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때는 하루에 한 번,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벗겨 주면서 마음의 때는 잊어버리고 사는 것 같다. 어머니가 물에도 (찌꺼기와는 또 다른)때가 있다며 싱크대 구멍에 물때 제거하는 것을 끼우시는 것을 보았다. 모양도 색도 없이 흘러가는 물도 오래 한 자리에 흐르면 미세한 때가 끼이는데 하물며 마음이야... 생활의 힘겨움,스트레스 같은 것과 비교해서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때 쯤이야 잊어버리면 그만일지도 모른다. 마음의 때, 그 때를 조금이나마 벗겨 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어린 시절 떠올리기'가 아닐까. 자기의 어린 시절을 억지로 떠올려 보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을 매개로 자연스럽게 그 때의 마음으로 돌아가보는 것 말이다. 나는 그 매개를 책에서 많이 얻었다. <어린왕자>,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모모> 같은 책들에서... 그리고 1년여 동안 초등학생들과 함께 하면서 접하게 된 동화책들에서... 어떤 책은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한 목적으로 읽기도 했지만 어떤 책을 읽을 때는 나를 잊어버릴 정도로 몰두한 적도 있었다. 내가 읽은 이 책 <땅에 그리는 무지개>도 후자의 경우였다. 성장동화라고 이름 붙여져 있었지만 사실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와 비교해서 감동의 폭은 그만큼 넓지는 않았다. 이 책은 동화작가로서 좋은 글을 많이 쓰시는 손춘익 선생님의 작품이다. 머리말에 '고달픈 삶에 쫓기는 어린이들에게'라는 말이 있는데 요즘 이야기 같지 않다는 느낌부터 들게 한다. 요즘 많은 어린이나 청소년, 젋은이들은 심각하고 힘겹고 고달픈 것들을 꺼려하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부모님이 겪으셨을 그런 고달픈 삶을 이해시키기도 어렵다. 그렇지만 그런 경험들이 앞으로의 삶에 더 큰 힘이 될 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시궁창 속에 있다네. 그러나 우리 중 몇 사람은 별들을 바라보고 있지.' (-오스카 와일드) 이 책의 주인공, 14살 영호도 그런 소년이었다. 영호는 오색 찬란한 무지개 꿈을 만져보고 싶어하고 별처럼 빛나는 꿈을 이루는 것이 소망이다. 아주 가난한 시골 마을 서산에서 일찌감치 일자리를 찾아 대구로 온 영호. 문방구 도매점에서 힘들게 일하는 가운데에서 공부를 하고 책을 사서 읽기도 한다. 영호는 그렇게 꾸준히 생활하면서 진짜 작가가 된다. 그 영호는 바로 손춘익 선생님의 어린 시절 모습이라는 것을 금새 눈치챘을 것이다. 이 책은 창비아동문고로 나왔다. 초등학생들과 접하는 기회가 없다면 찾아 읽기도 어려울지 모른다. 아니 그렇다 하더라도 아이들의 책을 건성으로 읽어 볼 지도 모른다. 어떤 때는 아이들의 책이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코 끝이 찡해오고 눈 아래가 후끈후끈 달아오르면 그건 벌써 마음의 때가 반쯤은 쓸려나갔다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잊고 살았던 것을 돌이켜 보자. 책 속에 이런 시구절이 나온다. '뼈에 저리도록 생활은 슬퍼도 좋다. 저문 들길에 서서 푸른별을 바라보자.' 그래서 힘들고 어렵지만 별처럼 빛나는 것을 마음 속에 간직할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