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페미니즘
마리아 미스, 반다나 시바 외 지음 / 창비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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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예상을 뛰어넘는 통찰을 줬다. 일주일 간 서문과 1부를 읽었다. 그 비판의 핵심은 과학지식의 환원주의다. 과학이 낚아챈 지식장의 권위는 자연에 대한 다양한 관점과 삶의 자급적 상태를 부정하고 비지식으로 취급한다. 잉여 자본이 생산되지 않고 따라서 시장에 들어오지 않는 자급(subsistence)은 비노동이다. 비지식과 비노동으로 취급되는 여성의 모든 존재적 성격은 폭력 상태로 내몰린다. 에코페미니즘은 자연 파괴와 여성 폭력을 연동 상태로 보고 동시적 성찰을 요구한다. 이 주장에 대한 근거는 자연의 유한성에 기반한다. '성장' 모델은 자연의 한계 때문에 '성장'의 토대 파괴로 수렴될 것이다.

"'성장'을 위해서 필수적인 자원 강탈은 강간의 문화를 낳는다. 지구에 대한 강간, 자족적인 지역 경제에 대한 강간, 여성에 대한 강간이다."

16쪽

에코페미니즘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구하지 않는다. 통계를 걸러내고 폭력의 강도와 범위를 수치화하며 정보를 수집하지 않는다. 책을 읽고 강단에 서서 강의하지 않는다. 대신 가장 먼저 거리로 나갔고 "매 맞는 여성을 위한 집을 요구했다. (중략) 이 투쟁은 이후 나의 삶에 가장 중요한 교훈을 주었다. 경험과 투쟁이 이론적 연구보다 우선한다는 것이다."(32쪽)

에코페미니스트의 경험우선주의는 과학 연구 윤리에도 적용된다. 우선 과학과 자본주의의 가부장적 성격을 언급한다. 가부장제 과학지식의 환원주의는 자신을 전문가 집단으로 호명하며 장 외부를 소외시킨다. 과학은 자연을 원자론으로 집어넣고 파편화하며 자연의 존재론적, 인식론적 창조 능력을 단일성으로 끌어내린다. 수동적 형태로 제시되는 자연은 생산성과 성장, 개발의 관점에서 착취 대상으로 분열, 통제, 배치된다. "현대의 식물재배는 일차적으로 시장성에 장애가 되는 생물학적 요인들, 즉 재생하고 증식하는 내재적 능력을 종자에서 제거하려는 시도이다. 자체 번식하는 종자는 무료이며 공동의 자원이고 농민들의 통제 아래 있다. 반면 기업의 종자에는 가격이 있고, 기업이나 농업연구소의 통제에 놓인다."(91쪽)

그러나 이 상황에서 여성학은 주류 연구 방법론과 차별점을 가져야 한다. 기존의 가부장적 방법론은 여성학을 강단화하고 순수 지식으로 추구하려고 한다. 이런 방법론 아래에서 여성은 연구의 대상으로서 객관적 시선에게 관찰되거나 책과 언어로 추상화되어 관조된다. 즉 해방의 주체가 아니다. 그러므로 "여성학이 여성해방의 도구가 되고자 한다면 우리는 실증적, 양적 연구 방법론을 무비판적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110쪽)"

마리아 미스는 페미니즘 연구를 위한 방법론적 지침을 정한다. 총 일곱 가지 지침의 핵심을 세 가지로 정리해보자. 첫째, 가치판단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아야 하며 되려 편향적 연구가 필요하다. 이는 연구 대상과의 부분적 동일시로 가능하다. 둘째, 첫째 지침에 의해 연구 대상이 곧 연구 도구를 쥔 연구 주체가 되기 때문에 사변의 대상이 아니라 참여와 행동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셋째, 이 행동은 집단화, 역사화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남성 학자들을 추동하는 출세주의, 경쟁을 극복해야 한다. 이 지침의 결과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탄생이다. "새로운 과학의 중심에 놓일 것은 주체-주체의 상호성이라는 원칙이다."(121쪽)

주체-대상의 연구 방법론은 "베이컨 이후 수 세기 동안, 인간과 어머니 자연 그리고 인간의 어머니 사이의 공생관계의 파괴가 곧 자유와 해방의 과정으로 치부되어왔다." 이 관점은 단순히 과학 지식을 추구하기 위한 과정의 일부가 아니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역시 주체-대상 방법론으로 탄생했다. "인간과 자연의 상호 공생적인 관계를 일방적인 주종 관계로 바꾸지 않았따면 부르주아혁명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민족들과 그들의 땅을 백인 남성들의 식민지로 바꾸어놓지 않았다면 자본주의경제는 발달하지 못했을 것이다. 남성과 여성 간의 공생관계를 폭력적으로 파괴하지 않았다면, 여성을 단지 인간 이하의 동물이라 부르지 않았더라면, 새로운 남성들은 자연과 여성의 군주로 부상하지 못했을 것이다."(114쪽)"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에코페미니즘은 남성이 부여한 어머니 대지 혹은 자연 관점을 투쟁의 기호로 사용한다. 에코페미니즘은 남성과 동등한 자유와 평등권을 요구하는 자유주의 페미니즘이나 법과 종교, 문헌을 토대로 여성을 사회적 구성체로 파악하는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을 "서구의 돌진에 희생된 다른 이들과 전지구적 정치적 연대를 구축하는 데 대체로 도움이 안 된다"(9쪽)고 본다. 에코페미니즘이 보는 문제의 핵심은 소비주의와 과학의 환원주의다.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투쟁 방식은 따라잡기식 개발 중지와 자급 경제다.

에코페미니즘은 차라리 문화적, 영적 페미니스트들과 일부 입장을 공유하는 편이다. "문화적, 영적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적 가치' 중 많은 부분이 역사적으로 여성에게 부과되어왔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이러한 여성적 가치가 사람들을 해방할 잠재력이 있다고 해서 높이 평가한다."(8쪽) 이는 여성을 타자화하는 시선을 되려 등에 뒤집어 업고 자신의 방식으로 갱신하여 반대로 사용하는 일종의 전략이다. 정희진은 페미니즘의 도전(교양인, 2013)에서 시몬 드 보부아르를 경유하여 이렇게 말한다. "[보부아르는] 성판매 여성을 그 사회의 성적 관습에 도전하는 여성으로 본다. 성판매 여성은 타자, 대상, 착취당하는 여성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아, 주체, 착취자라는 것이다. (중략) 가부장제 사회에서 타자인 여성은 일방적으로 억압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타자성을 활용한다."( 페미니즘의 도전(교양인, 2013) 229쪽) 따라서 어머니 자연을 호명하는 에코페미니스트의 발화에는 가부장제 과학지식의 남성 과학자를 초과하는 충만한 마녀와 함께 막스 베버의 근대화가 가져온 탈주술화에 맞서는 투쟁의 기술로서 주술적 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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