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 창비세계문학 40
마리오 베네데티 지음, 김현균 옮김 / 창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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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아메리카 문학 읽기: 마리오 베네데띠, <휴전>

창비 세계문학 시크릿서평단 책으로 마리오 베네데띠의 <휴전>을 받게 되었다.

세계문학전집이라고 해서 나름 세계문학은 읽어 본 것들이 많으니

그래도 들어 본 책이 오겠거니 했는데

정말 전혀 모르는 책이 도착해서 더 설렜다.  

.

라틴아메리카, 그 중에서도 전혀 익숙하지 않은 우루과이 문학이다.

창비 세계문학 리스트를 보니 기존에 잘 알려지지 않던 세계문학 도서가 많은데,

실제로 발간 취지가 국가와 민족, 언어의 경계를 넘어,

근대를 성찰한 서양문학뿐 아니라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등 비서구권 문학의 성취를 발굴하고 재평가하는 것이라고 한다. 탈식민주의 비평에 관심이 있는지라 더욱 기대되었고 다른 책들도 읽어 보고 싶었다 :)



창비세계문학 리스트

<휴전>이라는 제목에서 당연히 전후소설일 거라 짐작했는데,

휴전은 은유적 표현이었다.

글은 전체적으로 일기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가독성이 좋고,

술술 넘어가는 편이었다.

실제로 베네데띠는 가르시아 마르께스나 바르가스 요사 같은 붐 소설가들에 대해 보편문화에 접근할 수 있는 특권계급을 대변한다고 지적한 바 있는데,

그래서인지 베네데띠의 소설은 읽기 어려운 문장이 없고 정말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반영하고 있다.

마리오 베네데띠는 우루과이의 몬떼비데오에서 살았는데,

어린 시절 가난해서 판잣집에서도 살았다고 하니

그가 민중의 가슴에 닿을 수 있는 문학을 쓰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을 것.


(아래 내용 스포일러 있음)

주인공인 49세의 마르띤 산또메는 세 아이를 두고, 이십 대에 아내를 사별하고 무역회사의 부장으로 일해 오고 있는 남자다. 평범하고 약간은 염세적인 삶을 살고 있던 그의 일상에, 새로 입사한 라우라 아베야네다는 새로운 활력소가 되고 두 사람은 거의 부녀지간뻘인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빠져든다.

두 사람은 점차 가까워져 마르띤이 준비한 아파트에서 지내며

사랑을 나누기도 하고, 서로의 가족을 소개시켜 주기도 하는데..

마침내 마르띤이 고민 끝에 라우라에게 청혼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라우라는 독감으로 돌연 죽음을 맞는다.

결말에서 라우라 아베야네다가 갑자기 사망할 거라곤 예상도 못했기에

정말 당황..스러웠지만 또 동시에 이런 결말인 것이

이 책을 끝맺기에 적절한 방식이 아니었을까 싶다.


일기 형식인 것에서도 볼 수 있듯이

<휴전>은 주인공 1인칭 시점으로 시간을 자각하는 게 포인트인 소설.

9월 23일 라우라의 죽음을 알았지만

실제로 그가 일기장에 라우라의 죽음을 기록한 것은

4개월이 지난 후라는 것에서도 주인공이 느꼈을 상실감이 잘 드러난다.

주인공 마르띤이 기다리던 퇴직이 다가왔을 때도

마르띤은 일기 쓰기를 그만두겠다고 말하는데,

라우라의 죽음과 함께 휴전의 시기는 막을 내렸고

이제 모든 것은 거대한 허공이며 일기에 기록할 의미 있는 일은 더이상 일어나지 않을 것임을, 신의 부재보다 더 큰 그녀의 부재가 미래의 시간을 지배할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 p.225)

결국 제목이 말하는 '휴전'은 마르띤의 고독한 전쟁 같은 삶 사이에서

라우라가 가져다 준 짧은 휴전의 시간이었을 뿐인 것이다.



과연 <휴전>은 평범한 정치소설, 사회소설은 아니다.

정치적 문제가 직접적으로 수면 위에 드러나지 않고,

주인공 마르띤의 삶을 일기로 전달한다.

하지만 <휴전>은 동시에 정치적, 사회적, 보편적인 소설이다.

마르틴과 라우라뿐 아니라 그의 세 자녀들, 직장 이야기, 옛 친구들과의 만남 등

마르틴을 둘러싼 주위의 연결된 사회와 그의 내밀한 마음 속을 연결한다.

주인공의 고독하고 염세적인 삶과 사회 전체의 집단적 삶,

운명을 연결짓는 것이 바로

마리오 베네데띠의 보편적 글쓰기.

나를 찾아온, 나를 발견한 이 합당한 행복을 필사적으로 붙들고 늘어져야 한다. 그게 바로 내가 너그러워지고 관대해질 수 없으며, 또 나 자신의 문제보다 타인의 문제를 먼저 생각할 수 없는 이유다. 인생은 흘러가며 지금 이 순간에도 흘러가고 있다. 그녀와 함께 보낸 오늘은 영원이 아니다. 그건 단 하루, 하느님 빼고 우리 모두에게 소멸될 수밖에 없는 보잘것없고 비루하며 제한된 시간일 뿐이다. 그러므로 난 두 주먹을 불끈 쥐어야 한다. 깊이 생각할 것도 없이 무조건 이 충만함을 남김없이 소모해야 한다. 아마도 그뒤에 결정적인 휴식, 확실한 휴식의 순간이 올 것이다. - <휴전> 中

* 해당 서평은 창비 세계문학 시크릿서평단으로 참여하여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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