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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잘나가는 여자
아리카와 마유미 지음, 신지원 옮김 / 이지북 / 2013년 3월
평점 :
진득하지 못한 내 자신에게 화가 나는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이것 저것 하는 것을 좋아했다. 미술도 배웠고 바둑도 배웠다. 피아노를 배우며 작은 연주회도 나갔었고 수영도 상급반까지 다녔으며, 태권도도 빨간 띠까지 다녔다. 컴퓨터도 배웠다. 속셈학원만 안다녔을 뿐이지 배우고 싶어 하는 것은 부모님께서 모두 시켜주셨다. 단 조건은, 두 개를 동시에 할 수는 없었다(부자가 아니니까)는 것. 그래서 새롭게 배우고 싶은 것이 생기면 하고 있던 것을 관두어야 했다.
나는 이것 저것 욕심은 많았다. 흥미를 느낀 일이나 재밌는 일을 배울 때에는 그것들을 곧장 잘해서 부모님이나 선생님들이 내게 그 각각의 재능이 있는게 아닌가 생각할 정도로 꽂히면 눈에 불을 켜고 했다. 하지만 내겐 중요한 한 가지가 없었다. 바로 '끈기'였다.

나는 매번 진득하지 못한 내게 화가 났다. 고집은 세면서 끈기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다니, 하며 자책한 날들을 어찌 다 셀 수 있겠는가. 물론 지금은 많이 진득해졌다. 이는 아마 어른이 되면서 겁쟁이가 되어서 그런지, 놓아버리는 것들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나는 하고 싶은 것들을 제 때에 해보았고, 그를 통해 다양한 경험들을 할 수 있었다. 비록 그 당시에는 끈기도 없고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아이였을지는 모르나, 지금은 그 경험들이 고맙다. 그 많은 경험들 덕에 내가 좋아하는 것, 나한테 맞는 것들을 하나 하나 찾아가고 있을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여기에 나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의 다양한 일들을 해온 한 여성이 있다. 이 책『지금부터, 잘나가는 여자』의 저자 아리카와 마유미다. 이 책에서 가장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부분은 책의 제목이 아니다. 바로 '거쳐간 직업만 47개'라는 부분이다. 이제 마흔을 넘긴 그녀는 이미 저 많은 수의 직업들을 다 겪어오며 자기 나름의 방법으로 인생 항로를 개척해왔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직업을 갖게 되면서 그 일이 자신과는 잘 맞지 않아 그만두고 이직하는 사람들은 많이 있다. 그러나 마흔 번 넘게 직업을 바꾼 사람은 정말이지 흔치 않다(요즈음 우리나라의 상황으로 보자면 중고등학생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많이 하니까 그것들을 다 세면 훗날 이 정도 수의 직업을 거친 사람이 꽤 나올 수도 있겠다만). 비슷한 분야에서의 이직도 아니다. 그녀가 거쳐온 직업들은 슈퍼마켓 계산원, 당구장 직원, 유니클로 점장, 기모노 강사, 신문사 편집자, 엔카 가수 매니저, 웨이트리스, 바텐더, 가정교사, 웨딩코디네이터, 프리랜서 카메라맨, 프리랜서 작가, 호스티스, 상점 모니터 요원 등 서로 연관없는 일들이 많이 있다.
처음 이 책을 딱 접하게 된 사람들은 '뭐야, 이 여자 왜 이렇게 끈기와 책임감이 없어?'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더불어 '와, 능력이 이렇게나 다양하단 말이야? 할 줄 아는 게 저렇게나 많다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같은 경우에는 위의 두가지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결과적으로 아리카와 마유미는 요령을 남들보다 일찍 터득하지 못했을 뿐이고, 인생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그 많은 체험을 하게 된 것이라는 사실을 책을 읽으며 알게 되었다.
늦은 것이 아니라 조금 느릴 뿐이었다는 것을 그녀는 다양한 사회 생활을 통해 깨우쳤다.
사회 생활을 하며 스스로 터득한 것, 직장이나 해당 분야 내 '잘나가는 여자'들의 가르침을 통해 배운 요령들을 이 책의 25개의 챕터를 통해 간결하게 잘 드러내고 있다. 그녀가 다양한 직업들을 경험한 만큼 독자들에게 해줄 이야기가 많다는 말이 된다. 얼마나 에피소드가 많이 있겠는가. 즐거웠던 일, 슬펐던 일, 짜증났던 일, 억울했던 일, 뿌듯했던 일 등 많은 에피소드들을 이 책을 통해 간접 경험하며 소위 '눈치 있는' 사람, '융통성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익한 책이 아닐까 싶다. 직장 내에서 혹은 그냥 일상 생활 내에서 눈치없다고 핀잔을 많이 들어온 사람들에게는 가장 추천 해주고 싶은 책이다. 어려운 말을 구구절절 늘어놓는 책이 아니기 때문에 무거운 내용의 자기 계발서와는 달리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다는 차별점을 둘 수 있겠다.
책의 많은 내용 중 내 마음을 사로잡은 부분이 있다. 아리카와가 결국 성공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세상을 이렇게 넓은 눈으로 볼 줄 아는 안목과 태도, 그 마음가짐에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었던 부분이다. 사소한 일에 쉽게 욱하고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이렇게 이해해줄 줄 아는 마음. 이 책과 책의 저자를 소개하는 데 아래의 글이면 충분하지 싶다.
_p. 127~
Difference - 나와 다른 점을 좋아한다
세상에는 여러 사람이 있어요.
여러 가지 생각하는 방법이 있어요.
여러 가지 살아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제각기 다른 사람들.'
그래서 더 좋아요. 그래서 더 재미있게 살아갈 수 있어요.
세계를 여행하면서 지금까지 나에게는 당연했던 것들이 다른 사람에게는 전혀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스에서는 많은 사람이 시간을 지키지 않습니다. 아니, 지키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약속을 잊어도 아무렇지 않죠.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되자 짜증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알고 보니 그들의 '약속' 개념은 우리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사람에 따라서 다르기도 하지만 그리스 사람들에게 '내일 3시에 만나자'라는 말은 '약속'이 아니라 '내일 3시쯤 만나고 싶다'는 '희망 사항'입니다.
이 점을 알게 되자 마음이 꽤 편해졌습니다. 정말로 만나고 싶다면 두세 시간 전에 전화해서 '우리3시에 만나는 거야'라고 확인하면 되는 거였어요.
'어째서 이 나라 사람들은 약속을 안 지키는 걸까?'
내 나름대로의 해석이지만 그들에게 있어서 최우선은 지금 이 순간을 가장 소중히 여기고 싶다는 마음인 것 같습니다.
즐거운 일이 있으면 시간이 어떻게 지나고 있는지 잊어버리게 되죠.
외국에서 살면 그들과 나는 '다른 점'투성이에요. 하지만 다른 부분들을 '웰컴!' 하며 기쁘게 받아들이면 나와 다른 사람들을 더 깊게, 더 편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보통의 인간관계도 똑같아요. 상대방을 나랑 다르다고 선을 긋고 멀리해버리면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책 사이즈가 작아 가방속에 넣고 들고 다니면서 심심할 때 꺼내 읽기에 적합한 책이다. 다만 제목이... 나도 그렇고 주위 친구들도 이구동성으로 말했지만 지하철에서 들고 읽기에는 조금 창피하다는 의견이 있다. 『지금부터, 잘나가는 여자』라니. 마치 내가 너무나 '못'나가고 '안'나가는 찌질한 여성이어서 그 비법을 담은 책을 몰래 숨어서 보는 듯한 느낌이다. 아무리 내가 현재 '잘나가는'여성은 아니라지만, 내 자신을 부족한 여자라고 낮추어서 광고하고 다닐 자존심 없는 여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 하는 점에서 제목에 아쉬움이 남는다.
한 가지 더. 처음의 몇 페이지만 컬러 사진이고 나머지는 모두 흑백 사진인 것이 아쉽다. 글에 어울리는 사진들을 함께 수록한 형식의 에세이인데 사진의 느낌을 더욱 살려주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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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음과 모음 공식 리뷰단 1기 강정민.
두 번째 도서 『지금부터, 잘나가는 여자』
책은 지원받아 읽었지만 서평 내용은 온전히 저만의 생각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