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난 이 책이 여행기라고 알고 읽기 시작했다. 내가 읽었던 몇 안되는 여행기는 여행 전반을 다룬 책들이 대부분이었기에 이 책을 읽으며 살짝 당황스러웠다. 글이 쓰여진 시점도 정확히 모르겠고, 시간의 순서에도 맞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몇 편을 읽고서야 이 책이 여행기가 아니라 여러 편의 글을 엮은 산문집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사실 이런 산문집을 읽어본 적이 없어 더욱 당황스러웠을지도. 나의 편협한 독서 취향을 반성하는 순간이었다. 사실 난 작가의 유명한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조차 읽어본 적이 없다. 유명한 책이기에 제목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내가 서른이 되어서도 제목이 주는 우울함이 싫어 읽을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작가에 대한 사전지식이 전혀 없이 읽게 된 이 책은 나에게 또 다른 삶의 모습들과 추억을 떠올리게 해주었다. 대학 때 기숙사 룸메이트였던 한 친구는 불문학을 전공하면서 내가 알지도 못하던 책을 읽었었다. 그녀의 책상과 침대주위엔 책꽂이에 꽂을 수 없어 쌓아놓은 책들이 수없이 많았지만 난 그 중의 한 권도 읽어보지 않았었다. 단지 그녀가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늘어놓는 이야기들을 들으며 딴 세상에 사는 친구라 치부해버리고 말았었다. 지금은 프랑스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있는 그녀가 이 책을 읽으며 문득 생각이 났다. 예술을 알면, 문학을 알면 인생이 복잡해진다. 좋게 말해 인생이 풍요로워진다. 보통 사람들은 밖에 보이는 것만 보고 이렇다 저렇다 미추를 논하는데, 예술가들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다른 각도에서 보는 사람들이거든. 자신이 남다른 생을 살아야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이 눈에 들어오는 법이다. <교토의 바위 정원을 추억하며> 작가가 조카에게 보내는 글인 <교토의 바위 정원을 추억하며>에 나온 구절이다. 이 구절이 나의 가슴에 팍 박혔다. 내가 책을 읽거나 그림을 보면서 느꼈던 '왜 나는 겉만 보고 속의 감춰진 점들을 발견하지 못할까?'하는 질문에 대한 답이 여기에 있었다. 난 그냥 보통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작가와 다른 나의 시선을 깨달으며 난 정말 지나치게 보통인 사람이구나 하고 느꼈다. 작가의 여행방식과 나의 여행방식도 너무나 달랐고 책에 언급된 그림들이나 영화들을 내가 본 것도 많았는데 그녀의 감정과 나의 감정이 잘 교감되진 못했다. 이렇게 또 나와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가게 되는 것이다. 내가 전혀 알지 못했던 세계에 대해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준 고마운 책이지만 여전히 불편한 마음이 남는 것은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