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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플 플랜 ㅣ 모중석 스릴러 클럽 19
스콧 스미스 지음, 조동섭 옮김 / 비채 / 2009년 3월
평점 :
나는 내 스스로도 인정하지만 책을 가려 읽는다. 양서(良書)를 가려 읽는다는 뜻이 아니라 좋아하는 책만 골라 읽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 좋아하는 책이 전부 장르문학(추리, 스릴러, 미스터리, 환상, 공포 등...) 쪽이다. 최근 몇 년간 특히 그렇다. 예전에는 경영, 경제 및 자기계발 서적도 많이 읽었으나 이젠 아예 장르 쪽만 읽는 편협한 책읽기에서 벗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어쩌랴? 이렇게 일과 술로 지친 나를 그나마 채워주고 풀어주는 것이 이 넘들인 것을...
이렇게 편협적인 책읽기를 하는 나이지만 그래도 여러 종류의 책을 돌아가며 읽는다. 물론 장르문학 중에서만...ㅡ.ㅡ 예를 들면, 이번에 스릴러를 보면 다음에는 추리소설을...영미권 책을 보았다면 다음에는 일본 것을...그리고 본격물을 봤다면 다음에는 심리나 사회파를...뭐 이런 식으로 돌려 본다는 얘기다. 그래야 식상하지 않고 지치지 않으며 또한 그 책에 대한 새로운 맛의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다.(하긴 다른 사람들 눈에는 가재나 게나, 5공이나 6공이나 그게 그거일테지만...)
이렇게 잡다하게 서론이 긴 이유는...한 마디로 이 책이 그 만한 가치가 있다는 얘기다.
스릴러를 2주 연속 3권이나 봤음에도 이 책의 매력에 빠져서 헤어나오질 못했다. 물론 그 때 본 [시인], [추적자] 등도 아주 좋았다. 그러나 이 책은 좀 더 다른 맛을 가지고 있다.
[심플 플랜]이란 제목부터도 그렇지만...스릴러 치고는 아주 단순한 플롯에 등장인물도 그리 많지 않다. 쫒고 쫒기는 추격전이나 액션, 또는 뛰어난 경찰이나 잔인무도하고 치밀한 범죄자도 등장하지 않는다. 추리나 미스터리적인 요소도 없다. 하지만 너무나도 나약하고 어리석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묘사는 이 작품 끝까지 팽팽하게 유지되어 잠시도 한눈을 팔 틈을 주지 않으며 그 어떤 스릴러보다도 긴장감을 갖게 만든다.
특히 다른 어떤 책보다도 독자를 마치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느끼게 만드는 묘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이 책의 매력이다. 이건 행크(이 책 주인공인데...솔직히 보자마자 행크 아론 밖에 생각 안났지만...)에게 감정이입 정도가 아니라 딱 '나'라는 의식을 심어주는 희안한 마력을 가진 책이다. 점점 행크의 계획과 행동에 동조하고 동화되는 느낌을 받는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정말 자기 행동에 대한 합리화와 변명뿐인데...거기에 불행으로 끝날 줄 뻔히 알면서도 계속 행크에 대한 연민과 동정심이 드는 것도 평범한 보통사람의 잠재된 욕망과 폭력성, 이기심과 두려움에서 나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기 때문인듯 하다. 더욱이 행크가 보여주는 제이콥과 루에 대한 얄팍한 우월의식과 무시는 나로 하여금 쓴웃음을 짓게 만들었다.
현금 440만 달러...그것도 돈 세탁이 된 듯한 낡은 지폐를 본다면 누구든 갈등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나도 돈벼락 한번 맞아서 직장을 놀러 다니듯이 다니거나 아예 때려치고 강남에 빌딩 몇 채 사서 임대수입으로만 먹고 살고 싶기도 하다. 또는 돈으로 자리 하나 사서 내 맘대로 세상을 주무르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이것은 일개 환상일뿐 그런 돈이 생겨도 행크처럼 그리 녹녹치는 않을 것이다. 하긴 대통령도 저러는 판에 어디 세상이 내 생각대로만 되겠는가...ㅡ.ㅡ
이 책에 나온대로 '모든 것이 결국에는 균형을 맞춘다.'라는 말처럼...내가 흘린 땀과 노력 없이 갑자기 다가운 행운은 그 만큼의 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한 가지 잘못된 일을 저지름으로써 그 모든 일을 잘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선택에 정말 안타까울 뿐이었다. '탐욕 때문에 죽인 것만은 아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두려움이다.'라는 행크의 말이 자꾸 가슴에 맺히는 것은 왜일까?
이 책의 작가 스콧 스미스는 1993년에 이 [심플 플랜]을 데뷔작으로 내놨다. 그 후 13년이라는 긴 공백을 갖고 [폐허]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책도 물론 밀리언셀러다. 13년...이게 어디짧은 기간인가? 정말 대단한 데뷔작을 냈기에 그 후속작에 대한 부담도 몇 배로 컸을 것이다.(아니면 대박으로 충분히 먹고 살만큼 벌었던가...ㅡ.ㅡ) 나도 [폐허]라는 책은 사둔 지 거의 1년이 다되가지만, 평이 좀 별로라 자꾸 읽는 순위가 밀렸는데 그 순위를 좀 앞당겨야 할 것 같다. 이런 책을 쓴 작가가 13년만에 낸 책인데...아무리 뭣 같아도 중간 이상은 할 것이 확실하다.
아! 스콧 스미스가 기존 스릴러 작가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이것들아~~~ 스릴러란 이렇게 쓰는거야!
나, 밀리언셀러 아니면 안쓰는거 몰라? 웬만한건 안써...영원히~~~"
물론...믿거나 말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