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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선
장선우 지음, 장서윤 그림 / 달그림 / 2023년 2월
평점 :
세상은 경계에 머무른다
경계는 조화롭다
모든 생명체는 그저 존재할 뿐인데 그중 자신을 그리고 시공간의 개념을 규정하려는 것은 오직 인간뿐입니다. 인간의 언어로만 정의가 가능하기에 시공간의 개념은 어쩌면 인간이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일 것입니다. 그러나 시작은 필요에 의해 세워졌던 틀이 지나치게 견고해져 양식이 존재를 앞서나갈 때, 사람은 틀과 틀이 부딪히는 경계에서 길을 잃고야 맙니다. 이렇게 어느 편으로 온전히 넘어가기에는 모호하거나 혹은 복잡해서 보이지 않는 길을 찾는 이들을 위해 장선우와 장서윤 작가가 풀어놓은 이야기, [경계선]. 두 사람이 주목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완행열차를 타고 떠나는 사색 여행과도 같은 책
이 책의 앞표지에는 "'나'를 찾아 헤매는 지금, 당신의 이야기"라는 문구가, 뒤표지에는 "분명하게 나뉘지 않는 세상 속에서 경계에 머무는 우리의 고민을 담다"라는 문구가 새겨있습니다. 두 문장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듯, 이 작품은 존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작가의 시선은 경계 위에 놓여있는 존재의 실존, 선 너머 여기에서 저기로 넘나드는 에너지의 흐름에 주목합니다. 그리고 독자들에게 독백을 가장한 생각거리를 건넵니다. 그림책의 외양을 하고서 선문답과 같은 질문을 툭툭 던지는 통에 독자는 책장을 넘기는 시간이 제법 오래 걸릴 수밖에 없지요. 질문마다 답이 똑떨어지지 않으니 생각할 것이 많은 탓입니다. 그렇게 고민하기를 작가는 바랐을 것입니다.
다채로우면서도 부드럽게 톤 다운되어 혼란스럽지 않은 색채의 삽화 역시 한두 문장으로 이뤄져 짧지만 쉬 대답할 수 없는 의문형의 지문과 자연스럽게 어울립니다. 섬세한 듯하면서도 세련된 방식으로 간결화된 그림체는 독자의 사색을 돕습니다. 촘촘하고 단정한 가는 선들이 층을 이루어 겹겹이 쌓인 지층의 단면 같기도 하고, 잎의 맥 같기도 합니다. 선을 덮는 선과 면으로 채워진 지면은 문명사회에서 수차례 규정하고 강제하며 가르고 그어놓은 '상식'과 '양식'이라는 이름의 규칙들 같기도, 적당히 느슨하면서도 중간중간 교차점이 존재하는 현대사회의 관계망을 그려놓은 듯싶기도 합니다. 종으로 또는 횡으로 차곡차곡 쌓아 올려진 채색된 면이 한편으로는 누군가의 살아온 시간의 궤적으로도 느껴집니다. 그런 배경 위에 나일 수도 여러분일 수도 또는 누구라도 될 터인 여러 나이 대의 인물들이 나붓이 올려져 있습니다. 특정되지 않는 인물들의 실루엣을 책장 사이사이 눈으로 좇으며 어느 사이 자신의 내면과 접촉하게 되지요. 이렇듯 아름다운 책 [경계선]은 장마다 독자들이 자신을, 지난 시간을, 모든 인연을 차분히 되짚어 보도록 안내하기에 마치 완행열차를 타고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마음에 담으며 사색 여행을 즐기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얇은 이 한 권의 그림책을 마지막 장까지 넘겨 덮고 고개를 드는 여러분의 얼굴빛은 홀가분한 듯 요요할 것입니다.
나는 경계에 있다.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없다.
당신에게 경계란 어떤 의미일까
경계라는 단어에서 여러분은 어떤 감정을 느끼시는지요. 당신의 내면에서 일어난 정서는 아마도 안정감이나 견고함보다는 긴장감 또는 의구심에 가까울 것입니다. 인간은 설명되고 이해되지 않는 것을 거리낍니다. 또한 특정의 안정감을 보장하는 집단에 소속되기를 갈망합니다. 그런데 경계는 그 두 가지가 부족한 지점이지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영역과 영역이 맞닿아 있는 중간지대로서 변화의 가능성을 품고 있어 '생장점'과 같은 느낌 역시 있습니다. 두 욕심이 충돌하고 서로 잡아당기니 사람이라면 혼란스러워 어찌할 바를 모르니 긴장하고 의심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자들은 이렇게 속삭여줍니다. '세상은 경계에 머무르고 사람은 경계에 있다' 그러니 경계에 걸쳐지지 않은 것은 없다고. 모든 것이 그렇기 존재하기에 실존의 방식은 경계 위에 얹혀 있기에 "경계는 조화롭다"라고 말이지요.
대부분의 사람은 생애 발달 단계마다 어딘가에 소속되기를 열망하며 머무르고자 합니다. 반면 우리는 끝없이 스스로에게 되묻고 무엇인가를 향해 나아가고자 하지요. 인간은 살아있기에 정체되지 않습니다. 그러한 모순된 모습조차, 경계선 위에 자리한 실존의 형태로 느껴집니다. 그러나 그저 갈등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경계선] 책이 전하듯 우리의 헤매는 모습에는 지향점이 있어 긍정적입니다. "어디에든 속할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기에 경계가 위협이 아닌 조화일 수 있습니다.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욕구에서조차 일정한 방향성과 흐름을 상정했답니다. 매슬로우 Abraham Harold Maslow (1908~1970)는 인간의 욕구를 5단계로 나누어 설명했어요. 그의 피라미드 형태 욕구 모델에서 가장 낮은 단계는 생리적 욕구이며, 가장 높은 것은 자아실현의 욕구입니다. 그의 욕구 위계 이론에 따르면 모든 이는 낮은 욕구에서 시작해 점차 높은 단계의 것을 실현하려는 모습을 보이지요.
누군가에 의하면 이 세계마저 일정한 방향으로 변화하길 원합니다. 로저스 Carl Ransom Rogers는 자신의 이론에서 세계의 생장 경향성을 인간의 성장 가능성의 바깥쪽에 덧대어 '사람은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고 긍정적으로 변화할 내적 힘이 있다'라는 주장의 견고한 지지대로 삼았죠. 생장 경향성 이론은 신트로피 Syntropy 법칙과 같습니다. 즉 세상은 생성되고 번성하려는 성향을 지녔고 이를 위해 끊임없이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인간 역시 세계의 일부이기에 안정을 갈구하면서도 이 영역에서 저 영역으로 건너가지 않고는 못 배기는 성향을 필연적으로 지닌 게지요. 그렇기에 사람은 경계 위의 사람에게 끝없이 질문합니다. 너는 어디에 속했고 너는 누구이며 너의 것은 무엇이냐고. 긴장감에 눌려 급히 어느 한편으로 뛰어들어가 숨지 않을 용기가 우리에게 있다면 어느 순간 생장점에서 푸릇한 가지와 잎이 움틀 거예요. 시간이 절대 멈추지 않아 현재를 사는 우리는 단 한순간도 현재에 머무른 적이 없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 그 현재는 과거가 되어버리니까요. 고민과 질문을 멈추지 않는 여러분은 누구보다 충실하게 미래를 살고 있는 겁니다.
뭐하나 딱 떨어지지 않아 갑갑하고 마음 아픈 당신에게 이 책을 권합니다. 당신은 이미 미래를 향해 달리고 있으니 사색 가득한 그림책 에세이 [경계선]과 함께 잠시 내면을 관조하는 완행 기차 여행을 떠나보시지요.
※ 이 책은 서평단으로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솔직하고 정성스럽게 작성한 후기임을 알립니다.
좋고 싫음과 맞고 틀림. 취향의 경계는 어디쯤일까.
세상은 경계에 머무른다. 머리, 몸통, 팔, 다리처럼 분명하게 나뉘지는 않는다.
나는 경계에 있다.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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