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샤일록의 아이들
이케이도 준 지음, 민경욱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2년 5월
평점 :
《샤일록의 아이들》은 50년 전통을 자랑하는, 도쿄제일은행 나가하라 지점에서 일어나는 10가지 사건에 대한 10편의 연작 단편집이다. 고졸사원으로 입사해 부지점장까지 오른 후루카와 가즈오의 이야기로 첫 챕터가 시작된다.
의미 따윈 잊은 채 온 힘을 다해 목표달성만을 위해 뛰는 게 후루카와의 '라떼(나때)'의 암묵적 룰이었는데, 까마득한 후배 고야마 도오루가 반기를 들며 신경을 거스른다. 승진으로 가는 지름길이나 마찬가지인 연수날 '하필이면' 과로로 몸져 누워 불참하게 되면서 승진에서 2년째 물 먹는 중인 도모노 히로시도 '또 하필이면' 후루카와네 지점으로 발령이 나, 여러모로 후루카와의 신경을 거스른다.
이들 외에도 나가하라 지점에는 많은 직원들이 있다. 가세가 기울어 어머니와 두 동생을 부양하느라 자린고비로 살아가다 100만 엔을 훔쳤다는 누명을 쓴 영업과 기타가와 아이리, 승승장구하며 계속 실적을 올리고 있는 업무과 다키노 마코토, 신규 고객 유치에 계속해서 실패하면서 결국 정신줄을 놓아버린 업무과 엔도 다쿠지, 실없는 농담을 일삼고 후배들에게만큼은 따뜻하지만 사실은 가슴 아픈 사연으로 한직을 떠돌아온 니시키 마사히로, 야구선구 출신으로 '을 채용'돼 일하는 다케모토 나오키, 외국계 금융기관 입사가 거의 내정되자 '이젠 할 말은 하자' 싶어진 융자과 다바타 요지, 남편을 잃고 딸과 둘이 살아가는 가와노 하루코까지. 도쿄제일은행과 관련된 인물들이 한 챕터씩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10개의 챕터는 각각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데, 전체를 관통하는 큰 사건(100만 엔이 사라진 사건)이 생기며 지점 전체는 혼란에 휩싸이고, 여기에 은행 본점 감사부에서 나온 구로다 미치히로까지 엮이며 사건은 해결은커녕 미궁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챕터마다 주인공도, 주요 인물도 다르지만 모두가 유기적으로 얽혀 있는 인물들이란 점이 흥미롭다. 이어지지 않을 듯 이어지는 오묘한 연결고리를 발견한 느낌! 책을 날것 그대로 받아들이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 제목이 무슨 뜻인지 모르고 읽었는데, 알고 보니 ‘샤일록’은 셰익스피어 희곡에 나오는 악덕 고리대금업자의 이름이었다. 모르고 볼 땐 '무슨 말이야?' 싶었는데, 사실은 은행 직원을 현대판 고리대금업자로 빗댄 작가의 센스가 돋보이는 제목이었다.
융자과 다바타는 '희한하게도 출세나 승진 같은 것과 관련이 없는 사람일수록 매력적이고 따뜻했다'고 말한다. 매력적이고 따뜻한 사람이 반드시 좋고 옳은 사람일까? 올곧아보이는 사람이 반드시 옳은 일만 할까? 다양한 인간군상을 보여주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했던 흥미로운 소설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