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뒤에도 반드시 살아남는 것들에 관하여

델핀 오르빌뢰르, <당신이 살았던 날들>


간만에 묵직하면서도 너무 무겁지 않고, 가벼우면서도 너무 가볍지 않은 책을 읽고 싶어서

델핀 오르빌뢰르의 <당신이 살았던 날들>을 꺼내들었다.

죽음 뒤에도 반드시 살아남는 것들에 관하여-라는 아름다우면서도 의미심장한 부제를 가진 책

저자 약력부터가 흥미롭다.

1974년생, 랍비이자 철학자, 작가인데 1992년까지 예루살렘의 히브리 대학에서 의대를 다니다

프랑스로 돌아와 저널리즘을 공부하고 언론인이 되었고, 이후 미국에서 랍비가 되었다고 한다.

죽음에 관한 책이라고 듣기는 했지만 장르를 모르고 꺼내든 책이라

한편으로 설레면서도 궁금한 마음으로 읽었다.



<당신이 살았던 날들>에는 샤를리 에브도의 의사 엘자, 마르크, 유명한 시몬 베유와 마르셀린 로리당의 우정,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사라,

어린 이사악의 형, 필자 오르빌뢰르의 친구 아리안 등,

죽음을 맞이하고 받아들이는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유대 인들은 무덤을 꽃으로 장식하는 일 대신 작은 조약돌을 무덤 위에 올려놓는다고 하는데,

책을 읽으며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가 조약돌처럼 그들의 무덤 위에 올려지는 것 같았다.

필자 오르빌뢰르는 랍비이기 때문에 유대 전통 장례를 주관하고 헌사를 읊고, 카디시(기도문)으로 남겨진 자들을 위로하는 등 역할을 하는데, 이 과정에서 의대에서 해부학 실습을 했던 저자의 기억들도 중간중간 등장해 더욱 흥미로웠다. 오르빌뢰르는 타인의 말을 경청하고 돕는다는 점에서 의학, 저널리즘, 유대교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했는데

정말 그 말이 잘 어울리는 책이었다.

올해부터 필사 취미를 시작했는데 책의 문장 하나 하나를 곱씹어 옮겨 적고 싶을 만큼

한 문장 한 문장이 모두 마음에 다가왔다.

정말 모든 사람에게 꼭 읽어 보라고 추천해 주고 싶은 책이었다.


내가 일하는 사무실로 와서

자신들이 '보고' 싶은 장례식을 말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나는 늘 대화의 어느 시점에 그들에게 되새겨줘야 했다.

그들은 절대 장례식을 '보기' 위해 그 자리에 있지 않을 거라고.

장례식이 이러이러했으면 좋겠다 하고

세세하게 계획하는 것은

그야말로 이 예식의 핵심에 자리한 문제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즉 우리 삶을 더이상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본심을 드러낸다.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죽음을 수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당신이 살았던 날들 中, p.188


많은 사람들이 요즘은 자신의 죽음, 장례식에 대해 생각하고 미리 계획한다고 한다.

나 역시

여러 가지 생각해 둔 것이 있었는데

저자는 오히려 우리의 장례는 우리가 '보지 못한다'는 점. 결국 우리는 죽고 나면 우리의 삶을 더 이상 통제하지 못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결국 죽음을 이렇게 강박적으로 '준비하고 계획'하려는 태도 또한 죽음을 수용하지 않으려는 우리의 미련에서 나온 게 아니었을지, 한편으로는 반성하고 생각하게 된다.


한국에서 자란 우리 k-어른들은 탈무드로 유대교를 먼저 접했을 것 같은데,

저자가 유대인이고 랍비이다 보니 우리는 모르는 유대 의식이나 전통, 문화에 관한 언급이 많이 나온다. 그렇다고 해서 읽기 어렵지는 않았고 오히려 우리가 몰랐던, 혹은 근본주의에 가려져 알지 못했던 유대 전통이나

마음가짐( 그리고 유머들)을 알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또 이 책이 죽음에 관한 책이니만큼 유대인들의 기억에서 빼놓을 수 없는

홀로코스트 이야기도 등장한다. 저자 역시 이를 언급하며, (홀로코스트의 기억) '이후에 태어난' 아이들은 자신들의 부모가 되는 동시에 손위 형제들의 대체가 되어야 했다고 말한다. '메시아-아이' 증후군은 트라우마를 겪은 가족들에게서 월등히 증가하고, 비극과 불행으로 인해,

아이들은 더욱 그 기억을 꿰매 보려 하지만 실패할 수밖에 없는 시도라는 것.

유대인의 기억 속에 집단으로 생겨진 트라우마적 의식이 아닐까.



책의 초반에 등장하는 언급인데, 유대 교에서 고인은 튜닉 형태 하얀 수의를 입힌 상태로 묻혀진다고 한다.

유대 전통에서 죽은 자들의 채비를 매듭짓는 마지막 의식은 수의의 가장자리를 꿰매는 것이라고 하는데, 따라서 옷을 꿰매는 것은 유대 전통에서 죽음과 연관지어진다고 한다.

우리가 아는 많은 영화나 대중문화 속에 유령은 하얗고 헐거운 수의에 싸인 망자, 즉 엉성하게 꿰매거나 꿰매지지 않은 이불보 같은 수의를 입은 모습이다. 즉 그들은 수선되지 않은 탓에 아직 이 세상을 떠날 수 없는 것. 히브리 어로도 유령은 '루아흐 레파임' 즉 늘어진 영혼. 올 풀린 영혼이라고 한다.

유령은 그들의 너덜너덜 해어진 이야기의 흔적을 간직하기 때문에 돌아오는 것이다.

그들은 풀려버린 올이 뜯겨나가기를,

그러니까 살아남은 자들이

그들의 이야기를 손봐주기를 기다린다.

당신이 살았던 날들 中 p.64

책을 읽으며 '죽음' 이라는 주제를 묵직하지만

너무 무겁지도 않게, 가볍지만 경솔하지 않게

내 안으로 끌어당길 수 있었다.

.

이렇게 길게 썼는데도 아직 책에서 더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이 많을 만큼... 번역도 너무 아름답게 옮겨져서 주변인들에게 모두 추천해 주고 싶은 책.

뭐라 장르를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운 글이면서 울림을 주는.

간만에 읽은 너무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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