주고 타인의 모든 것을 보며 서로를 알아가는 곳. 나도 친구들과 목욕탕이나 한 번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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