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알수집가
제바스티안 피체크 지음, 장수미 옮김 / 단숨 / 2013년 6월
평점 :
절판


  

 

  작품의 제목과 책 표지의 섬뜩한 사진때문에 읽기 전부터 더럭 겁이 났다. 실은 새벽에 책을 읽다가 무서워서 더는 못읽고 잠을 자려고 하는데, 책 표지 장면이 꿈에 나올까봐 책을 멀찌감치 놓았다. 그것도 뒤집어서.

 

 

 이 책의 구성은 조금 많이 독특하다. 맨 처음을 [맺음말]로 시작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 다음은 [마지막 장 끝]이다.  작품의 맨 끝에 나와야 할 맺음말이 맨 처음부터 등장을 한다니, 어안이 벙벙함과 동시에, 도대체 책을  어디서부터 어떤 순서로 읽어야하는 지에 대해 슬슬 혼란이 찾아온다. 그리고 목차를 보면 알겠지만 83으로 시작해서 1로 끝난다. [서문]과 [첫 장]은 작품의 맨 끝에 나온다. 번역된 한국의 책에서 그나마 페이지수는 순서대로 진행되지만 독일 원서에서는 페이지까지 거꾸로 진행된다고 하니 흥미롭고 색다른 구성방식임에는 틀림이 없다.

 

 

 

 

 

 

 듣는 사람의 정신 속에 녹슨 갈고리를 점점 더 깊이 박아 넣는 죽음의 나선 같은 이야기가 있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무궁사(無窮死,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고 작동한다는 가상적인 영구기관)라 부른다. 시작한 적도 없고 절대 끝나지도 않을 이야기, 영원한 죽어감을 다루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책의 맨 앞부분, <맺음말>中

 

 

 

 작가는 작품의 맨 앞부분에서 위와 같이 말한다. 그러면서 '더 읽지 말라!'라고 경고한다. 처음에는 '무슨 이런 경고가 다 있어?'했지만, 이야기의 마지막에 가서 초반의 경고를 다시 되새길 수밖에 없었다. 끝인 줄 알았지만 그것은 다시 '게임 스타트'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작가가 맺음말에서 한 모든 말들에 전적으로 공감을 할 수밖에 없다.

 

 

 

 '이 작품은 인류의 가장 오래된 놀이인 숨바꼭질을 모티프로 무고한 사람을 죽였다는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전직 경찰과 잔인한 살인마와의 숨 막히는 게임을 그려내 2010년 독일 독자가 직접 뽑은 최고의 스릴러 1위에 이름을 올렸다.'(책 커버 페이지의 내용中)

 

 

 

 싸이코패스인 잔인한 연쇄살인마는 전직 경찰이었으며 현직 신문사 기자인 알렉산더 초르바흐에게 누명을 씌운다. 살인마의 장기말이 된 초르바흐는 맹인이자 환영을 보는 알리나와 함께 살인마를 뒤쫓는다.

 

 "나는 과거를 볼 수 있어요 "

 

   알리나는 사람을 만지만 과거를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고 했다. 그러나 가면서 밝혀진 것이지만 사람을 만진다고 현재가 아닌 시점의 영상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고통을 느낄 때여야만 다른 시점의 영상을 볼 수 있었다.

 

 

 

 이야기는 [남은 시간 44시간 38분]에서부터 시간이 점차 줄어들며 [마지막 1분] 그리고 [시한이 지나고 1시간 후]로 진행되어가며 긴장감을 높여간다. 남은 시간이 줄어갈수록 초조하고 급박한 분위기가 계속되다가 시간이 끝나고 사건이 해결되며 모든 것은 평화롭게 흘러가는 듯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작가는 찝찝한 분위기를 계속 끌고가고 있었다. 예컨대 '더 이상 잘못될 일은 없어'라는 생각 뒤에 "이렇게 오판하는 경우도 흔치 않다"라는 구절이 뒤따라오는 경우랄까.

 

 

 

 책이 아예 끝나기 겨우 20페이지 전에, 우리는 뒤통수를 크게 얻어맞는다. 그러면서 하나하나 맞춰지는 퍼즐 조각을 그냥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사건의 마지막과 동시에 사건이 시작되는 그 지점, 하필이면 가장 불행한 사건이 발생하는 그 시점, 기가 찰 노릇이지만 절대 막을 수 없는, 이미 실낱 같은 희망도 가질 수 없게 되어버린 그 상황을 분노와 황망함에 의해 꼭꼭 속박된 채 지켜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데 뒷 목의 털이 쭈뼛 일어나고 기가 차는 이야기를 또 들을 수 있을까 싶을만큼. '어쩐지 이러저러한 상황이 이상했어'라고 생각은 하지만 초르바흐의 뒤늦은 후회처럼 그것은 독자의 뒤늦은 예측일 뿐이다.

 

 

 

 여태껏 이렇게 색다른 구성, 시각 장애인이 느끼는 바에 대한 상세한 서술(실제 작가가 시각장애인들에게 도움을 얻고 계속해서 자문을 얻으며 글을 썼다고 한다), 뫼비우스의 띠 같은 사건의 전개, 후반부로 갈수록 사그라들기는 커녕 점점 불타오르는 이야기 진행을 갖춘 책은 처음이었다. 난생 처음보는 놀이기구를 타보는 짜릿한 느낌 같은 것이 이 소설의 매력이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나서 다시 첫 페이지를 펼치게 만드는 것 역시.

 

 

 

 싸이코패스 하니까 생각나는 <크리미널 마인드>. 워낙 범죄 수사물을 좋아해서 CSI나 멘탈리스트, NCIS, 본즈, 크리미널마인드 등을 즐겨보는 편인데 그 중 크리미널 마인드를 제일 소름끼쳐하며 재밌어한다. 크리미널 마인드에는 연쇄살인 이야기가 주로 많이 나오고, 그러다보니 싸이코패스를 소재로 다루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크리미널마인드보다 『눈알수집가』가 훨씬 충격적이었다. 가장 뒤끝이 남는, 끝났다고 말하기 찜찜한 작품이라 그런 것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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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음과 모음 공식 리뷰단 1기 강정민.

열네 번째 도서 『눈알수집가』

책은 지원받아 읽었지만 서평 내용은 온전히 저만의 생각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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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기리시마 동아리 그만둔대 - 제22회 스바루 소설 신인상 수상작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31
아사이 료 지음, 이수미 옮김 / 자음과모음 / 2013년 5월
평점 :
품절


 

 

 두 번째로 읽어보는 자음과모음의 청소년문학, 『내 친구 기리시마 동아리 그만둔대』. 2013년 나오키상을 수상한 아사이 료가 2009년에 쓴 처녀작이다. 이 작품으로 소설 스바루 신인상을 수상했다고 하는데, 그때 나이가 우리나라 나이로 치면 21살!! 그의 재능과 열정이 부러워진다.

 

 

 

 책의 제목처럼, 이 작품은 배구부의 '기리시마'라는 학생이 동아리를 그만두게 됨으로써 주변 친구들(실은 그렇게 가까운 사이도 아닌)의 생활에 작은 파문이 생겨난다는 이야기를 작은 시골 고등학교의 동아리 활동 중심으로 전개하고 있다. 일의 발단이 되는 것도 기리시마고, 책의 제목도 기리시마지만 실은 그에 관련한 직접적인 이야기는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한마디로 기리시마는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키는 작은 나비에 불과했다.

 

 

 작품 속 학생들은 고등학교 2학년이지만 다양한 동아리 활동을 한다. 야구부, 배구부, 브라스밴드부, 영화부, 소프트볼부, 배드민턴부, 탁구부, 방송부 등 종류도 다양하다. 나는 고등학교때 내내 공부만했다. 밤 열시까지 야자하고, 끝나면 집에가서 공부하고, 주말이나 방학에도 학교나 독서실에 가서 공부했다. 학교에는 동아리도 몇개 없었다. 학교 분위기도 오로지 공부, 대학 진학 뿐이었다.

 

 

 어렸을적 드라마 '학교'와 같은 TV 프로그램을 보면서 고등학교 생활의 낭만을 꿈꾸던 나는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등학생 때 낙이라고는 체육시간에 몰래 사먹은 간식, 종 치면 급식실 뛰어가기, 애거서 크리스티 추리소설이나 무협지, 만화책 등을 읽으며 스트레스 풀기 정도였달까.

 그나마 대학교에 들어와 동아리(소모임)활동을 하며 그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이 책도 나와 그리 멀지는 않은 것이다.

 

 

 너무나 따로 떨어져 있는 각각의 이야기들 때문에 초반에는 집중도가 조금 떨어졌었다. 마치 SNS상 내 친구의 친구, 내 친구의 친구의 친구 이야기를 접하는 기분이랄까. 그저 그 나이대의 학생들의 모습과 조금 어리다고 느껴지기도 하는 생각을 알아가는 정도였다. 그러나 읽어갈수록 나와 닮은 모습들을 발견하기 시작한다. 후반부로 갈수록 개연성은 살아나다가 <다시 야구부, 기쿠치 히로키> 부분, 즉 첫 챕터인 <야구부, 기쿠치 히로키>에서 여러 동아리 친구들의 생활을 조명한 후 다시 처음의 인물에게 바톤이 터치될 때, 이야기는 한데 뭉치게 된다.

 

 

 어쩌면 이 작품의 진짜 1순위 주인공은 야구부의 '기쿠치 히로키'일지 모른다. 처음엔 만사 태평한듯 보이던 히로키가 '바람은 내 등을 밀지도 않고 그저 불어만 갔다. 왠지 초조하다. 이 감정을 초조감이라 부를 수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겠지만'(191쪽) 이라고 점차 초조한 모습을 보인다. "교장 선생님의 식상한 말도, 새하얀 도화지라는 말을 듣는 것도, 동아리를 그만둔 기리시마도, 사나의 영화부에 대한 비난도, 배구로 먹고 살 것도 아니라고 말한 류타도, 브라스밴드부 연습 사건도, 진로 희망 조사도, 체육 시간의 축구도, 다케후미라는 아이의 부름도, 마에다의 '당연하지'라고 대답한 순간의 표정도, 전부 맞서지도 도망가지도 못하는 나 자신을 일깨우는 듯하여" 초조해하는 히로키는 '게으름을 핑계로 나 자신을 속여왔다. 두려웠다. 열심히 해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 자신을 깨닫게 될까봐….'(199쪽)라며 점차 초조함의 정체를 알아간다. '하고 싶은 것을 전력을 다해' 하는 친구들의 얼굴이 '빛 그 자체' 였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학교라는 작은 사회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앞날에 대해 생각하고, 그에 있어 불안함과 초조함을 감추지 못해 어쩔줄 몰라하는 모습은 나와 많이 닮아있었다. 그것은 저마다가 갖는 자연스러운 초조함일지 모른다. '지금까지 진심을 다해 맞서 왔잖아. 그런 사소한 일로 포기하면 아까워'(200쪽) 라고 기리시마에게 말해주고 싶어하는 히로키의 결심은 내게도 흘러들어온다.

 

 

 어린데 진심을 다해 하고싶은 일을 하고있는 저 친구들이 부럽고, 아직 어린 나이 덕에 꾸준히만 하면 앞날이 창창할 것이라고, 실패해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렇다면 누군가는 또 내게도 그럴 것이다. 너는 아직 젊고,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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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음과 모음 공식 리뷰단 1기 강정민.

열세 번째 도서 『내 친구 기리시마 동아리 그만둔대』

책은 지원받아 읽었지만 서평 내용은 온전히 저만의 생각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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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의 연애사
한창훈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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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을 뜻하는 스페인 말이 'amor'이다. 'mor'는 죽음, 'a'는 저항하다, 사랑은 죽음에 저항하는 행위인 것이다. 이 단어를 알고 나서야 독한 불면과 눈물을 감수하면서까지 사람들이 거듭 사랑에 빠지는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다.

 이 책은 그런 우리들의 연애사이다.

 

- '작가의 말' 중에서

 

 

 

 'Amor Fati (아모르 파티)'라는 말, '너 자신을 사랑하라'라는 말이다. 요즈음 책 속에서 꽤나 많이 인용되고 있다. 나는 그동안 이 말 덩어리 자체를 기억해왔을 뿐이었는데, 사랑을 뜻하는 'amor'의 어원이 '죽음'과 '저항하다'에서 왔다는 것을 이번에야 처음 알았다. 말의 어원을 아는 것은 참 재미있는 일이다. 옛날의 사람들의 인식이 담겨있기 때문인데, 그 오래전부터 '사랑'을 죽음에 저항하는 행위로 인식해왔다니, 한마디로 사랑은 '삶' 자체가 아닌가.

 

 

 

 

 

 

 

 

 이 책, 한창훈 작가의 『그 남자의 연애사』는 바로 이전에 포스팅을 한 방현희 작가의 『로스트 인 서울』과 상반되는 부분이 많다. 두 작품 모두 단편 작품들을 엮어놓은 소설집이기는 하지만, 삶을 다루는 배경 자체가 판이하게 다른 것이다. 『로스트 인 서울』에서는 현대사회의 '도시'가 작품의 주요 공간적 배경, 장소였다면 『그 남자의 연애사』는 바다에 둘러싸인 어촌, 작은 섬마을이 작품의 주요 배경이 된다. 여성 작가가 쓴 도시 이야기를 읽다가, 남성 작가가 쓴 섬마을 이야기로 넘어와 읽게되니 소설을 읽는 묘미는 두 배가 된다. (앞으로 책을 읽을 때에는 무작정 읽기보다는 이렇게 선택적으로 읽기도 해야겠다.) 

 

   

 바다, 어촌마을, 작은 섬마을. 같은 바다라지만, 피서철이면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해수욕장과는 거리가 멀다. 주민도 몇 안되는 한적한 분위기의 작은 섬마을은 도시 생활에 있어서 피난지, 탈출구가 되어준다. 도시 속 복잡함과 소음 속에서 벗어나 자연속에서 여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을 듯하여 스트레스가 쌓일 때면 늘 가고 싶은 여행지로 꿈꾸는 1순위가 되고는 한다.

 

 그러나 장기간 머무르는 것은 자신이 없다. 도시에서 쭉 살아온 이들에게 인적 드문 섬마을에서 터를 잡고 살라고 하면 잘 버틸 이가 몇이나 될까. 한적함과 고요함, 잔잔함, 여유로움은 시간이 지나 모두 지루함, 쓸쓸함, 외로움, 고독함이 되어버릴지 모른다.

 

 

 

 한창훈 작가의 『그 남자의 연애사』는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여러 문예지에 실린 그의 단편 작품들을 모아 엮어낸 것으로, <그 남자의 연애사>, <뭐라 말 못 할 사랑>, <발>, <애생은 이렇게>, <내 사랑 개시>, <판녀>, <무적이 운다, 가라>, <그 여자의 연애사>, <그 악사의 연애사> 등의 작품들로 이루어져있다.

 모두 어촌이나 섬마을이 배경인데, 흘러가는 인연이든, 지겹게 붙어있는 인연이든 그곳에도 어김없이 '사랑'은 존재했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그가 말하는 사랑은 가벼운 것, 무거운 것 가리지 않고 잘 받아 먹는다. 한없이 쓸쓸하게 만들면 어떻고, 불타 없어질듯 뜨거우면 어떤가. 그래도 사랑이 아닌가. 어쨌든 내가 죽음 대신 선택할 수 있는 것이 그것이니까. 지나간 숱한 사랑 이야기를 파도를 안주삼아 술 한 잔에 흘려보낸다. 들어줄 이만 있다면, 다시금, 계속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사랑이야기 아닐까. 

 

 

 

  '저쪽에서 봄바람이 부는가 싶은데 그만 내 가슴속에 꽃이 피어버리는 것. 쌍방이 그러한 것. 이쪽에서 마늘을 까기 시작하는데 저쪽에는 벌써 밥상이 차려져 있는 것. 그것 또한 서로 그러한 것. 그게 사랑 아닌가.'

  - <그 남자의 연애사> 中

 

 

 

 '해가 지는 풍경이 없다면 사람은 좀 덜 다치고 덜 한숨 쉴지도 모른다. 하지만 애생은 그런 것들이 좋다. 바다 위로 지는 노을, 아침의 맑은 기운, 따뜻한 봄 날씨, 동박새 우는 소리, 벼랑에 핀 나리꽃…… 따져보면 사랑하는 대부분의 것은 소유할 수 없는 것이다. 남편의 사랑이 늘 그런 것처럼 사랑은 소유와 아무 상관 없다.'

 

'술과 사랑. 그것 없으면 섬에서는 못 산다. 그것은 어쩌면 섬에서 사람이 살아남는 법인지도 모른다.'

  - <애생은 이렇게> 中

 

 

 

 '사람이 그렇게 안 죽으면 얼마나 좋을까. 안녕, 그동안 고마웠어, 하고 슝, 사라진다면. 최소한 영화에서 나온 것처럼 반듯하게, 단정하게 눈감고 가면 보기에도 좋을 것인데.'

  - <무적이 운다, 가라> 中

 

 

 

'그 나이 때의 연애는 길 걷다가 만난 꽃밭 같은 거였다. 보고 있으면 좋지만 아무리 오래 들여다보아도 내 것이 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 <그 악사(樂士)의 연애사> 中

 

 

 

 

 

 

 여성 작가와 남성 작가의 글을 또렷하게 구분해낼 수는 없겠지만, 또 일반화 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보편적인 느낌을 찾아본다면 여성작가는 인물의 내면을 거침없이 상세하게 서술하고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반면, 남성작가는 인물을 둘러싼 외부적인 것을 깊은 관찰력으로 둘러보고 주변세계를 잘 구축해낸다는 생각이 든다.

 

 한창훈 작가가 그러했다. 작가는 인물 주변에 흐르는 공기를 통제하는 방법을 알고있다. 그 덕에 잘 구축된 작품 속 세계에서 우리는 인물과 그들의 이야기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이해하지 못했던 세계를 이해하도록 자연스럽게 설득하는 힘, 그것이 바로 한창훈 작가의 필력의 한 부분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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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트 인 서울
방현희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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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트 인 서울

   세컨드 라이프

   ★탈옥

   그 남자의 손목시계

★후쿠오카 스토리 - 위급 상황에서의 이별에 관한 섬세한 보고서

★로라, 네 이름은 미조

   퍼펙트 블루 - 기이한 죽음에 관한 세 가지, 혹은 한 가지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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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현희의 단편소설집 『로스트 인 서울』. '로스트 인 서울'은 책의 제목이자, 책 안에 수록된 단편 소설의 제목이기도 하다. 서울에서 도대체 뭘 잃었다는 것일까. 길을? 아니면 나를? 현대사회의 '도시'와 '현대인(도시인)'을 조명하고 있는 이 책에서, 작가의 시선은 때로는 냉정하고 싸늘하며, 때로는 거칠다. 끝까지 비관적인 시선을 거두지 않는, 그러면서도 작위적으로 무언가를 하려 애쓰지 않고 방관하는 작가는 그 자체로 리얼리스트답다. 가끔 여성 작가에게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꿈'이나 '망상', '몽상'등이 정신적으로 혼란스러운 상태로 빚어지며 작품의 줄기를 이루고 있기는 하지만, 그런 점들은 적어도 이 『로스트 인 서울』이라는 작품집 내에서는 가상의 것, 허구의 것이 아닌 일종의 현대인의 정신병처럼 나타난다. 현대의 삶, 도시의 삶에서 잃어버린 어떤 가치들이 '꿈', '망상', '몽상' 등으로 형상화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그래서 난 그런 소재들이 꽤나 빈번히 출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집이 리얼리스트 사상에 충실했다고 본다.

 

 

 

 병든 사회는 얼마 전 읽은 『좀비 제너레이션』이라는 책을 기억나게했다. 사회가 병들어가고 있는 것은 확실한데, 그 병폐는 인간 내부적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동시에 외부적으로 나타나기도 하는 모양이다. 속으로, 밖으로 겉잡을 수 없이 암덩어리가 퍼져가는 사회가 문득 두려워졌다.

 

 

 

 

 

 

 

 7개의 단편 소설 중, 특히 <로스트 인 서울> , <탈옥>, <후쿠오카 스토리>, <로라, 네 이름은 미조> 라는 네 작품을 재미있게 읽었다.  이 작품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로부터 '벗어나려 발버둥 친다' 것이었다.

 

 

 <로스트 인 서울>에서 그렉안나는 남자 '강'의 집착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아파트 안에 '비밀공간'을 설계하고 그 공간 안에서 '나'와 은밀한 관계를 맺는다. 때로는 '나'가 비밀공간 안에서 구멍을 통해 강과 그렉안나의 정사장면을 목격하도록 하며, 그렉안나는 자신을 다른 시선에 놓이게 함으로써 '강'으로부터 벗어나려 한 것이다.

 

 <탈옥>은 모든 행동에 감시를 받는 최신식 감옥에서 자신의 장기를 탈출시키는 것으로 탈옥 계획을 세우는 '나'와 이 모든 것을 꿰뚫고 있는 듯한 교도관 과의 대립이 드러난다.

 

 <후쿠오카 스토리>는 두 쌍의 연인인 네 친구가 부산에서 후쿠오카로 요트 항해를 하는 중 조난을 당하게 되고, 그러한 위급 상황속에서 억눌러왔던 8년간의 서로의 감정을 분출해내며 관계가 급속도로 냉전되고 깨지는 것을 그린다.

 

 <로라, 네 이름은 미조>는 "서울에서 스코틀랜드로, 세계를 돌아 다시 영국으로, 파리에서 마닐라로, 마닐라에서 다시 서울로"(p.188) 오게 된 로라를 친구인 '나'가 검시(해부)하게 되며 그녀의 삶을 되읊는 이야기이다. 자신의 변화되는 삶에 적응하지 못한 로라는 되고자 하는 것에 대한 욕망의 표출을 관련된 물건(영국 찻잔, 버버리 금색 단추 등)을 삼키는 일로 대신 해소하고자 했다.

 

 

 

 

 각 단편 속 인물들은 현대 사회 속 길 잃은 방랑자들을 나타낸다. 이 책에서 '서울'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대한민국의 수도인 서울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볼 수 만은 없다. 서울을 복잡한 도시, 자본주의, 물질주의적인 것을 표상하는 현대 사회의 하나의 '기호'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인물들은 처음엔 자신을 고립시킨 복잡한 미로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쳤지만 오히려 그에 실패하게 되고, 그들 자신의 삶과 존재가 보편적 세계에서 지워져가고 있음을 느껴간다.

 

 우리는 이제 잊혀지지 않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탐구하는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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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음과 모음 공식 리뷰단 1기 강정민.

열두 번째 도서 『로스트 인 서울』

책은 지원받아 읽었지만 서평 내용은 온전히 저만의 생각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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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할 땐 니체 땐 시리즈
발타자르 토마스 지음, 김부용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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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마음을 꽉 채우는 책을 발견했다. 비평 수업을 들은 1학기 내내 온갖 막시즘, 탈식민주의와 관련된 문학 작품들을 읽으며 느꼈던 역사, 정치, 사회상의 혼란스러움, 여러 자기계발서들을 읽어나가며 느꼈던 (다부진 각오 뒤에 웅크리고 자리했던)좌절감과 실패감에 조금은 지쳐있던 나였다. 4학년의 1학기를 홀가분하게 마치고나서 이 책을 집어들었다. 이제 내 머리속게 복잡하게 얽혀있는 것들을 차곡차곡 정리하기 위해서. 책의 깔끔한 표지가 읽기 전부터 마음을 정갈하고 차분하게 만든다.

 

 

 

 『우울할 땐 니체』는 니체의 철학 사상을 토대로 저자 '발타자르 토마스'가 살을 붙여 지은 철학서이다. 이 책 한 권에 니체의 모든 철학 사상이 응축되어 담겨있다고 볼 수 있는데, 니체의 저서인 『즐거운 학문』,『선악을 넘어서』,『우상의 황혼』,『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유고』등에서 여러 철학 사상과 그에 걸맞는 구절을 가져와 인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우울할 땐 니체』를 읽으며 니체의 여러 저서에 대해 간을 볼 수가 있다.  또한 그 각 저서에 대한 니체의 관념 정도를 뒤에서 짧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니체에 대해 더 깊게 알아보고 싶을 때에도 도움이 된다.

 

 

 

 

 

 

 

 

 어렵다고 느끼던 철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그러나 어디에서부터 손을 대야 할 지 몰라 쩔쩔매는 나같은 독자들에게 이 책은 아주 훌륭한 철학서가 되어줄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모든 철학서의 집결본이라는 것이 아니라, 니체의 철학만을 집대성한 책으로 보아야 함이 당연하겠지만. 그렇지만 이 책이 오로지 니체의 철학사상만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의 지은이 발타자르 토마스의 깊은 사유도 함께 맛볼 수가 있다. 책의 초반부에서는 토마스가 그저 니체의 열렬한 팬이자 추종자에 불과한줄만 알았지만, 읽다보니 니체의 의견에 대해 비판할 때는 확실히 비판하는 점으로 보아 그만의 생각이 이미 또렷하게 정립되어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었다. 발타자르 토마스 역시 이미 철학가였던 것이다.

 

 

 

 책의 제목에 '우울'이라는 어휘가 포함되어있다. 왜 하필 니체를 읽어야 할 때는 우울한 때여야 할까? '우울함' 이라는 어휘에 담긴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아무래도 '우울'이라는 감정은 인간으로 하여금 허무주의에 빠지게 하기가 가장 쉽고, 니체는 이러한 '허무주의'를 극도로 경계하고 있기 때문에 제목을 저리 선정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 말은 우울한 순간에 니체의 철학 사상을 접하게 되면 푹 빠져버릴 수도, 강하게 설득당할 가능성이 있다는 뜻도 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니체의 깊은 사유와 "실재를 해석으로 인식하고 종교적, 형이상학적, 도덕적, 예술적 증상이 갖는 감정적, 신체적 의의를 해독하는 일에 열중(p.317)"함으로 나타난 그의 결과물에 매우 깊게 매료되었다. 내가 현재 우울한 것인지 판단이 잘 서지는 않지만, 니체와 이 책에 푹 빠진 것은 사실이다. 물론 그의 모든 사유를 좇는 것은 아니지만. 

 

 

 4개의 챕터중 가장 내게 와닿았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끔 한 부분은 바로 첫 번째 챕터 [허무주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질병] 이었다. 두 번째 챕터에서도 수긍가는 부분이 많았다. 그러나 두 번째 챕터 [알량한 도덕은 버려라]와 세 번째 챕터 [자기 자신이 되어라]에서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들이 부분 부분 존재한다. 내가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니체가 기독교라는 종교에 대해 갖는 적대심은 기독교인들에게 불쾌감을 안겨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함'이라고 하는 것의 의의를 정립하는 데에 있어서도, '삶은 힘을 향한 의지이다'라고 하는 그의 확고한 사상에 편중되어 기술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이 책의 저자인 '발타자르 토마스'도 어느정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지니고 있는 듯 했다. (내가 따라한건가?)

 

 

 

 

#  이 쯤에서 밑줄긋기!

 

 

p. 58 _  우리를 지배하는 것은 욕구가 아닌 두려움이다. … 모든 위험, 모든 고통의 원천을 제거하려 함으로써 우리는 또한 예기치 않은 삶의 강렬함을 체험할 가능성도 제거한다. 우리는 우연의 씨를 말려버린다.

  "삶의 모든 굴곡과 굴절을 대패로 깎아버리려 하는 끔찍한 계획으로는 인간성을 모래로 변질시키기 위한 지름길을 갖게 되지 않겠는가? 모래, 가늘고 부드럽고 둥글고 무한한 모래!" (『여명』, Ⅲ, 174)

 

p. 68 _  모든 행복, 모든 쾌락은 그 반대의 것을 불러 올 위협이 있다. 경험의 반경을 결코 불행을 만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하는 - 속지 않고 상처받지 않고 버림받지 않고 배신당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하는 - 지점으로 한정한다면 그것은 자신에게 가능한 행복과 쾌락의 반경을 한정하는 것이다.

 

p. 94 _  니체가 의미하는 바에 의하면 힘을 향한 의지는 외부로 발산할 필요가 있는 힘의 과잉이다. 다른 사람에게 전달해야 할 것은 잉여분이다. 힘 덕분에 의미를 준다는 것은 그저 주기만 한다는 것이다. 교향악단을 이끄는 작곡가는 악단에 자신의 작품, 리듬, 멜로디를 준다. 그 사람이 없다면 연주자들은 무엇을 연주하고 어떻게 서로 조화를 이뤄야 할지 알지 못할 것이다. 그 사람이 오케스트라를 지배하는 것은 단지 그의 기부에 의거할 뿐이다. ('기부의 미덕')

 

p. 168 _  "나는 앞으로 사물에서 필연성을 아름다움으로 보는 법을 더 배우고 싶다. 나는 이런 식으로 사물을 아름답게 하는 사람 중 한 명이 되고 싶다. 운명애(運命愛)! 앞으로 내 사랑이 될 것이다. 나는 추한 것과 전쟁을 벌이고 싶지 않다. 나는 비난하지 않겠다. 심지어는 나를 비난하는 사람도 비난하지 않겠다. 시선을 돌리는 것이 내가 유일하게 부정하는 것이 될 것이다. 궁극적으로 나는 긍정하는 사람 그 이상은 되지 않을 것이다."(『즐거운 학문』,Ⅳ,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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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매 챕터마다(소주제마다) <짚고 넘어가기>를 통해 독자에게 끊임없는 질문을 한다.

 철학 이론에 그치지 않고, 독자로 하여금 개인의 해답을 유추해가도록 이끌어주고 있다는 점에서 '진정한 철학서'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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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음과 모음 공식 리뷰단 1기 강정민.

열한 번째 도서 『우울할 땐 니체』

책은 지원받아 읽었지만 서평 내용은 온전히 저만의 생각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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