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음의 저편, 이제껏 외면하고 있던 마음 한 켠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그곳에는 쏟아내지 못한 수많은 말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그런 내게 시낭송은 눈부신 '부활'의 시간을 선사했다. 큰 목소리로 시를 한 편씩 읽어나가는 동안 여태까지 잊고 있던 내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되었고, 내 마음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것 같은 시와 만날 때마다 단단하게 꼬여 있는 감정의 매듭들이 스르르 녹아 내렸다. 시낭송은 그렇게 내 마음속 깊은 우물에 고여있던 온갖 상처와 아픔들을 길어 올렸다.


어린 면에 시절에 경험했던 상처와 스트레스들이 해소되지 않고 남아 있으면, 그것은 잠재의식으로 내려가 기억의 창고에 보관된다. 그러다가 어느 한순간 예전의 경험과 유사한 상황에 맞닥뜨리게 될 때, 그동안 억압되어 있던 감정들이 분출되면서 과민반응을 하게 된다. 지금 '이 일' 때문에 화가 나는 게 아니라, 과거의 '그 일'로 인해 상처 입은 기억의 뚜껑이 열려버리는 것이다. 일단 그렇게 문이 열리면 그동안 억눌려 있던 모든 분노가 현재의 일과 합해져서 엄청난 폭발을 일으킨다.


영국 다이애나 황태자비가 죽었을 때 비탄에 잠긴 영국 국민들이 눈물로 애도를 한 후, 우울증 환자가 평소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심리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두고 '다이애나 효과'라고 부른다. 우울하고 가슴이 무거운 이유는 내면에 눈물이 고여 있기 때문이다. ... 울고 싶을 땐 울어라. 참으려고 안간힘 쓰지 마라. 우아하게 소리 없이 눈물만 뚝뚝 떨어뜨리지도 마라. 고여 있는 것은 퍼내야 된다. 울고 싶을 땐 큰 소리로 엉엉 목 놓아 울어라. 실컷 울고 나면 울음이 조금씩 잦아들면서 마음은 서서히 평안을 되찾아갈 것이다. 가슴속에 들끊던 모든 슬픔의 찌꺼기들이 눈물이라는 맑은 강을 타고 흘러가버린다.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 정채봉


하늘나라에 가 계시는

엄마가

하루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아니 아니 아니 아니

반나절 반시간도 안 된다면

단 5분

그래, 5분만 온대도 나는

원이 없겠다


얼른 엄마 품속에 들어가

엄마와 눈맞춤을 하고

젖가슴을 만지고

그리고 한 번만이라도

엄마!

하고 소리내어 불러보고

숨겨놓은 세상사 중

딱 한 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


내 삶은 내 말로 지어가는 집과도 같다. 말은 우리 삶의 순간순간을 만들어나가고, 우리의 몸과 마음을 지배한다. ... 에밀리 디킨슨도 이러한 '말의 힘'을 분명히 자각하고 있었던 듯 하다. 그는 이렇게 썼다. '어떤 이들은 말한다./ 말은 입 밖에 나오는 순간 죽는다고./ 나는 말한다./ 말은 바로 그날 살기 시작한다고.' ... 움베르토 마투라나라는 신경과학 연구자는 "우리가 말을 통제하는 게 아니라 말이 우리를 통제한다"고 했다. 자신의 인생이 항상 꼬이기만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자신의 언어습관을 유심히 관찰해보기 바란다. 혹시 자신이 즐겨 쓰던 말대로 인생이 흘러가고 있는지 않는지 말이다.


말의 힘 - 황인숙


기분 좋은 말을 생각해보자.

파랗다. 하얗다. 깨끗하다. 싱그럽다.

신선하다. 짜릿하다. 후련하다.

기분 좋은 말을 소리내보자.

시원하다. 달콤하다. 아늑하다. 아이스크림.

얼음. 바람. 아아아. 사랑하는. 소중한. 달린다.

비!

머릿속에 가득 기분 좋은

느낌표를 밟아보자.

느낌표들을 밟아보자. 만져보자. 핥아보자.

깨물어보자. 맞아보자. 터뜨려보자.


혼자만 간직하고 있던 비밀을 남들 앞에서 소리 내어 말하게 되면, 꽁꽁 묶여 있던 마음의 끈이 스스르 풀리면서 그 상황을 박차고 나올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어둡던 죄의식으로부터 해방감을 느끼는 것이다. 비밀이란 원래 마음속 깊이 숨겨놓을수록 더 무거워지는 법이다. 마음의 빗장을 풀어 솔직한 자아를 드러내고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끄집어내야 치료 방법을 찾을 수 있다. 누구에게도 말 못할 비밀을 입 밖으로 내어 이야기하는 사이, 어느덧 그 비밀의 통제력에서 벗어날 수 있다. 


마음에 울림을 주는 시, 심장을 관통하는 시를 만나본 적이 있는가? 그것은 가슴속에 단단하게 얼어붙은 차가운 불덩이가 쨍하고 깨지는 일이다. 그렇게 벼락처럼 파고든 시는 오랫동안 뒤돌아 웅크리고 있던 슬픔의 등을 가만히 다독이고, 깊고 검은 우물 같던 어둡고 쓸쓸한 상처가 내 안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위로한다. 내면을 뒤흔드는 타인의 고백은, 형체 없이 안개처럼 떠돌던 나의 아픔과 고통의 실체를 인식하게 하고 어둠 속을 헤쳐 나올 수 있도록 손을 내민다. ... 따뜻한 공감과 위로가 마치 수혈을 받는 것처럼 핏속으로 가만히 흘러들어오는 것 만 같다.


실패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다시는 사랑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헨리 소로우는 말했다. "사랑을 치유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더 많이 사랑하는 것" 이라고. ... 논어에 보면 '애기욕기생'이란 말이 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그 사람을 살게끔 한다는 뜻이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원망하는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은 그 자체로 엄청난 고통이다. 거기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 모두를 깨끗이 잊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선 먼저 그를 용서해야 한다. ... 자신의 감정이 '정당한 분노'라는 생각에서부터 한발 물러서야 한다. 상대방의 의도가 그런 것은 아니었겠지 하는 아량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상처는 결국 내가 만드는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자. 바로 그런 마음이 자신을 세상의 온갖 상처로부터 보호해줄 것이다.


인생이란 어딘가에 반전을 준비해두고 우리를 기다린다. 생각지도 못했던 어느 한순간, 실패의 시간들이 든든한 발판으로 바뀌는 때가 찾아오는 것이다. 이때가 바로 위태롭던 인생의 균형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다. ... "끝나기 전에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라고 한 미국의 전설적인 야구 선수 요기 베라의 말을 되새겨본다.


너의 하늘을 보아 - 박노해


네가 자꾸 쓰러지는 것은

네가 꼭 이룰 것이 있기 때문이야


네가 지금 길을 잃어버린 것은

네가 가야만할 길이 있기 때문이야


네가 다시 울며 가는 것은

네가 꽃피워 낼 것이 있기 때문이야


힘들고 앞이 안 보일 때는

너의 하늘을 보아


네가 하늘처럼 생각하는

너를 하늘처럼 바라보는


너무 힘들어 눈물이 흐를 때는

가만히 네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가 닿는


너의 하늘을 보아


사랑은 철저하게 현실적인 자각 속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연인들은 연인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사랑하는 것이다." 라고 한 드니 드 루주몽의 말처럼, 상대의 실체를 보려 하지 않고 상상 속에서 꿈꾸어온 사랑의 환상에만 빠져 있으면 그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을 잃어버리고 만다.


결혼에 대하여 - 칼릴 지브란 <예언자>


그러나 그대들이 함께 있을 때는 거리를 두라

창공의 바람이 그대들 사이에서 춤을 추도록 

서로 사랑하되 사랑에 구속되지는 말아라

그대들 영혼의 기슭 사이에 출렁거리는 바다를 두라

서로의 정을 가득 채우되 어느 한 편의 잔만을 마시지 말라

서로의 빵을 나누어 주되 어느 한 편의 빵만을 먹지 말라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워하되 그대들 각자는 고독에 잠기도록 하라

비록 같은 가락을 울릴지라도 류트의 줄은 외로운 법

서로의 마음을 주라, 그러나 서로를 마음속에 묶어두지는 말라


삶의 기둥은 자기 자신이어야 한다. 연인이나 가족도 다 내가 아니고 타인이다.


파스칼은 '인간의 마음에는 구멍이 있다'고 했다.


바람을 피우는 남자들이 젊은 여자를 좋아하는 이유가, 감탄을 많이 하기 때문이라는 어느 남자 분의 변명(?)을 들은 적이 있다. ... 우리도 분명 부지런히 감탄하던 시절이 있었다. 학창 시절 우리의 젊은 가슴을 매료시켰던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을 읽으며 세상 만물이 선사하는 환희와 기쁨에 열광했고, 감탄사가 가득하던 그 책의 문장들을 외우고 다니기도 했다. '저녁을 바라볼 때는 마치 하루가 거기서 죽어가듯 바라보라/ 아침을 바라볼 때는 마치 만물이 거기서 태어나듯 바라보라/ 그대의 눈에 비치는 것이 순간마다 새롭기를/ 현자란 모든 것에 경탄하는 자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여자들의 심장은 무디어 가고, 새처럼 펄떡거리던 생명력은 조금씩 사그라들기 시작한다. 하지만 어쩌면 나이가 들고 늙어서 감탄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감탄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늙어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찾습니다 - 정채봉


우선 특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산을 산이라고 하고 물을 물이라 합니다.

몸을 옷으로 감추지도 드러내 보이려 하지도 않습니다.

물음표도 많고 느낌표도 많습니다.

사금파리 하나도 업신여기지 않고 흙과도 즐거이 맨손으로 만납니다.

높은 하늘의 별을 우러르기도 하지만 청마루 밑 같은 데에도 곧잘 시선이 머뭅니다.

마른 풀잎 하나가 기우는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고 옹달샘에 번지는 메아리결 한 금도 헛보지 않습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오늘은 무슨 좋은 일이 있을까'그 기대로 가슴이 늘 두근거립니다.


이것을 지나온 세월 속에서 잃었습니다.

찾아주시는 분은 제 행복의 은인으로 모시겠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고요? 흔히 이렇게들 부릅니다.

"동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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