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이처럼 급작스런 사고를 '뇌일혈'이라 불렀으며, 한번 걸렸다 하면 백발백중 죽는 병이었다. 그러다가 요즘에 와서는 소생 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상황이 더 복잡해졌다. 죽지는 않지만, 몸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마비된 상태에서 의식은 정상적으로 유지됨으로써 마치 환자가 내부로부터 감금당한 상태, 즉 영미 계통의 의사들이 '로크드 인 신드롬(locked-in syndrome)'이라고 표현한 상태가 지속된다. 왼쪽 눈꺼풀을 깜박이는 것만이 유일한 의사소통 수단이다.


바야흐로 의식은 시작되었다. 두 명의 건장한 사나이가 내 어깨와 발을 잡더니, 침대에서 들어올려 되는 대로 바퀴의자에 내려놓았다. 수습 투우사가 그 서임식을 마치면 정식 투우사가 되듯이, 이제 나는 단순한 환자에서 완벽한 장애인이 된 셈이다. 


이 지옥같이 끔찍한 병에 걸릴 확률은 복권에 일등으로 당첨될 확률만큼이나 희박하다. 


지금 현재로서는 끊임없이 입 속에 과다하게 고이다 못해 입 밖으로 흘러내리는 침을 정상적으로 삼킬 수만 있다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된 기분일 것 같다.


주위의 친지들이 여행을 다녀올 때마다 하나씩 둘씩 가져다 준 우정어린 처방이 기념비라도 세울만큼 쌓였다. 이들은 어느곳엘 가든지, 나를 위해 온갖 정령들에게 가호를 빌었을 것이다. ... 다양한 신들의 철통 같은 보호막도, 내 딸 셀레스트가 밤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에 비한다면 한낱 종이벽에 불과하다. 그 아이와 내가 잠드는 시간이 거의 일치하므로, 나는 밤마다 나를 악몽으로부터 지켜 주는 신비스런 기도 소리와 더불어 꿈의 나라로 향한다.


E S A R I N T U L O M D P C F B V H G J Q Z Y X K W

얼핏 보기에는 무질서해 보이는 이 글자 행렬은, 하지만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치밀하고 복잡한 계산의 결과이다. 따라서 단순한 알파벳이라고 하기보다는 프랑스어에서 사용되는 빈도에 따라 철자를 배치한, 이를테면 글자들의 빌보드 차트라고 할 수 있다. ...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ESA...  로 된 알파벳표를 내게 펼쳐 보이면, 나는 내가 원하는 글자에서 눈을 깜박인다. 상대방은 그 글자를 받아 적으면 된다. 


지난 8개월 동안 내가 먹은 것이라고는 레몬을 탄 물 몇 방울과 요구르트 반 숟가락이 고작이었으나, 그것마저도 기관지로 잘못 넘어가 애를 먹었다. ... 위와 연결된 존데를 통해 투여되는 두세 병 분량의 갈색 물질이 나의 하루분 필요 열량을 충당해 준다. 다만 감각적 즐거움을 위해서라면 머릿속에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는 맛과 냄새에 대한 기억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


상드린느의 하얀 가운에 달려 있는 명찰에는 언어장애치료사라고 적혀 있지만, 수호천사라고 읽는 편이 더 잘 어울린다. 내게 의사소통 체계를 마련해 준 사람이 바로 상드린느이니, 그녀가 아니었다면 나는 벌써 오래전에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격리되었을 것이다. ... 하루에 두 번 상드린느가 병실 문 안으로 들어와서는, 미안함을 감추지 못하는 어린아이의 표정의로 모든 불편함을 대번에 해소시켜 줄 때 느끼는 위안감은 말로 이루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내 몸을 항상 옥죄고 있는 보이지 않는 잠수종이 어느 정도 느슨하게 풀어지는 느낌이다.


나는 나의 의지와는 전혀 관계 없이 베르크의 휴양지를 떠나지 못하게 되었고,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아흔두 살이라는 고령때문에 아버지의 아파트 계단도 못 내려오실 형편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둘 다 '로크드 인 신드롬' 환자인 셈이다. 나는 마비된 내 몸 속에 갇혔고, 아버지는 4층 계단 때문에 발목이 묶이셨다.


아무도 없는데, 음식물 섭취를 조정하는 기구의 경보장치가 30분 전부터 계속해서 울려댄다. 머리를 갉아먹는 듯한 이 끈질긴 삑삑 소리만큼 바보스럽고 절망적인 것이 또 있을까. 게다가 내 오른쪽 눈꺼풀을 봉해 놓았던 반창고가 땀 때문에 떨어져, 반창고에 붙은 속눈썹이 고통스럽게 내 동공을 찔러댄다. 설상가상으로 소변 배설 존데의 접속관이 빠지는 바람에, 나는 완전히 오줌벼락을 맞고 말았다.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면서, 나는 앙리 살바도르가 부른 옛 노래의 후렴을 계속해서 흥얼거렸다. "어서와요, 베이비. 이런 일쯤은 별거 아니죠."


탁구공처럼 재빨리 되받아치는 재치 있는 말을 구사할 수 없는 것이, 내가 처한 상태가 가져다 주는 불편한 점 중의 하나이다.


내 아들 테오필 녀석은 50센티미터밖에 안 되는 거리를 두고 얌전히 앉아 있는데, 나는 그 아이의 아빠이면서도 손으로 녀석의 숱한 머리털 한번 쓸어 줄 수도, 고운 솜털로 뒤덮인 아이의 목덜미를 만져 볼 수도, 또 부드럽고 따뜻한 아이의 작은 몸을 으스러지도록 안아 줄 수도 없다. 


햇빛이 창으로 하나 가득 들어온다. 눈부신 석양의 빛줄기가 정확하게 내 침대 머리맡에 와닿는 시간이다. 가족들의 출발에만 마음 졸이다가 커튼을 쳐달라고 부탁하는 걸 그만 잊었다. 세상이 끝나기 전까지는 간호사라도 와 주겠지.


나는 점점 멀어진다. 아주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멀어지고 있다. 항해중인 선원이 자신이 방금 떠나온 해안선이 시야에서 사라져 가는 광경을 바라보듯이, 나는 나의 과거가 점점 희미해져 감을 느낀다. 예전의 삶은 아직도 나의 내부에서 불타오르고 있지만 점차 추억의 재가 되어 버린다.


소동이 가라앉고 다시 침묵이 찾아오면, 나는 비로소 내 머릿속에서 팔랑팔랑 날아다니는 나비들의 움직임에 귀를 기울일 수 있다. 나비의 날갯짓은 아주 미세하기 때문에, 이를 감지하기 위해서는 명상에 가까운 주의력이 필요하다. 숨소리가 조금만 커져도 그 소리에 파묻혀 버릴 정도이다. 어찌 보면 매우 놀라운 일이다. 내 청각은 향상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비 소리를 점점 더 잘 듣게 된다. 어쩌면 내가 나비의 귀를 가졌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창가에 쌓인 책들을 바라본다. 오늘은 아무도 나에게 책을 읽어 줄 사람이 없으니, 그저 쓸모없는 도서관처럼 여겨진다. 세네카, 졸라, 샤토브리아, 발레리 라르보가 겨우 1미터밖에 안 되는 거리에 있지만 가혹하게도 나는 가까이 갈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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