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가 있어 내가 있다
사티쉬 쿠마르 지음, 정도윤 옮김 / 달팽이 / 2004년 5월
평점 :
절판


사티쉬는 산스크리트 격언인 'So Hum'을 '그대가 있어 내가 있다:Estis, ergo sum'으로 번역했습니다.

이 책의 울림은, 이원론적이지 않으며 절대 나뉠 수 없는 탄탄한 관계을 의미하는 이 만트라와 같은 말에서 나옵니다.

불교에서 '인드라망-인드라'는 한없이 넓은 그물을 가리키는데 그 이음새 마다 구슬이 있고, 그 구슬은 서로를 비추고 비추어 주는 관계라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물로써 서로 연결되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인간 세상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치 스스로 살아가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서로 비추고 있는 밀접한 관계라는 것이지요. 이것은 인간관계 뿐만 아니라 세상과 인간과의 관계로 해석할 수도 있답니다. (다음에 사티쉬 선생님을 만나면 꼭 얘기해 드려야겠어요. ^L^)

 

이 책은 어린 승려였고, 평화의 순례자이며, 생태운동의 영성적 지도자이자인 사티쉬 쿠마르의 영적 여행을 담고 있습니다. 

1부에서 그의 첫 번째 영적 스승은 어머니입니다. 그의 어머니는 씨앗이 자라 나무가 되고, 나무에서 다시 씨앗이 생기는 이치를 삶의 순환이라고 설명하고 "개인은 다른 사람들에게 의존한다. 개인성은 나눌 수 없다. 씨앗은 땅을 풍요롭게 하고, 땅은 씨앗이 자라게 한다. 나무가 땅에 나뭇잎을 떨어뜨리면 땅은 나무 뿌리의 자양분이 된다. 그러므로 영혼들은 서로에게 의지하면서 풍요로워진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간디의 자서전을 읽고 승려의 은둔생활이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님을 깨닫고 세상에 기여하는 활동의 필요성을 느낍니다. 사티쉬는  비노바 바베를 만나고 ‘사르보다야’의 가르침을 배웁니다. 비노바 바베는 ‘자본주의는 자기가 중심이며, 사회주의는 사회가 중심이다. 그러나 사르보다야는 삶이 중심이다.’ 라고 말합니다. 이는 사티쉬가 말하는 ‘삼위일체’에서 반영되는데 이것은 기존의 정신과 육체와 영혼이 아니라 땅과 영혼, 그리고 사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2부에서 사티쉬는 인도의 현자인 비노바 바베를 비롯해 크리슈나무르티, 버트란트 러셀, 마틴 루터 킹, 그리고 슈마허와 만나고 토론을 합니다.

3부에서는 자신의 정신을 키우고, 자신의 뿌리를 재확인 했던 인도여행에서 만난 마울라나 와히두딘 칸, 라젠드라 싱, 하쿠 샤, 반다나 시바 등과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작년 5월 사티쉬 선생님이 한국을 방문하셔서 '자연으로부터 배운다'라는 주제로 강연 하실 때 뵐 기회가 있었지요. 일흔이라는 연세가 무색할 정도로 생기있고 부드러우면서도 견고한 아우라가 느껴지는 분이었습니다. (녹색평론사에서 마련한 21세를 위한 사상강좌) <사티쉬 쿠마르> 한민사, 1997를 처음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리고 그로부터 8년이란 세월을 산 만큼 이 관계의 회복에 충분히 더 공감하고 간절한 일이라는 데 동감할 수 있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인터넷으로 'So Hum'이란 말을 한 번 검색해 보았지요. 생소한 말이었기에 사오정 검색 결과가 많이 떴지만 그 중에서 다른 님께서 읽은 이 책의 서평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분이 꾸민 작은 누리집을 둘러보게 되었어요. 어떤 분이신지 잘 모르지만 자기만을 위해 사시는 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진행하시는 프로그램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좋은 일 많이 하시면서 행복하시길 기원드렸고, 먼 후일 그 일 속에 어쩌면 제가 있게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 일이 없더라도 생각의 공명이 비슷하다는 것만으로도 인드라망 속에 함께 함을 느꼈습니다. 생각의 확장이 좀 비약인가요...? ⌒⌒ 어쨌든 오늘 나와 스쳐 지나간 그 사람들도, 산책길 한가운데서 나를 놀라게 했던 두꺼비도, 다리가 하나 없어 불편한 세 발 새끼 고양이도,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능소화도 함께 인드라의 그물에서 얽히어 살고 있음을 새삼 되새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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