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밤과 낮 사이1, 2』
영미권 장르소설 비평가와 편집자들이 선택한 단편 컬렉션.
이지연 옮김
출판사 : 자음과모음
출간일 : 2013.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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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정말 마음에 든다. 처음엔 표지 디자인이 저렇게 합치면 하나의 그림이 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는데 리뷰를 쓰려고 사진을 찍다가 발견해내고는 '우와-!' 했다. 이 책의 제목인 『밤과 낮 사이』는 이 책 속의 단편들 중, 톰 피치릴리의 <밤과 낮 사이>라는 작품에서 따온 모양이다. 그 작품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는데, 전체적인 책의 제목으로 삼기에도 훌륭하다는 생각이 든다. '밤과 낮 사이'. 그 시간대에 읽기 딱 좋은 책이다. 워낙 책 자체를 밤에 읽기 좋아하는 편인데, 이 작품은 읽다보면 새벽이 지나도록 모른다. 그만큼 손을 떼는 것이 아쉽다. 책이 두꺼워 무거운 편인데도 지하철에 서서 들고 읽었다. 단편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워낙 각각의 작품들이 빠르게 진행되어서 읽는 도중 휴지를 두고 싶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단편문학을 매우 좋아하는데 단편집 리뷰를 쓸 때에는 참 난감하다. 작품 수마다 리뷰를 쓸 수도 없고, 그렇다고 각기 다른 작가의 다른 작품들인데 한데 뭉뚱그려 말하기도 참 싫다. 『밤과 낮 사이』는 1, 2권으로 나뉘어져 있지만 시리즈물은 아니라서 각기 따로 리뷰를 작성할까 하다가 그냥 한번에 끝내기로 했다. 따로 하기엔 두 책의 그림 속에 매달려있는 여자가 반으로 찢어지는 느낌이라서.....
1권) 그들 욕망의 도구 / 밤과 낮 사이 / 책 제본가의 도제 / 스킨헤드 센트럴 / 심숭생크스 여사 유감 / 첫 남편 / 운이 좋아 / 아버지날 / 개 산책시키키 / 모자 족인 / 뱁스 / 죽음과도 같은 잠 / 즐거운 응원단 / 교차로 / 악마의 땅 / 킴 노박 효과
2권) 완벽한 신사 / 약삭빠른 갈색 여우 / 돼지 파티 / 장밋빛 인생 / 녹 / 애국적 행위 / 피부와 뼈 / 오 양의 정반대 / 메리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 조너스와 요부 / 길거리의 개들 / 색 오 워
마음에 드는 작품들을 골라놓고 보니...대다수가 살인과 관련된 작품들이다. 재밌게 읽어놓고는 이제와서 무섭다. 가뜩이나 흉흉한 세상인데 말이다. 세상이 흉흉해지고, 온갖 신종 범죄가 등장하는 것과 비례해서 미스테리, 스릴러 등을 다루는 장르문학 속 상상력도 점점 풍부해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읽을 수 밖에 없는 엄청난 매력을 지닌 작품, 장르문학이란 그렇다.


(내가 좋아하는 책 겉옷 벗기기. 책의 앞, 뒤로 원제가 분리되어 써있다. 그냥 깔끔한 속표지)
1권 中 ★ <밤과 낮 사이> - 톰 피치릴리
가장 다루고 싶은 작품은 역시 책 자체의 제목과도 같은 톰 피치릴리의 <밤과 낮 사이>라는 작품이다.
_p. 35 & 66 ; 사람은 창졸간에 나머지 인생 전체의 방향을 결정할 결단을 내릴 수도 있다. 어떤 행동을 했다가 그만 영원토록 지옥의 낙인이 찍혀 저주를 받을 수도 있다. 단 한 차례 실수를 저지름으로써 양심을 팔아넘길 수도 있다. 최선을 다하고도 일이 제대로 되게끔 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야기 초반에 등장했을 때 한참을 곱씹었던 말인데, 후반부에 가서 또 한번 나오는 것이 아닌가. 내게 작품속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을 꼽으라면 저 부분이라 하겠다. 이유는, 같은 구절이지만 초반에 저 말을 머릿속으로 되뇌일 때와 후반부에 되뇌일 때, 작품속 화자의 인식과 태도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초반부, 희생정신을 발휘해 위험한 일에 뛰어들어 남을 구할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하던 화자는 지옥의 낙인을 찍히기 싫었던 모양인지, 아니면 양심이 뾰족했기 때문인지 잠깐의 고민 끝에 사람을 살리기 위해 뛰어든다. 양심을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후반부의 화자는 비슷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지만 조금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 또다시 생(生)을 선택하는 상황에 놓이게 될 때까지 그리 긴 시간이 놓여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짧은 시간안에 인간은 외부의 자극에 의해서 내면의 모습을 얼마나 많이 탈바꿈하게 되는 것일까.
처음엔 자신의 실수로 아이를 잃을 용기에 처한, 멍청한 남성에 주목했었다. 그의 어리석음과 이기심, 세상에 태어나 고마움이라는 감정을 한번도 느껴보거나 표출해보지 못한듯한 성미, '적반하장도 유분수' 혹은 '뭐 낀 놈이 성낸다'와 같은 말들을 떠올리게 하는 언행에 대해서 말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니 이 멍청한 남성은 일종의 촉매제 같았달까. 그 어리석고 고약한 성미의 남자는 어둠과 빛, 그 양면의 모습을 손바닥 뒤집듯 뒤집어버리는 화자를, 그를 포함하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심적 나약성을 보여주기위한 촉매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2권 中 ★ <메리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 빌 프론지니
나름의 심사 숙고 끝에 각 권에서 제일 다루고 싶은 작품들을 뽑아놓고 나니, 통하는 부분이 있다. 양심을, 갈대같이 흔들리는 인간의 내면을 잘 드러내는 작품들이랄까. 차이점이 있다면 <밤과 낮 사이>에서는 화자가 무언가 '선택'을 했다는 것이고, <메리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에서는 그 선택의 문제를, 책임과 양심의 가책을 독자에게 전가시키고 있다는 것 정도이다.
_p. 370~371 ; 나는 준법 시민이다. 언제나 올바르게 살려고 애쓰고, 언제나 정의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일어나지도 않은 범죄의 대가로 죄 없는 사람이 감옥에 들어가 있는 것은 절대 올바른 일이 아니다. …
하지만 보안관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아무것도 없다. 그게 문제다. 메리 도스가 생존해 있고 털리가 누명을 썼다는 증거가 없이는 아무 일도 못한다. 그런데 난 그에게 갖다 줄 증거라고는 실오라기만큼도 갖고 있지 않다. 입증되지 않은 '만약'과 '혹시라도'만 잔뜩 품고 있을 뿐이지.
그리고 내가 박사에 대해 오해했을 수도 있다. 오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박사와 나눈 대화가 있는데. 하지만 그래도 오해일 수는 있는 거다. 박사의 훌륭한 평판을 더럽히는 일이 정의롭다고는 할 수 없지 않나, 안 그런가? 정말이지 내 양심에 그런 가책을 지고 싶지는 않다.
정말이지 우스운 부분이다. 자신의 양심을 대함에 있어 교묘하게 가책의 철조망 사이를 빠져나가려 하는 모습을 느낄 수 있다. 무엇이 옳고 그른 일인지 뻔히 알고 있었고 계속 알고 있으면서도 그를 외면하고 회피하려한다. 한 마디로 '자기 합리화'에 빠지는 것이다. 마음의 무게를 덜어내기 위해 그럴듯한 이유를 들어 자신의 상황을, 태도를 정당화 시키려는 태도가 여실히 드러난다. 그렇지만 맘대로 비웃을 수 없는 이유는, 나 또한 저 선택의 기로에 서서 얼마나 떳떳하고 당당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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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장르 문학속 미스터리, 범죄, 스릴러, 로맨스 등의 이야기 모티브는 인간으로부터 비롯된다. 나는 이러한 장르문학들이 그 당시를 살고 있는 인간들의 모습을 비추는 하나의 거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와 같은 특성이 바로 장르문학이 아슬아슬하고 위험해보이는 이유이자, 사람들이 장르 문학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것에 대한 이유일 것이다. 겉보기엔 일상과 멀어보일지 모르나, 실상 알고보면 사람냄새가 물씬 풍기는 작품이기에.

센스를 발견했다! 겉표지 안쪽의 모서리가 위아래 모두 다 안으로 살짝 들어가있다. 구겨지거나 접힐 염려도 한층 덜 수 있는 깔끔한 마감처리 마음에 든다. 이제는 겉표지 벗기는 걸로 모자라서 이런것까지 보고있다.
재미있는 단편 작품들을 몇 주만에 잔뜩 접했더니 기운이 난다. 으쌰으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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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도서 『밤과 낮 사이』
책은 지원받아 읽었지만 서평 내용은 온전히 저만의 생각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