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권태를 모른다


여행 가방을 쌀 때 사람은 실용성에 지나치게 얽매이고 실용성을 지나치게 염려하게 된다. 그런데 바로 그런 '실용성'을 목적으로 하는 물건들은 사실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런 물건은 어디서나 구입이 가능하며 어디에서 구입하건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용성과 무관한 것들, 개인의 취향에 따라 신중하게 선별된 물건이야 말로 여행 가방을 가치 있고 흥미롭게 만든다. 하나의 부적, 박제된 새, 한 뭉치의 오래된 편지...


여행의 서정은 일상의 단조로움, 일과 스트레스를 벗어나 휴식을 취하는 데 있지 않다. ... 여행의 서정은 경험에 있다. 그것은 더욱 풍요로워지는 것, 새로운 획득물을 내 안에 유기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다양성 속의 조화를 이해하고 대지와 인류라는 거대한 조직을 이해하는 것, 옛 진리와 법칙을 완전히 새로운 시각 안에서 재발견하는 데 있다. ... 여행하면서 휴식하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없다.


세계는 더욱 아름다워졌다. 나는 혼자지만, 혼자라는 사실을 괴로워하지 않는다. 나는 더 이상 아무 것도 소망하지 않는다. 가만히 누워, 햇빛에 온몸이 빨갛게 익도록 내버려 둘 뿐이다. 익을 대로 익어서 성숙해지기를 열망할 뿐이다. 나는 죽음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다. 그리고 다시 태어날 준비 또한 되어 있다. 세계는 더욱 아름다워졌다. 


이 작별의 순간 나는 더욱 깊은 애정으로 고향의 것들을 다시 한 번 더 사랑한다. ... 사랑의 편지에서 흔히 쓰이는 문구와는 달리, 나는 내 마음을 이곳에 두고 떠나지 않는다. 절대로 아니다, 나는 마음을 갖고 길을 떠난다. 산 너머 저 먼 땅에 가서 살 때도 나는 마음이 필요하다. 


나는 내가 아닌 것이 되려고 했다. 시인이 되기를 꿈꾸었으면서도 시민의 삶 또한 차지하고 싶어했다. 예술가이자 환상의 숭배자가 되기를 원했으면서도 덕망의 삶, 안주의 삶을 누리려고 했다. 나는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사람은 두 가지를 모두 가질 수 없음을 깨달았다. 


훌륭한 책은 멸종하지 않는다.


"지금처럼 사는 것도 전혀 힘들지 않아. 먹는 것과 마시는 것, 승마와 요트, 그게 도대체 뭐가 중요한가? 약간의 철학만 갖춘다면 그 모두가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임을, 그냥 하찮은 껍데기에 불과함을 쉽게 알 수 있는데 말이야. 

... 

나는 사람의 일생에 단 한 번만 찾아오는, 그런 유일한 감정으로서의 사랑을 얘기하는 거야. 그런 사랑은 고독하지. 설사 그 사랑이 흔히 하는 말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말이야. 그런 사랑에 빠지면 사람은 모든 욕망과 재산을 다 바쳐서 열정적으로 오직 하나의 목표만을 향해서 활활 타오르게 돼. 모든 희생이 그대로 쾌락 자체가 되어 버리는거야."


분명히 경험했던 일이 어느 순간 생소하게 변하면서 기억에서 사라져 버릴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기이한 현상이 아닌가! 그리하여 수많은 경험들로 이루어진 몇 년이란 시간도, 마치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이 완전히 망각되어 버리기도 한다.


"사랑에 빠진 자는, 그것도 일생에 한 번 뿐인 유일한 사랑이라면, 그러면 누구나 시인이 되는 거잖아요. 사랑하는 여인의 미소를 한 번 얻기 위해, 혹은 윙크를 얻기 위해 영웅이 되는 거잖아요. 설사 그가 쓴 시가 아주 뛰어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매우 뜨겁고 정열적이긴 할 테니까." ...

"당신은 나와 마찬가지로 그리움을 갖고 있습니다. 당신이 갈망하는 것은 어떤 한 명의 애인이 아닙니다. 그건 사랑이에요. 맹목적으로 무조건적으로 빠져드는 그런 사랑 자체"


그녀는 그날 밤 잠들지 못했다. 남편이 그녀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그녀는 알았다. 그것을 일생동안 견딜 수 있기를 그녀는 소망했다.


강은 깊었는데 얼음은 참으로 투명하여, 마치 엷은 유리창을 통해 보는 것처럼 초록색 물속이 완전히 들여다보이는 것이었다.


나는 타고난 바람둥이이며, 내가 사랑하는 것은 어느 한 여인이 아니라 사랑 그 자체일 뿐. ... 우리 방랑자는 사랑의 욕망이 충족되지 않기 때문에 더더욱 사랑을 피워 올리는 일에 익숙하며, 원래는 여인에게 바쳐야 할 사랑을 마을과 산, 호수와 계곡에, 길가의 아이들에게, 다리 아래의 걸인에게, 풀을 뜯는 소에게, 새에게 그리고 나비에게 놀이하듯 나누어 주는 것에 익숙하다. 우리는 사랑을 대상으로부터 분리해 낸다. 우리는 사랑 자체만 있으면 충분하다.


그런데 실상은 이렇다. 내가 시민적인 원칙을 벗어나면 벗어날수록 나 자신이 정한 원칙은 더더욱 강해진다.


신문을 읽지 않는다. ... 나는 정치나 스포츠, 경제 분야에 흥미가 없고, 더구나 몇 년 전부터는 세계가 또다시 전쟁을 향해 치닫고 있는 모습을 매일매일 무력하게 들여다보는 일이 도저히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몸을 던졌다! 물속으로, 죽음 속으로 그는 몸을 던졌지만,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뿐이어서 불가피하게 선택한 건 아니었다. 죽음 속으로 몸을 던진 것처럼 삶을 향해서 몸을 던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의 행동 자체는 별 의미가 없고, 심지어 중요하지도 않다. 그는 살게 될 것이고, 다시 돌아오게 될 것이다. 그러면 더 이상 자살이 필요없게 된다. ... 그는 두려움을 극복한 상태일 테니까.


실제로 인간이 두려워하는 것은 오직 하나뿐이다. 스스로 몸을 던지는 일, 불확실함을 향해서 허공에 발을 내딛는 일, 단단한 토대 위에 자리 잡은 모든 확실성의 경계 너머로 걸어 나가는 일이다. 그런 일을 한 번이라도, 정말이지 오직 단 한 번이라도 감행해 본 사람, 운명에게 결정권을 넘겨주고 모든 것을 하늘에 홀연히 맡긴 채 미지의 길로 나아갔던 사람은 자유를 얻었다. 


함께 살지 못하면 정말로 삶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그런 여자는 세상에 없었다. 마찬가지로 함께 사는 것이 완전히 불가능한 그런 여자 또한 없었다.


외부에는 안식이 없었다. ... 그러나 인간은 자기 자신의 내부에서 다른 종류의 안식을 찾을 수 있었다. 그 방법은 곧, 자신을 내던지는 것이다. 자신을 내던져라! 방어하려고 하지 마라! 기꺼이 죽어라! 그리고 기꺼이 살아라!


시간에 관한한 그들은 모두 백만장자이다. 마치 바닥이 없는 우물에서 물을 퍼 올리듯 시간을 길어 올린다. 그러므로 한 시간, 하루, 한 주일 정도를 허비하는 것을 전혀 개의치 않는다. ... 우리 불쌍한 서구인들은 시간을 잘게, 더욱 잘게 쪼개 버린 후 그 작은 조각 하나하나에 동전 한 닢의 값어치를 매겼다. 


나는 만사를 체념한 방관자의 마음이 되었다. ... 몇 시간이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가능해졌다. 주변의 극히 사소해 보이는 사물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면서 말이다.


학교에서 완전히 쫓겨난 열다섯 살에, 나는 단단히 마음먹고 열성적인 독학을 시작했다. 할아버지가 물려준 엄청난 분량의 장서를 아버지가 그대로 갖고 있었다는 것은 내게는 큰 행운이자 기쁨이었다. 


누구든 성숙하고 충만해지기 위해서는 자신을 최대한 완성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너 자신이 되라'는 이 법칙은 적어도 젊은이들에게는 모범이자 이상인 셈이죠. 진리와 발전을 이루는 다른 길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삶을 인정하면 인정할수록, 외부에서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과 내면의 우리 자신이 일치하면 할수록, 우리는 그만큼 더 강해집니다.


사람은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하고, 가만히 들을 줄 알아야 하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하며, 꿈꿀 줄 알아야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생각 때문에 불안에 빠지는 저녁마다, 그렇게 나무는 술렁인다. 우리보다 훨씬 더 오랜 삶을 살아가는 나무는, 생각이 길고 호흡은 느리며 고요하다. 우리가 나무에게 귀 기울이지 않는 한, 나무는 우리보다 지혜롭다. 하지만 우리가 나무의 목소리를 들을 줄 알게 되면, 그때 어린아이처럼 부족하고 조급하고 경솔했던 우리의 생각은 무엇과도 비할 바 없는 큰 기쁨을 얻는다. 나무의 소리를 듣게 된 자들은 이제 더 이상 나무가 되기를 열망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 이외의 그 어떤 것도 되기를 열망하지 않는다.


'경탄하기 위해서 나는 존재한다!' 괴테의 시 구절이다.


고대 중국의 시:

한 사람이 늙고, 그의 일을 모두 행하였다면

고요 속에서 죽음과 벗할 순간이 다가왔음이라

그는 더 이상 인간이 그립지 않도다, 그는 인간을 알고,

이미 충분히 보아 왔으니

이제 그리운 것은 오직 고요일 뿐,

그런 사람을 찾아가고, 그런 사람에게 말을 걸며, 그런 사람을 말로 괴롭히는 일은

점잖음이 아니니

그의 집 앞에서는 그냥 조용히 지나가리라

그 누구의 집도 아닌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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