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
배수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소설을 뭐라고 쉽게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러나 쉽게 표현할 수가 없다. 배수아의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는 미로 속에 갇힌 소설이다.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 이 작품은 마치 하루 동안 대여섯 개의 꿈을 꾸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기억을 되짚어보니 그 꿈이 뒤죽박죽 섞여있는 모양새를 한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줄거리라든가, 서사라든가 하는 것은 이 작품에 있어 전혀 의미가 없다. 인물들의 세부 묘사를 하는 구절들이 두번 혹은 세네번씩 반복되는데 그러한 반복으로 인해 인물의 구분에 있어 혼동을 느끼게 된다.

 

 

"멀리 떠나지 말아요, 단 하루라도, 왜냐하면/왜나햐면…… 하루는 길고/나는 당신을 기다릴테니까",

 

"숱 많고 검은 머리칼은 등 뒤에서 하나로 묶었고, 치맛자락 아래 드러난 맨발은 삼베천을 거칠게 꼬아 만든 샌들을 신고 있었다"

 

"남자는 마른 얼굴에 안와가 동굴처럼 움푹 패었으며 입술이 바삭 말라 있었다. 흰자위를 가로지르는 붉은 실핏줄이 무서울 만큼 선명하게 보였다."

 

 

위와 같은 구절들은 인물이 달라짐에도 반복 묘사된다. 결국 등장하는 대부분의 남자는 한 인물로 귀결되며, 주인공 '아야미'역시 '여니', '마리아'등의 한 인물로 귀결되는 듯한 느낌을 전해준다.

 

 

 

 

 

나는 배수아 작가의 글에서 마치 산문시같은 느낌을 받았다. 의식의 흐름을 풀어써내는 과정은 짧은 순간 순간들을 포착해 그 순간의 느낌을 잃어버리지 않으면서도 깊은 관찰의 면모를 드러나게 하였다. 그러나 초반부에 그런 흐름을 감당하지 못한 나는 집중력을 잃고 책을 두어번 덮어버렸다. 조금 정신없다고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기 마련이었는데, 그런 순간을 견뎌내고 다시 책을 펼쳐 읽기 시작한 것은 다행이었다. 나는 읽으면 읽을수록 책에 만족을 느꼈는데, 이는 근래의 내 정신상태를 대변해주는듯 한 글이었기 때문이다.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데 뒤섞여 돌아가는 모양새였다. 입구도, 출구도 없는 미로의 한복판에 갇혀 헤어나오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이 작품을 한 음절로 줄이자면 '꿈'이다. 읽다보니 문득, 4년전 쯤 읽었던 은희경 작가의 소설이 생각난다. 그때는 이 '꿈'이라는 것이 가지는 비현실적, 비가시적인 세계를 읽는 것에 매우 혼란스러워 하며 적응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잘 읽히는 것 같다. 아무래도 '책을 읽는 때, 시기'라는 것이 정말 중요하긴 한 모양이다.

 

 

아무튼 꿈을 두 음절로 늘이자면 '몽상', 그리고 이 소설은 여기서 더 나아가 '망상'으로까지 치닫는 느낌이긴 하지만, 개인의 무의식세계 내에서 억압되어있던 욕구들이 '꿈'이라는 소재를 통해 훌륭히 표현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꿈이랑 상관 없이 마음에 드는 구절들이 등장한다. 세상에서 외면당하거나, 혹은 세상 속 타인을 설득하지 못하는 이들을 표현하는 다음과 같은 구절.

 

 

_p. 58 ; (시인의 필명 '김철썩'을 두고)

"자신의 관 위로 흙을 퍼붓는 소리랍니다."

"그는 이런 말도 하더군요. 자신은 타인을 설득하는 일에 한 번도 성공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고. 그래서 항상 뭔가 말을 걸면, 그 대답으로 세상은 흙을 한 삽 떠서 그의 무덤에 퍼부었다는 거지요. 그래서 자신은 깊이깊이 묻히게 되었다고, 그렇게 말한 다음 그는 염소처럼 매에거리며 길게 웃었습니다."

 

 

_p. 60 ; "그건 바로 내가, 그들을 처음에 한심하게 바라보았던 나 자신이야말로 타인을 설득하는 데 항상 실패해온 한심한 자라는 사실을 불현듯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곧 그들이었던 셈이죠. 나는 그날 잘못된 자리에 잘못된 사람들과 함께 앉아 있었던 것이 아니에요. 그들이 곧 나 자신의 환영이었으므로, 혐오하는 것 말고 나에게 다른 대책이 남아 있지 않았던 겁니다. …"

 

 

 

이 책은 결국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나는 그것을 지금도 딱잘라 어느 것 하나라고 이야기 할 수 없다. 내면의 혼란을 아주 잘 드러내 주었다는 점, 소설속 문장들이 욕구 분출의 한 통로가 되었다는 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부류"(작품 속 구절)를 어떻게든 보이게 만들려 노력했다는 점은 이 작품이 끝내주는 서사가 없더라도 괜찮다고 느끼게 해주는 이 책만의 특징이 되었다.

 

 

특히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두 인물이 서로가 서로의 말을 알아듣는다고 당연스레 생각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이 착각에 불과하며 오히려 소통이 단절될 뿐 아니라 왜곡되고 있었던 점에 강하게 끌렸다. 나도 항상 타인을 대할 때 그들을 이해하고 배려해준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우리 사이에 '유리문'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한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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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음과 모음 공식 리뷰단 1기 강정민.

다섯 번째 도서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

책은 지원받아 읽었지만 서평 내용은 온전히 저만의 생각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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