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기억하게 되는 것은, 실제로 본 것과 언제나 똑같지는 않은 법이다.


시간에 박차를 가하는 감정이 있고, 한편으로 그것을 더디게 하는 감정이 있다. 


실제 사건들에 대해 더 큰 확신을 가질 순 없어도, 최소한 그런 일들이 남긴 인상에 대해서만은 정직해질 수 있을 것이다. 


진정한 무지가 갖는 독창성


우리 부모는 우리가 서로서로 나쁜 것만 배우다가... 아무튼 당신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온갖 것이 돼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 그들의 노심초사는 우리의 경험을 얼마나 까마득하게 앞서 있었던가.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 - 파트리크 라그랑주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경청하게 하려면 언성을 높이는 게 아니라 낮추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었다. 그래야 진짜로 이목을 끌 수 있게 된다.


"걘 너무 똑똑했어. 사람이 그 정도로 똑똑하면 세상 모든 걸 다 따지고 들 만하거든. 상식 같은 건 뒷전에 버리고 말이야."


감상에 젖은 마거릿이 다시 합쳐볼 수도 있지 않겠냐고 운을 뗀 적이 있었다. 더한 일도 겪어봤잖아. 그녀가 말하기론 그랬다. 과연 그랬지만 난 이제 내 식대로 사는 데 익숙해졌고, 고독을 즐기게 되었다. 


혼자 살다보면 자기 연민과 망상에 시달릴 때가 있다.


마거릿을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살짝 이상한 짓을 했다. 내 인생사에서 베로니카를 빼버린 것이다. ... 선을 긋고 다시 시작했다. ... 나는 베로니카와 사귄 것을 .. 기록에서 삭제해버렸다. 편지도 보관하지 않았고.. 


나는 얼굴을 붉혔다. 예순 살의 대머리 남자가 얼굴을 붉히는 걸 본 적이 없다고? 이런, 그들도 얼굴을 붉힌다. 더벅머리에 여드름 가득한 열다섯 살 소년과 똑같이. 


그러나 시간이란 처음에는 멍석을 깔아줬다가 다음 순간 우리의 무릎을 꺾는다. 자신이 성숙했다고 생각했을 때 우리는 그저 무탈했을 뿐이었다. 우리가 현실주의라 칭한 것은 결국 삶에 맞서기보다는 회피하는 법에 지나지 않았다. 시간이란 우리에게 넉넉한 시간이 주어지면, 결국 최대한의 든든한 지원을 받았던 우리의 결정은 갈피를 못 잡게 되고, 확실했던 것들은 종잡을 수 없어지고 만다.


우리는 살면서 우리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얼마나 자주 할까. 그러면서 얼마나 가감하고, 윤색하고, 교묘히 가지를 쳐내는 걸까. 그러나 살아온 날이 길어질수록, 우리의 이야기에 제동을 걸고, 우리의 삶이 실제 우리가 산 삶과 다르며, 다만 이제까지 우리 스스로에게 들려준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우리에게 반기를 드는 사람도 적어진다. 타인에게 얘기했다 해도, 결국은 주로 우리 자신에게 얘기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우연의 연속 안에서 인간이 실제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자주, 전혀 의도하지 않은 것이 한 인간과 그 주변의 운명을 좌지우지하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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