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알수집가
제바스티안 피체크 지음, 장수미 옮김 / 단숨 / 2013년 6월
평점 :
절판


  

 

  작품의 제목과 책 표지의 섬뜩한 사진때문에 읽기 전부터 더럭 겁이 났다. 실은 새벽에 책을 읽다가 무서워서 더는 못읽고 잠을 자려고 하는데, 책 표지 장면이 꿈에 나올까봐 책을 멀찌감치 놓았다. 그것도 뒤집어서.

 

 

 이 책의 구성은 조금 많이 독특하다. 맨 처음을 [맺음말]로 시작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 다음은 [마지막 장 끝]이다.  작품의 맨 끝에 나와야 할 맺음말이 맨 처음부터 등장을 한다니, 어안이 벙벙함과 동시에, 도대체 책을  어디서부터 어떤 순서로 읽어야하는 지에 대해 슬슬 혼란이 찾아온다. 그리고 목차를 보면 알겠지만 83으로 시작해서 1로 끝난다. [서문]과 [첫 장]은 작품의 맨 끝에 나온다. 번역된 한국의 책에서 그나마 페이지수는 순서대로 진행되지만 독일 원서에서는 페이지까지 거꾸로 진행된다고 하니 흥미롭고 색다른 구성방식임에는 틀림이 없다.

 

 

 

 

 

 

 듣는 사람의 정신 속에 녹슨 갈고리를 점점 더 깊이 박아 넣는 죽음의 나선 같은 이야기가 있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무궁사(無窮死,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고 작동한다는 가상적인 영구기관)라 부른다. 시작한 적도 없고 절대 끝나지도 않을 이야기, 영원한 죽어감을 다루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책의 맨 앞부분, <맺음말>中

 

 

 

 작가는 작품의 맨 앞부분에서 위와 같이 말한다. 그러면서 '더 읽지 말라!'라고 경고한다. 처음에는 '무슨 이런 경고가 다 있어?'했지만, 이야기의 마지막에 가서 초반의 경고를 다시 되새길 수밖에 없었다. 끝인 줄 알았지만 그것은 다시 '게임 스타트'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작가가 맺음말에서 한 모든 말들에 전적으로 공감을 할 수밖에 없다.

 

 

 

 '이 작품은 인류의 가장 오래된 놀이인 숨바꼭질을 모티프로 무고한 사람을 죽였다는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전직 경찰과 잔인한 살인마와의 숨 막히는 게임을 그려내 2010년 독일 독자가 직접 뽑은 최고의 스릴러 1위에 이름을 올렸다.'(책 커버 페이지의 내용中)

 

 

 

 싸이코패스인 잔인한 연쇄살인마는 전직 경찰이었으며 현직 신문사 기자인 알렉산더 초르바흐에게 누명을 씌운다. 살인마의 장기말이 된 초르바흐는 맹인이자 환영을 보는 알리나와 함께 살인마를 뒤쫓는다.

 

 "나는 과거를 볼 수 있어요 "

 

   알리나는 사람을 만지만 과거를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고 했다. 그러나 가면서 밝혀진 것이지만 사람을 만진다고 현재가 아닌 시점의 영상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고통을 느낄 때여야만 다른 시점의 영상을 볼 수 있었다.

 

 

 

 이야기는 [남은 시간 44시간 38분]에서부터 시간이 점차 줄어들며 [마지막 1분] 그리고 [시한이 지나고 1시간 후]로 진행되어가며 긴장감을 높여간다. 남은 시간이 줄어갈수록 초조하고 급박한 분위기가 계속되다가 시간이 끝나고 사건이 해결되며 모든 것은 평화롭게 흘러가는 듯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작가는 찝찝한 분위기를 계속 끌고가고 있었다. 예컨대 '더 이상 잘못될 일은 없어'라는 생각 뒤에 "이렇게 오판하는 경우도 흔치 않다"라는 구절이 뒤따라오는 경우랄까.

 

 

 

 책이 아예 끝나기 겨우 20페이지 전에, 우리는 뒤통수를 크게 얻어맞는다. 그러면서 하나하나 맞춰지는 퍼즐 조각을 그냥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사건의 마지막과 동시에 사건이 시작되는 그 지점, 하필이면 가장 불행한 사건이 발생하는 그 시점, 기가 찰 노릇이지만 절대 막을 수 없는, 이미 실낱 같은 희망도 가질 수 없게 되어버린 그 상황을 분노와 황망함에 의해 꼭꼭 속박된 채 지켜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데 뒷 목의 털이 쭈뼛 일어나고 기가 차는 이야기를 또 들을 수 있을까 싶을만큼. '어쩐지 이러저러한 상황이 이상했어'라고 생각은 하지만 초르바흐의 뒤늦은 후회처럼 그것은 독자의 뒤늦은 예측일 뿐이다.

 

 

 

 여태껏 이렇게 색다른 구성, 시각 장애인이 느끼는 바에 대한 상세한 서술(실제 작가가 시각장애인들에게 도움을 얻고 계속해서 자문을 얻으며 글을 썼다고 한다), 뫼비우스의 띠 같은 사건의 전개, 후반부로 갈수록 사그라들기는 커녕 점점 불타오르는 이야기 진행을 갖춘 책은 처음이었다. 난생 처음보는 놀이기구를 타보는 짜릿한 느낌 같은 것이 이 소설의 매력이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나서 다시 첫 페이지를 펼치게 만드는 것 역시.

 

 

 

 싸이코패스 하니까 생각나는 <크리미널 마인드>. 워낙 범죄 수사물을 좋아해서 CSI나 멘탈리스트, NCIS, 본즈, 크리미널마인드 등을 즐겨보는 편인데 그 중 크리미널 마인드를 제일 소름끼쳐하며 재밌어한다. 크리미널 마인드에는 연쇄살인 이야기가 주로 많이 나오고, 그러다보니 싸이코패스를 소재로 다루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크리미널마인드보다 『눈알수집가』가 훨씬 충격적이었다. 가장 뒤끝이 남는, 끝났다고 말하기 찜찜한 작품이라 그런 것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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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음과 모음 공식 리뷰단 1기 강정민.

열네 번째 도서 『눈알수집가』

책은 지원받아 읽었지만 서평 내용은 온전히 저만의 생각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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