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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녀 힙합 - 집밖의 세계를 일구는 둘째의 탄생
이진송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5월
평점 :
여자로 태어나서 차별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외동딸인 나는 부모에게서는 온전한 사랑을 받았지만, 조부모에게는 달랐다. 그것도 외가 다르고, 친가 달랐다(요즘은 외할머니 친할머니 대신 대구할머니 부산할머니 한다지 아마).
딸 둘, 아들 둘을 키운 외할머니는 손녀든 손자든 똑같이 대우해줬다. 간식을 줄 때도 똑같은 접시에 똑같은 양을 배분해주니 불만이 생길 턱이 있나. 혼날 때도 잘못한 만큼 똑같이 혼나니 우리 모두는 '외할머니 = 공정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이건 엄마, 이모, 삼촌들이 자랄 때도 똑같았다고 한다).
하지만 아들만 셋을 키운 친할머니는 달랐다. 아들 셋 중에서도 장남은 아픈 손가락, 차남인 아빠는 내세울만한 잘난 손가락, 막내는 그저 예쁜 손가락이었다. 동갑내기지만 몇 달 빨리 태어난 장남의 아들을 차남의 딸인 내게 '오빠'라고 부르게 했고, 오빠에게 알게 모르게 더 좋은 것을 주고 더 많은 것을 줬다. 속된말로 '성질이 지랄'인 내가 그런 차별대우를 참을 리가 있나. 울고 불고 드러누워 발광(?)을 하며 "아 진짜 차별하지 말라고오오오!!!!!!"를 외친 끝에, 친할머니는 간식이 담긴 접시를 내게 내밀며 "그래그래, 니가먼저 골라라..."라고 했다. 내가 심혈을 기울여서 더 좋은 걸 골랐기 때문에 할머니는 그 이후에도 특정 접시에 더 좋은 걸 담을 수가 없었다. 내 눈치가 보였으니까. 그래도 후련하진 않았다. 우는 놈 떡하나 더 주는 심정일 뿐이었지 마음까지 바뀐 건 아니라는 걸 알았으니까.
뭐 이건 전적으로 내가 '성질이 지랄'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고,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에겐 말하기도 아니꼽고 치사해 억눌러 참았던 일들이었을 것이다. 다 쏟아내는 나조차도 그 치사한 차별이 가슴속에 사금파리처럼 박혀있음을 느낄 때가 많은데, 《차녀 힙합》을 보니 이 세상에 둘째들 혹은 둘째가 아니지만 차순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던 존재들이 얼마나 가슴에 맺힌 응어리가 많을까 싶었다. 화내면서 또 깊이 공감하면서 글을 읽었다.
《82년생 김지영》이 여성을 향한 부당함에 대해 다룬다면, 《차녀 힙합》은 '차녀'라는 대상을 통해 차별과 부조리함을 더욱 구체화한다. 때로는 진지하고 때로는 유쾌하게 부당함을 낱낱이 까발린다. 그러면서 가족구성원들의 그러한 행동이 '가족 이데올로기'에서 비롯된 것임을 일러준다. 남녀차별, 첫째와 둘째 차별- 이런 건 그냥 남아선호사상 내지는 장자우선주의 이런 데서 기반했다고 생각했지 가족 이데올로기에서 비롯됐다는 건 이 책을 읽고서야 알게 되었는데, 가족으로부터 무려 '학습'된 차별이라니....아는 게 많을수록 불편해진다는 말, 이 책을 읽으면서도 또 느꼈다. "아, 이제 더 불편해지게 생겼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많은 여성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한다. 그래서 우리가 겪었던 많은 불편감을 다음 세대엔 물려주지 않고, 그들은 가능한 한 아예 몰랐으면 한다. 모두가 오롯이 자신의 몫을 누려, 작가의 "내 물건은 언제나 헌 거, 그래서 내 마음은 아직도 헝거Hunger"에 공감하는 사람이 없어지길(?) 바라본다. 장녀든 차녀든 삼녀든 사녀든 모두 사랑받아 마땅한, 오롯한 존재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