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선옥, 마흔에 길을 나서다
공선옥 지음, 노익상·박여선 사진 / 월간말 / 2003년 7월
평점 :
품절


'세상은 늘, 동시적이지만 비동시적이다.'

 

책 읽기를 시작하고 몇 페이지 넘기지 않은 즈음에 만난 한 문장이 머릿속에서 내내 머물렀다. 그 뒤엣말은 '동시대 속에서 빈자와 부자는 늘 다른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이 두 문장만으로도 작가가 어떤 길을 나섰으리라는 것은, 어떤 사람들을 만났으리라는 것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마흔'. 동시대에 마흔을 살고 있는 사람들은 많지만 누구는 제법 안정된 생활로 또 다른 인생의 전성기를 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누구는 아직도 그야말로 밥 먹고 살기 힘들어 허덕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작가 공선옥은 "애초에 <말>지에 쓸 글을 명분 삼아 '노는 여행'을 좀 하고" 싶었으나, 아이 셋을 두고 아이들 먹을 국과 밥을 한 솥단지 해 놓고 '비장하게' 나선 길은 놀 수 있는 여행이 아니었다.

 

강원도 국도변에서 만난 80살 약장수 지복덕 할매, 순창에서 만난 81살 정영섭 할배와 79살 이향구 할매, 여수 화양반도에서 만난 이만근 할배, 영광에서 만난 농촌 아낙네들, 가리봉동 중국 동포 우씨, 봉화에서 만난 신현태 할배, 의정부로 달려 가서 만난 미선이와 효순이의 죽음, 수마가 할퀴고 간 무주 무풍에서 만난 죄없이 순박한 사람들, 창원의 고 배달호씨...  하늘에 부끄럽지 않게 소박하고 있는 만큼만 가지고 살아온 사람들이나 왠지 슬픔이 묻어 나고, 쓸쓸함이 스며 있고, 마음 한 켠이 짠해지는 건 왜일까...

 

강원도 평창에서 춘천행 막차를 놓치고 후배에게 하소연 겸 대책을 물으려 건 전화 저편에서 돌아온 답변. "떠나려거든 스물에 떠나야지 마흔에 길을 떠났으니 힘들고 쓸쓸하지요. 뭐 별 거 있습니까, 찜질방이나 들어가 보세요."  

 

스물에 떠나는 여행처럼 설레고, 힘이 넘치지는 않을지라도 마흔에 길을 나선 작가가 바라보는 이 땅, 이 나라 사람들에게서는 사람 냄새가 난다. 외롭고 쓸쓸하고, 가난한 사람과 이 땅 구석구석을 바라보는 작가의 사랑어린 시선을 나누다보면 내 마음도 함께 따스해지는 걸 느낄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