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 퍼즐 픽션 Puzzle Fiction 2
드니 게즈 지음, 최정수 옮김 / 이지북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수학과 소설의 만남이라는 말 그대로 수학소설이다.
그러나 처음 기대와는 달리 너무도 실망스런 책이다. 예전에 읽었던 '골드바흐의 추측'을 다룬 [사람들이 미쳤다고 말한 외로운 수학 천재의 이야기]라는 책을 너무나도 재미있고 감명깊게 읽었던 나로서는 이 책에 대해 많은 기대를 갖고 책을 집어 들었다는 점은 사실이다. 그러나 점점 읽을수록 드는 어이없음과 실망...한마디로 이 책을 읽느라고 소비한 일주일의 시간이 아깝게 느껴지는 그런 책이다.

수학에 관한 얘기도 그저그렇고 이야기를 끌어가는 스토리텔링도 빈약하기 그지없다. 어떻게 이런 스토리텔링으로 400 페이지 넘게 썼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그나마 이게 작가의 역량이랄까? ^^;;) 아무리 그래도 소설이라는 장르에 속한 책이라면 적어도 조금의 소설적 재미라도 있어야 할텐데...이 책은 어설프게 억지로 짜낸듯한, 아니 그냥 짜집기해서 나열하기에 바쁜듯한 느낌이다. 

여기서 출판사의 책 소개를 그대로 옮겨 보면...
"숫자 0 즉, 제로가 발견된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한 여인의 삶을 그리고 있다. 밤하늘의 무한한 별을 세고 싶어 했던 고대인들의 소망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제로를 탄생시켰는지 소설의 형식으로 설명해준다." 라고 되어 있다. 

헉...어떤 설명을 해줬는데???
그냥 우연히 아! 이거네...아니면 옆에서 주워 듣고서 알아버린다는 그런 말도 안되는 소리만 해대고 있다. 아무리 소설이라지만 발견과정의 정당성이나 객관성도 없다.(이 점을 보면 소설의 형식에 충실한건가?) 또한, 그것을 알기 위한...그것에 뒤따르는 노력, 집념, 번뇌, 좌절, 희망 등에 대한 어떤 묘사도 없다. 한마디로 절세미녀를 칭찬하면서 그냥 '아름답다' 이 한마디랑 같다. 어디가 어떻게 이쁜지 얼마나 아름다운지 같은 묘사가 전혀 없는 그냥 심심하고 밉밉하기만 하다. 단지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윤회설을 응용한 5000년에 걸친 아에메르와 오베이트 간의 사랑이야기인데 그렇다고 뭐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다. 애절하지도 가슴에 와닿지도 않는 그런 사랑...단지 과연 이번에는 어떤 삶을 살까? 또 이번에는 누구와 잘까? 뭐 그 정도...(하물며 근친상간까지...ㅠㅠ 정말 가지가지 한다) 

드니 게즈라는 이 작가는 교수, 수학자, 역사학자, 소설가, 시나리오 작가에 영화감독까지 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아는 지식도 많고 여기저기서 수집한 데이타도 무척 많은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지식 또는 데이타에 불과할 뿐 스토리가 되지는 못한다. 그 많은 데이타를 자기 생각 또는 주제에 맞게 이야기로 꾸미고 독자들에게 알리고자 하는 바를 재미있고 생생한 이야기로 설득력 있게 전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앵무새의 정리]에 묻어가려는(물론 이 책도 썩 훌륭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런 안이한 책으로 밖에 볼 수가 없다.

물론, 인상 깊은 대목이나 구절도 있다.
탄무지가 외친 '무엇이 나를 다른 사람들과 구별하고 남다른 존재로 만들어줄까?' 라든지...제로를 설명하면서 '가장 작으면서도 작지 않은 수', '부재를 존재로 간주한다는 것',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아무 것도 아닌 것' 등은 참 좋은 의미를 가진 문구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책의 띠지에는 이렇게 써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학소설"

정말 이런 카피를 쓴 편집자나 기획자가 존경스럽다. 어떻게 이런 카피가 나왔는지...(혹, 프랑스에서의 홍보문구를 그대로 가지고 온 것일 수도 있다) 대단하다!! 그러나 한가지 인정할 부분은 있다. 어려운 출판계 현실 속에서도 소위 돈 되는 인기작가나 장르에 휩쓸리지 않고 수학, 물리, 화학 등의 관련 서적을 꾸준히 출판한다는 점을 높이 사고 싶다. 좀 더 좋은 책으로 다시 만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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