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의 바늘이라 불리던 앙드레 김! 가난한 고졸 출신의 우리나라 최초의 남자 디자이너로써 많은 고난과 역경을 자신의 자신감과 꿋꿋한 의지와 진심 그리고 부지런함으로 극복하여 한국에서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멋진 한 사람의 이야기이다. 작년에 그의 작고 소식에 연일 매스컴에서는 장례식의 모습과 그와 함께 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생전 앙드레 김의 선행과 전문가적 일의 열정과 부지런함에 존경과 안타까움에 금치 못했었는데 그래서 엄마인 나도 딸아이도 흐르는 눈물을 닦아야만 했다. 어린 시절 그는 기차를 좋아하고 아름다운 색을 좋아하고 특히 어린시절 뛰어놀던 마을을 풍경, 자연의 색, 눈 내린 풍경의 하얀색, 어머니가 고이 챙겨주신 하얀 의복이 좋았던 사내아이였다고 한다. 달리는 기차를 보면서 그 기차를 타고 달리면 세계 어디든지 갈 수 있을 꺼란 생각에 낡은 세계 지도를 가지고 다니면서 다른 나라에 대한 호기심도 가지고 그러면서 영어도 좋아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처럼 엄마들의 애정으로 넘쳐나는 영어책이나 교재나 공부의 기회가 없던 그 시절에 그가 할 수 있었던 영어공부의 방법은 영어교과서와 영어 사전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영어 사전이 닳을 만큼 보고 또 보고 하여 그가 최근까지 매일 새벽에 일어나 여러 개의 영자신문을 읽을 만큼의 실려과 영어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있었다고 한다. 가끔 예능방송에서 그의 영국식 영어발음을 흉내내기도 하고 희화하기도 했지만 그는 그것이 그의 영어 사랑법이었고, 또 영어는 자신의 패션일을 하는데도 반드시 필요한 필수적인 언어이기도 했다. 다른 디자이너처럼 외국 유학을 다녀온 것도 아니지만 그가 가장 한국적이면서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아 브룩실즈나 마이클잭슨의 팬까지 둘 정도의 멋진 패션을 선보이게 된 것은 그 영어사랑과 젊은 시절 서점을 다니면서 최신 외국패션잡지를 모아서 보고 또 보고 한 그의 열정덕분이었다. 그리고 프랑스 대사관등을 다니면서 정보를 얻고 한국안에서만 일을 하고 배웠다 하더라도 이미 그는 세계적인 사람으로 성장하였던 것 같다. 어릴때 보았다 혼인식에서 신부가 입었던 활옷의 이미지과 꿈에 보았던 용의 모습에서 그리고 그 밖의 자연과 사물에서 그는 영감을 얻었고 끊임없이 디자인을 생각하고 연구하고 그리고 했기에 그의 손은 피멍이 들어있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자신의 분야에서 얼마나 열심히 일하였는지 본다면 우리도 보다 더 열심히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딸아이도 아마 그런 부분에서 배우는 점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감동적인 것은 천사의 바늘이라고 불릴 만큼 그는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고 존중하고 자신의 부를 혼자서 차지하려하지 않고 그를 그 자리에 오르게 해준 사회에 다시 보은한 점이다. 패션쇼의 기금도 사회를 위해서 쓸 줄 알고, 우리 나라의 문화를 자연스럽게 다른 나라에 알리기 위해 대사관부인들과 함께 하는 패션쇼를 진행하는 등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귀감이 되니 그의 하얀 옷과 검은 머리와 화장한 얼굴이 정말 우리가 본 살아있는 성인이 아니었다 생각하고 동시대에 살아왔음이 영광스럽다. 딸아이도 앙드레 김의 생활, 일화를 통해 정말 잘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느끼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